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1685.03.21~1750.07.28  독일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1685.03.21~1750.07.28  독일

요한 요아킴 하이트만(J. J. Heitmann)이라는 음악가를 아시는가? 지금까지 거의 알려진 바가 없으며 기억하는 이도 없다. 그러나 그는 경쟁에서 바흐(J.S. Bach)를 제치고 함부르크의 저명한 야고보성당(Jakobikirche)의 오르간주자가 된 인물이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까지 알려진 바흐에게 어찌 그런 흑역사가 있을 수 있는가 의아해 할 분들이 많을 것이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야고보성당은 막 세상을 떠난 전 오르간주자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지원자를 모집했으며, 심사위원들은 지원자들 중 단연코 바흐의 실력이 월등한 것으로 평가했다. 뿐만아니라 바흐의 오르간 실력은 독일 전역에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바흐는 탈락되고 하이트만이라는 인물이 최종 합격자가 되었다. 하이트만은 그야말로 금수저였다. 그의 아버지는 함부르크의 대 부호 무역상이면서 재력뿐만 아니라 지역 내 영향력이 막강한 인물이었다. 그 도시의 유명한 음악가인 마테존(J. Mattheson)이 훗날 하이트만을 일컬어 ‘손가락이 아니라 은화(thaler)로 오르간을 연주하는 인물’이라고 비하한 바가 있으니 그의 연주 실력과 평판이 어떠했는지 짐작할만하다. 기록에 의하면 하이트만의 아버지가 당시에는 거액이었던 4000마르크를 교회에 기부했다고 한다. 칸타타 작시가로 유명한 당시 함부르크의 성직자 노이마이스터는 예수 탄생 때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축하 찬송을 연주했다는 누가복음 2장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그의 설교에서 이 일을 다음과 같이 비꼬았다: 

  “베들레헴에 내려왔던 천사들 중 하나가 야고보성당의 오르간주자가 되기 위해 오디션을 봤다면. . . . 돈이 없으니까 그냥 하늘로 날아가버렸을 것입니다.”

  바흐에게는 그 때가 참 힘든 시기였다. 불과 6개월 전 자신의 고용주인 레오폴트 대공과 먼 곳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그런데 돌아와보니 건강했던 아내가 갑자기 병들어 세상을 떠나 이미 땅에 묻힌 것이 아닌가. 어린 네 자녀는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었다.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그가 맞닥뜨려야 했던 현실은 그렇게 냉혹하고 얼토당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720년의 일이니까 지금으로부터 300 년 전의 이야기다. 그러나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전혀 낯선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우리의 주변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젊은 ‘바흐’들이 금수저들에게 밀려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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