계획이 계획으로만 끝날 때가 있고, 그렇지 않고 뜻한대로 이루어질 때가 있다. 가산산성과 천생산성을 답사하고, 그 후속으로 가자고 했던 '홍도'를 가기 위해 경남 거제시 대포항에 모였다.

”홍도야 울지마라~, 오빠가~ 있~다~.” 대중가요 가사 속의 홍도가 아니고, 전남 신안군 흑산면 홍도도 아닌 경남 통영시 한산면 홍도다.

낚시배에서 바라본 홍도 바위 (신정일 기자)
낚시배에서 바라본 홍도 바위 (신정일 기자)

대한민국 최남단 망망대해에서 대한해협을 바라보고 있는 홍도를 가기 위해 거제 병대도와 해금강을 지나고, 남녀도, 북여도를 지나 홍도에 닿았다.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에 위치한 홍도(鴻島)는 괭이갈매기 번식지로, 1982년 11월 20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섬이다.

면적은 9만8380㎡이고, 해발 110m이며 통영시에서 약 50.5㎞ 떨어진 무인도로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으로도 지정돼 있다.

고깃배에 실린 채 우리가 도착했을 때 홍도는 수만 마리의 괭이갈매기들이 섬을 에워싸고 있었고, 낚식배 몇 척이 방어낚시를 하고 있었다.

바다에서 바라본 홍도 위로 괭이갈매기들이 무리지어 날고 있다. (신정일 기자)
바다에서 바라본 홍도 위로 괭이갈매기들이 무리지어 날고 있다. (신정일 기자)

섬에 접안을 해서 등대로 오르는 길로 올라가야 하는데, 접안 허가를 받지 못한 관계로 오르지 못하고 아스라하게 절벽으로 이어진 길만 바라봐야 했다.

“온갖 것 보러 태어났건만 온갖 것 보아서는 안 된다 하더라.”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언급한 그 구절을 “온갖 것 보러 태어 났으니, 온갖 것 보고 가자”로 바꿀 수도 없기에 날아오르고 알지 못하는 언어로 노래부르는 괭이 갈매기들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또 보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바위 벽에 새겨진 태극기가 눈에 들어오면서 오래 전 옛 추억이 생각났다.

내가 처음으로 대한민국 구성원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이 1975년 6월 말이었다. 1975년 5월 6일 전북 전주 제35보병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해 6주간 훈련을 마치고, 3년 동안 근무를 하게 될 자대배치를 받았다. 그 때는 몰랐지만 군에서 만나 친구 최대길과 같이 보낸 42일간 신병교육대 생활이 나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사히 42일간이 지났다. 신 교대 연병장에서 모여 자대배치를 받는데, 그때 떠올랐던 노래가 존 바에즈의 ‘도나도나’였다.

“마차 위에 처량하게 끌려가는 송아지, 하늘 높이 제비들은 즐겁게 날아오르네, 바람소리 무심한 푸른 하늘 밑 끌려가는 송아지의 슬픈 눈동자.”

그 당시도 줄이 있는 사람은 카추샤로도 가고, 후방으로 간다는 말이 있었고, 운이 좋아 '빽'이 있는 사람 옆에 서 있으면 덤으로 좋은 부대에 따라간다는 말도 있었다.

친구 대길이는 그 때 37보병사단이 있는 충북 증평으로, 나는 의정부 101보충대로 배치를 받았다. 더플백을 메고 트럭에 실려 전주역으로 가던 중, 교련훈련을 받고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군인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 때 느낌을 한반도 남쪽 대한해협을 바로보는 홍도에서 대한민국 영토 남쪽이라는 표시로 새겨진 태극기를 보며 그 느낌을 받았으니, 언제 이 느낌을 또 다시 받는 날이 있을까.

이곳 홍도 식생은 밀사초군락과, 돌피 군락, 그리고 손바닥선인장 군락 등이 있으며, 식물은 밀사초, 돌피, 선인장, 좀닭의장풀, 털쇠무릎 등이 자라는 섬이다. 이 섬에 서식하는 새들은 괭이갈매기를 포함해 매와 칼새 등이 번식하고 있으며 황로, 팔색조, 벌매, 진홍가슴, 붉은배지빠귀, 긴꼬리딱새, 섬개개비, 황금새 등 다양한 조류가 이 섬을 중간기착지로 이용하고 있다.

괭이갈매기 서식지인 홍도 앞바다는 먹이 사냥을 하는 괭이갈매기들로 가득하다. (신정일 기자)
괭이갈매기 서식지인 홍도 앞바다는 먹이 사냥을 하는 괭이갈매기들로 가득하다. (신정일 기자)

홍도에서 가장 많이 서식하는 새는 괭이갈매기로 매년 약 6만마리가 번식을 하고 있다. 대개 4월 초에서 8월 초까지 번식하는데, 산란 수는 보통 1~3개이며 특별한 경우에는 4~7개까지 낳기도 한다. 포란기간은 4~5주이며 육추기간은 약 40여 일이다. 괭이 갈매기는 대부분 멸치와 전갱이, 붕장어, 꽁치, 오징어 등 바다물고기를 먹이로 살고 있다.

어둠이 내리면 날이 밝을 때까지 사시사철 깜빡 깜빡 어둠을 밝히고 있는 홍도 정상에 세워진 등대는 우리나라 최남동단에 위치하는 등대로 대한해협을 운항하는 선박의 육지초인표지역할을 하고 있다. 이 등대는 1906년 3월 처음으로 점등되었고 등탑은 백원형 콘크리트조이며 높이는 7.9m이다.

우리들은 가지고 간 새우깡으로 갈매기들을 유인했지만 강화도에서 석모도로 가는 뱃전에서 보았던 능숙한 갈매기들과 달리 손 끝에 새우깡을 채가는 갈매기들은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초석 도영주 선생이 하늘 높이 띄운 드론이 수없이 날아오르는 갈매기들 속에서 한 마리 새처럼 보였고, 한 장 더 한 장 더 하다가 결국 드론은 다른 배에 정착해서 그물망으로 전해받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기관사가 끓여준 라면을 흔들리는 뱃전에서 먹고, 등가도와 소매물도 쪽으로 떠나며 다시 한번 바라본 홍도는 갈매기들이 무리지어 날아오르며 우리들을 전송해주는 듯 했다.

언제 다시 홍도를 갈지 모르지만 두고 떠나온 홍도가 문득 다시 그립다. “홍도야 울지마라” 언제 다시 가마, 가서 그 등대로 오르는 길을 꼭 오르마.

신정일 기자 thereport@the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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