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릇이 한창인 여수 흥국사

언제부턴가 흥얼거리며 찾는 여행지가 있다. “여수 밤바다”전라선의 끝자락에 있는 여수는 찾아가도 찾지 않는 곳, 봄의 진달래꽃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영취산 자락에 흥국사(興國寺)다. 흥국사 사적기에 “국가의 부흥과 백성의 안위를 기원하기 위해 경관이 좋은 택지를 택해서 가람을 창설했다.”라는 말이 있으며 덧붙여서 “이 절이 흥하면 나라가 흥하고 나라가 흥하면 이 절이 흥할 것이다.”라는 글이 있는 것을 보면 이 절은 나라의 번영을 위해 창건했음을 알 수 있다.

흥국사는 고려 명종 25년(1195)에 보조국사 지눌이 광주 무등산 규봉암에 있을 때 큰 절을 지을 터를 찾기 위해 비둘기 세 마리를 날려 보냈고 그중 한 마리가 내려앉은 곳에 지은 호국사찰이라고 한다. 그 당시 고려 사회는 무신정권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러한 때 변방의 국찰國刹로서 나라의 안정과 융성을 기원하는 기도처로 세워진 이 절은 불법보다는 호국을 우선하는 사찰로 세워진 것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입증하는 하나의 일화가 전해지는데 고려시대에 젊은 학승이 백일기도를 마친 뒤 기도의 회향축원문에 흥국기원은 빠뜨리고 성불축원만을 넣었다.

그것을 알아챈 이 지방의 향리들은 그 벌로 그 학승을 다른 절로 쫓아냈다고 한다. 흥국사는 그 뒤 1592년 명종 14년(1559) 왜구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었던 것을 법수화상이 중창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기암대사가 이 절의 승려 300여명을 이끌고 이순신을 도와 왜적을 무찌르는데 큰 공을 세웠지만 임진왜란 당시 절집이 모두 불타버리고 말았다. 이후 인조 2년 계륵대사가 중건하였고 1760년경에 총 건평 624평에 649명이 상주하던 큰 사찰이 된 후 여러 차례의 중건을 거쳐 오늘날에 이어졌다.

남아있는 절 건물은 대웅전, 팔상전, 원통전 등 15동의 건물과 흥국사 홍교 등 여러 문화재가 있다.

(사진 = 신정일 기자)
(사진 = 신정일 기자)

차에서 내리자마자 만나는 유물이 계곡의 양 쪽에 걸쳐있는 무지개다리(보물 제 563호)이다. 인조 때에 만들어진 이 다리는 길이가 40m이고 높이가 5.5m, 폭은 11.3m, 내벽3.45m로 남아있는 무지개다리 중 나라 안에 규모가 가장 크다.

부채꼴 모양의 화강석 86개를 맞추어 틀어 올린 이무지개다리는 완전한 반달을 이루고 있고, 단아하고 시원스러운 홍예의 양옆에는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둥글둥글한 잡석으로 쌓아 올린 벽이 길게 뻗쳐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측면의 석벽은 이른바 난적(亂積) 쌓기로 무질서하면서도 정제된 석축의 미를 보여주는데 끝 부분은 완만하게 경사를 이루어 곡선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미를 보여주고 있다.

다리 밑에서 보면 홍예 한복판에 양쪽으로 마루돌이 돌출되어 있고, 그 끝에 양각으로 새긴 용두가 다리 밑의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다. 이 흥국사의 무지개다리는 임진왜란이 끝난 뒤 국난에 대비하여 흥국사에 주둔시켰던 승병에 불안을 느낀 관아에서 지맥을 끊고자 만들었다는 설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300명이나 되는 승병이 하는 일없이 놀며 지내고 있으므로 그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하여 다리를 놓았다는 말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바라보고 일주문을 지나면 흥국사 부도 밭에 이른다. 이 절을 창건한 보조국사와 중창했던 법수스님의 승탑 등 12기의 승탑이 가을 햇살을 받고 있는 부도밭을 지나 만나는 사적비는 숙종 29년 당시의 명필이었던 이진휴가 썼다.

(사진 = 신정일 기자)
(사진 = 신정일 기자)

 봄의 진달래가 아름다운 영취산

천왕문과 봉황루 그리고 범종각을 지나자 심검당과 적묵당에 에워 쌓인 대웅전이 나타난다. 오랜 세월 저편의 이야기를 풀어내주고 있는 듯한 흥국사 대웅전을 받치고 있는 돌계단에는 거북이, 게, 용들이 새겨져있다. 이것은 대웅전을 반야수룡선으로 해석한 데서 나온 ‘법화신앙’적 표현이다. 법화신앙에서는 대웅전을 지혜를 실어 나르는 배 고통의 연속인 중생을 고통 없는 피안의 세계로 건너게 해주는 배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웅전의 축대는 바다가 되는 셈이다. 대웅전 앞에 서있는 괘불에도 화려한 용이 조각이 되어있고, 석등에도 민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난기 가득한 거북이 받침 위에 사각의 돌기둥이 놓여있으며 그 위에는 공양상이 네 기둥 역할을 하는 특이한 형태의 화사석이다. 원래 이 석등은 이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흥국사 대웅전 문고리를 만지면 죽을 때 편안하게 죽는다.

흥국사의 대웅전 문고리를 만지면 죽을 때 편안하게 죽는다는 말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고쳐간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화려한 다포식 팔작지붕 집으로 앞에서 보면 붕긋 솟아나는 영취산의 봉우리가 용마루 뒤에 솟아올라 마치 육계처럼 보인다. 정면 3칸의 기둥 사이를 같은 간격으로 나누고 각각 사문합의 빗살문을 달아 전부 개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빗살문은 상부를 구분하여 교창(交窓)의 모양으로 의장하였으므로 문짝의 키가 높으며 따라서 고주(高柱)도 높게 잡았다. 이 대웅전의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는 불화로서는 드물게 보물 제 578호로 지정되었는데 화기에 의하면 천신과 의천이라는 두 스님이 수년 동안에 걸쳐 그렸다는 내용과 함께 “이 공덕으로 누구에게나 두루 비치어 모든 중생이 다함께 불도를 이루기를 기원합니다.”라는 글이 씌어져 있다. 가로 4.75m에 세로 4.06m로 대작인 이 후불탱화는 중앙에 석가모니불이 연꽃 좌대에 앉아 법화경을 설법하는 모습인데 여타의 불화들과 다른 점은 4보살 6제자 등 등장인물들이 한 결 같이 밝은 얼굴을 하고 있다. 특히 결가부좌하고 앉아있는 이 본존불은 뾰족한 육계나 계주 그리고 구슬처럼 표현된 나발까지 쌍계사 불화와 흡사하다. 대들보 위에 우물천정이 연꽃 밭처럼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고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다.

또한 이 대웅전 안에는 영조 35년에 제작된 괘불이 있는데 가로가 8.2m, 세로가 11.15m로 화면 전체에 보살상 한 분이 그려진 보기 드문 대형 괘불이지만 사찰의 큰 행사 때에나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대형 괘불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은 들판에서 야단법석을 자주 벌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수많은 백성들이 여러 가지 전란으로 죽어 가는데 가람이 전화에 휩쓸리니 들판에서 수륙제와 큰 법회를 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불가에서의 인연에 연유해서인지 대웅전 안에서 흥국사의 스님으로부터 흥국사와 불교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원통전으로 향한다.

(사진 = 신정일 기자)
(사진 = 신정일 기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15호로 지정된 흥국사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으로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이 땅 어디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뜻으로 붙여진 전각이다. 1624년에 중창되었다고 하는 원통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집이면서 4방 퇴 칸에 활주를 세워 공간을 두었고 전면에는 1칸의 공간에 마루를 깔아 입구로 통하게 하였다. 사방이 회랑식 퇴칸으로 마련된 것은 법주사의 팔상전처럼 중앙 법당에 모신 관세음보살을 탑돌이 하듯 돌며 기도할 수 있도록 마련한 것이다.

나는 원통전 회랑의 툇마루에 앉아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받아들인다.

이 흥국사에는 재미있는 전설 하나가 전해오고 있다. 옛날 흥국사 사하 촌에 날마다 염불을 빠뜨리지 않는 지성감천의 젊은 과부가 있었다. 한번은 토미천 개울가에서 삼일 동안 불공을 밤낮으로 드렸다. 그 때 산신령이 나타난 “내 아들을 너에게 주겠다.”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과부가 집으로 내려간 그날 밤 흥국사 젊은 중이 담을 넘어와 과부를 안았다. 그 뒤 만삭이 되기 전인 임신 3개월 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에게 꼬리가 달려있었다. 그 지성감천의 과부는 아들의 토끼꼬리가 전생 토끼의 업보를 미처 마치지를 못하고 산신령이 급히 보냈기 때문에 꼬리가 달려서 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신령의 아들은 바로 그 토미천 근처에 살고 있던 산토끼였던 것이다. 과부는 날마다 염불을 외웠고 그 여자가 염불삼매로 그 자리에서 죽자 과부 아들의 꼬리가 없어졌다는 이야기이다.

(사진 = 신정일 기자)
(사진 = 신정일 기자)

원통전에서 조금 오르면 돌로 쌓은 108탑이 있고, 그 사이에 심어진 꽃무릇이 선운사나 불갑사의 꽃무릇과 다른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꽃무릇이 한창인 흥국사에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았고, 바람결에 풍경소리가 들리고 들린다. 들린다. 아이들의 지절대는 이야기 속에 지나가는 뭇 새들의 노래 소리에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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