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구무소 
태백 구무소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의 메밀뜰 마을을 지나 구무소 안쪽에 있는 마을인 혈내촌에 다다르고 그곳에 구무소가 있다. 혈내천은 원래 마을 쪽으로 크게 휘돌아 흐르는 감입곡류하천(嵌入曲流河川)으로 감입곡류하천에서 미앤더(meander)의 잘록한 목 부분이 지속적인 침식을 받아 절단되면서, 새로운 하도와 구하도(舊河道) 사이에 원추형의 미앤더 핵(核)이 떨어져 남게 되었다.

이곳에 강이 산을 뚫고 지나가면서 큰 석문石門을 만들면서 도강산맥이라는 세계적으로 진귀한 지형인 구무소는 ‘구멍’ ‘굴’의 고어인 ‘구무’와 늪을 뜻하는 ‘소’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이름이다.

구무소는 동점 남서쪽 굴 밑에 있는 소로서 황지(黃池)에서 나오는 낙동강(洛東江) 상류에서 흐르는 물이 폭포가 되어 흐르면서 조그마한 산을 뚫고 흐르는데, 이 뚫어진 구멍 밑에 연못이 있으므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등의 고문헌에는 구멍 뚫린 하천이라는 뜻의 ‘천천(穿川)’이라고 실려 있다.

전해오는 얘기로는 옛날 경북(慶北) 안동(安東)의 영호정(映湖亭)을 지을 때, 그 대들보감을 화전리(禾田里)에서 베어 황지의 냇물에 띄워 나르는 데, 홍수가 일어서 대들보 감이 산의 벼랑에 부딪혀 큰 벼락소리가 나면서 벼랑이 뚫어지고 물이 그 아래로 흐르게 되었다고 한다.

구무소는 석회동굴로 3억~1억5000만 년전 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오랜 시간 동안 주변의 물이 석회암을 녹여 마침내 산을 뚫는 희귀 지형이 된 것이다. 그런 연유인지 이곳에는 많은 전설이 깃들어 있다.

이곳 동점리에 엄종한(嚴宗漢)이란 사람이 구무소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生計)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루는 쳐 놓은 그물이 없어졌으므로 이것을 찾으려고 물밑으로 들어가니 그 안에 별천지가 나타났다. 평사십리(平沙十里)의 들판이 열리고 큰 기와집들이 즐비하므로, 문안에 가보니, 자기가 잃은 그물이 거기 걸려 있었다. 한 노파가 나와 그에게 이곳에 들어온 까닭을 물으므로 사실대로 말하였다.

그 노파가 이르기를 자기의 어린 두 아들이 그 그물에 걸려 급류(急流)에서 죽을 뻔했기 때문에 성이 나서 그물을 걷어 왔다고 한다. 지금 아들들이 사냥하러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으나 돌아와서 당신을 보면 죽일 것이니 빨리 돌아가라 하면서 흰 강아지와 흰떡을 내주며, 흰 강아지를 따라가다가, 배가 고프거든 흰떡을 먹으라 하였다. 그 말대로 좌우 산천을 구경하면서 돌아오는데, 잠깐 동안에 자기가 빠졌던 곳에 이르렀다.

무당의 굿소리가 나고, 조문객이 오락가락 하고 있으므로 그 연유를 묻자 엄씨(嚴氏)가 빠진지 3년이 되어 대상(大喪)을 지내고 있는 중이라 하였다. 그가 물에 올라오자, 흰 강아지는 죽고 흰떡은 굳어져 돌이 되므로, 강아지는 둔산에 장사지내고, 흰떡은 가보(家寶)로 길이 간직하였는데, 그 후로 엄씨는 큰 부자가 되었으며, 3년 후에 엄씨가 죽어서 강아지 무덤 옆에 묻히고, 흰떡은 경북(慶北) 대지(大地)에 사는 조씨(趙氏)가 훔쳐서 안동(安東) 우전지(芋田地)로 가져갔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로는 중국의 우왕이 이곳을 찾아 구문소를 뚫고 치수를 했다는 전설과 함께 백룡과 청룡에 얽힌 이야기도 전해오는데, 태백의 지명유래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실려 있다.

"아주 옛날에 구문소로 흐르던 물이 사군다리 쪽으로 돌아서 흘렀다. 어느 때 홍수가 나서 물이 크게 불었다. 이 때 큰 나무가 떠내려오다가 석벽에서 사군다리 쪽으로 방향을 틀지 못하고 석벽을 그대로 강타하여 큰 구멍이 뚫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감록(鄭鑑錄)》에는 “낙동강 최상류로 올라가면 더 이상 길이 막혀 갈 수 없는 곳에 커다란 석문이 나온다. 그 석문은 자시(子時)에 열리고 축시(丑時)에 닫히는데 자시에 열릴 때 얼른 속으로 들어가면 사시사철 꽃이 피고 병화가 없고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오복동(五福洞)이란 이상형이 나온다”했으니, 원래 태백은 연화부수의 형국에 자리 잡은 신선들의 땅이었을 것이다.

또한 구무소 남쪽에는 자개문(子開門)이라는 바위가 문처럼 되어 있다. 이 길을 통하여 사람들이 경북지방으로 통행하였다고 한다. 높이가 20m에서 30m 폭 30m의 거대한 무지개 모양의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구무소의 정경은 바라만 보아도 신비롭기 짝이 없다. 구문소와 자개문 두개의 바위굴의 구멍이 동점리에 있기 때문에 이 마을의 남자들이 첩을 많이 둔다는 전설이 있다. 한편 이곳 구무소 부근에는 고생대 때의 다양한 생물화석이 많이 있다.

건열, 물결자국, 소금흔적, 새 눈구조 등의 퇴적구조와 삼엽충, 완족류, 두족류 등의 다양한 생물화석이 나오고 있어 전기고생대의 퇴적환경과 생물상을 동시에 볼 수 있다.

학술적 가치가 높은 구문소 일대는 2000년 4월 28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는데,

동물화석인 삼엽충이 가장 많고 오징어의 조상으로 볼 수도 있는 연체동물인 두족류와 연필처럼 길쭉하게 생긴 필석류 화석들이 널려있다.

 

태백 구무소 위에 있는 자개루
태백 구무소 위에 있는 자개루

구무소 위에 자개루라는 이름의 정자가 있다. 그 정자에서 구문소 일대를 바라보며 물을 생각한다.

“천하에 물보다 더 유약한 것은 없지만 굳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는 이보다 앞설 것이 없다” 그리고 “천하의 지극히 부드러운 것이 천하의 가장 딱딱한 것을 부린다”는 노자의『도덕경』에 실린 글이다 그렇다. 물은 부드러워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막히는 것이 있으면 멈추고, 열린 곳이 있으면 다시 흐른다. 그러나 이처럼 부드러운 것이 나중에 크게 합치면 이를 감당할 것이 없다. 예를 들어 홍수나 해일이 일어나면 아무리 굳센 것도 이를 감당할 수가 없다. 물이 이와같이 할 수 있는 까닭은 물은 자기 고유의 형체를 지닌 것이 아니요. 그 처소와 그릇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은 결코 자기의 본성을 잃지 않기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수많은 형체를 만들어내는데, 태백의 구문소가 그렇다.

태백의 산을 뚫고 흐르고 흘러 부산 다대포에 이르러 남해 바다가 되는 강물과, 구멍을 뚫고 흐르는 구무소, 신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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