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양 옥순봉 일대 (사진=신정일 기자)
​ 단양 옥순봉 일대 (사진=신정일 기자)

장회나루에 도착해서 충주호 관광선을 타고 충주나루까지는 2시간 거리. 눈부신 햇살 아래 삼층에 자리를 잡는다. 한쪽 끝이 풀어진 태극기는 오늘도 역시 바람에 펄럭거리고 몇 척의 유람선이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다.

떠나고 돌아오는 것, 그것이 인생이고 그것이 세상이리라. 어라연에서 장회나루까지 85km,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니었다.

우리들이 한 발 한 발 걸어온 길이 저 강줄기 속으로 묻혀버리고 배는 뱃고동을 울리며 떠나고 있다. "청풍나루까지 40분쯤 걸리고 충주댐까지는 2시간쯤 걸릴 것입니다." 그래 출발이다, 하고 바라보는 장회나루에는 옛사람의 자취가 묻어나온다. 조선시대의 학자였던 김일손은 장회에서 두석리 들어가는 골짜기로 들어오는 기행문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단양 장회나루 부근 (사진=신정일 기자)
단양 장회나루 부근 (사진=신정일 기자)

“장회원에 이르러 다시 말을 타고 길을 나서면 더욱 가경으로 접어들게 된다. 여기서 가득 버섯처럼 자라는 돌무더기를 발견했다. 산봉우리에서 봉우리를 연결한 푸른 아지랑이는 좌우와 동서를 분간하지 못하리란 말에 현혹하여 어떤 마술사의 기교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가은암 앞에 말을 세웠다. 아까보다 더 찬란한 연하는 더욱 길을 흐리게 하여 남가산의 꿈 같은 생각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같은 절경에 명칭이 없는 것이 매우 어색하여 대뜸 단구협丹丘峽이라 명명했다.

협을 거쳐 동쪽으로 가니 산은 더욱 기이하고 물은 더욱 맑다. 10리를 가면 협이 다되니 머리를 돌이키매 가인佳人을 이별하는 것과 같아서 열 걸음에 아홉 번을 돌아보았다.“곧장 동쪽으로 적성을 바라보면 지척도 못된다.

강에 나루가 있는데, 작은 배가 비꼈으니 곧 하진下津이다. 나루를 10리쯤 거슬러 올라가면

또 관도官渡가 있으니 곧 상진上津이다. 절벽 천 길이 나루 강을 눌러 서있는데, 떨리고 두려워서 기어오를 수가 없다. 처음으로 이름 짓기를 서골암棲鶻岩이라 하였다., 강물의 근원이 강릉부 오대산에서 나와서 구렁과 골짜기를 돌고 돌아서 서쪽으로 달려 오륙백 리를 달리니, 아무리 가벼운 배라도 그 물줄기를 다 거슬러 갈 수는 없다.....영의 구름은 상악上岳에 연하고 가을빛은 금수산錦繡山에 짙어져서 층층 첩첩한 푸른 산이 한 다락을 빙 둘렀으며, 남천의 흐름은 난간 밑에 콸콸 흐르고 상진나루의 물결은 숲 사이로 겹쳐 보인다.“

단양 장회나루 부근  (사진=신정일 기자)
단양 장회나루 부근 (사진=신정일 기자)

김일손이 "열 걸음을 걷는 동안에 아홉 번을 뒤돌아볼 만큼 절경지"라고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고 그 마땅한 이름이 없어 애석하게 생각한 나머지 즉석에서 단구협이라 칭하였던 것이다. 이 일대에는 남발치 여울을 비롯한 10여개의 험한 여울이 있어서 이곳을 지나던 뱃사람들에게 어려운 항로로 소문이 자자했고, 이름난 장회나루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장회나루는 과거와 함께 이제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수많은 바위에 흰 눈이 쌓이면 울창한 적송 위에 덮인 눈과 조화를 이루어 멀리서 보면 마치 흰 말이 달음질치는 것같이 보인다는 설마동과 배를 타고 가면 산이 움직이는 것 같아 배의 흐름에 따라 산과 언덕 모양이 바뀌는 부용성은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설마동은 300m나 되는 양편의 층암절벽과 울창한 수목, 맑은 물이 삼중주를 이루고 있고, 정상에서 구담봉과 충주호의 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으로 각광받는 신단양팔경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이곳 장회에는 조선 영조 때의 구두쇠였던 조륵에 관한 얘기가 남아 있다. 음성에서 살던 자린고비가 어느 날 장독 뚜껑을 벗겨 햇볕을 쬐고 있던 중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 장을 빨아먹고 날아갔다. 이를 본 자린고비는 파리 다리에 묻은 장이 아까와 파리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충주를 지나 단양까지 쫓아온 자린고비는 남한강을 건너는 도중 그만 파리를 놓치고 말았다. 자린고비는 발을 동동 구르며 '장외 장외'라고 소리치며 분해했다. 그후부터 사람들은 파리를 놓친 이 곳을 장외라고 불렀고, 세월이 흐르면서 장회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곳의 장회여울은 남한강 줄기에서도 급류가 심한 곳이라 노를 저어도 배가 잘 나아가지 않고 노에서 손만 떼면 금세 도로 흘러 내려가므로 오가던 배와 뗏목이 무진 애를 써야 했던 곳이다. 적성면 성곡리 석지로 건너가는 나루가 장회나루였고 장회여울 남쪽에 있는 삿갓여울은 기암절벽이 흐르는 물을 막고 있어서 삿갓여울이라고 불렀다.

장회탄 아래에 있는 구담봉龜潭峰은 소 가운데에 있는 바위가 모두 거북 무늬로 되어 있고 절벽의 돌이 모두 거북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거울같이 맑은 물이 소를 이루어서 봄꽃, 가을 단풍 때 아름다운 경치가 물 속에 비치니 배를 띄우고 놀면 아래위로 꽃 속이 되어 그야말로 신선놀이가 따로 없었다고 한다. 퇴계 이황, 급제 황준량, 율곡 이이 등이 이곳의 경치를 시를 지어 극구 찬양하였다. 옥순봉玉筍峰은 희고 푸른 암봉들이 비온 후 죽순이 솟듯이 미끈하고 우뚝하게 줄지어 있으며 소금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단양 옥순봉 (사진=신정일 기자)
  단양 옥순봉 (사진=신정일 기자)

구담봉과 옥순봉 사이의 소석대(농암)에는 이인상의 글씨 '流水高山'과 함께 구담봉의 장관을 노래한 퇴계의 시가 나란히 새겨져 있다. 옥순봉에도 퇴계의 글씨로 '丹邱同門' 넉 자가 새겨져 단양과 제천시의 경계임을 알려주었는데 지금은 충주호 물에 잠겨서 가뭄 때나 물 밖으로 살짝 드러날 뿐이다.

이곳을 지나던 이황은 <단양산수가유자속기丹陽山水可游者續記>를 남겼다.

“여름 5월에 내가 통첩通牒에 따라 청풍으로 가려고 하진에서 배를 타고 단구협을 나가 귀담을 지나고 화탄에서 내렸다. 이 날을 비가 내렸다 개였다 하여 연기 같은 구름을 토하고 삼킬 때마다 언덕과 골짜기가 나타났다 없어졌다 하여, 잠깐 사이에 만 번이나 변하고, 넘치는 물은 급하게 흘러서, 배가 너무 빨리 가므로, 비록 그 거룩한 장관은 무궁하지만 구경할 수는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청풍군 응청각에 유숙하고 그 이튿날 새벽의 서늘함을 틈타서 사람을 시켜 배를 끌게 해서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 삼지탄을 지나 내매담 위에 이르러 뜸을 걷고 바라보니, 물이 두 골짜기 사이에서 나와 높은데서 바로 쏟아져서, 굴러 내리는 돌이 그 아래 있는 뭇돌을 치며 성난 기세로 분주히 내달아 구름이나 눈 같은 물결이 출렁거리고 용솟음치는 것은 화탄이요., 산봉우리가 그림 같고 골짜기가 서로 마주 벌어져 있고, 물이 그 가운데 괴어서 넓고 맑고 엉키고 푸르러 거울을 새로 갈아서 공중에 걸어 놓은 것 같은 것은 귀담이다. 화탄을 거슬러 남쪽 벼랑의 절벽 아래로 따라 오르매, 그 위에 여러 봉우리를 깎아 세운 것이 죽순 같아서 높이가 천백 장丈이나 되며 우뚝하게 기둥처럼 버티고 서 있는데, 그 빛은 혹은 푸르고 혹은 창백하기도 하다. 창등蒼藤과 고목에 아지랑이가 침침하여, 올려다 볼 수는 있어도 오르지는 못하겠다.“

"나그네 꿈이 땅 울림에 놀라 깨니 / 가랑잎만 어지러이 창문을 두드리네 / 모를레라 이 밤에 강물로 흐른 비 / 구봉을 얼마나 깎아내는지"라고 이인상이 노래했고, 율곡 이이 또한 "겨드랑이 밑에 절벽을 끼고 / 강물 위를 미끄러져 간다 / 누구나 나를 보면 / 하늘에서 온 줄 알리 / 구담에 비친 그림자 / 들여다보다 나도 속았네 / 구담봉 옛 주인은 / 어디 가 계시는고 / 나무학 타고 올라 / 바람 몰고 다니더니 / 그날에 학채 구름채 / 구름 속으로 갔나 보다"라고 노래했다.

한 편 이 구담봉을 찾았던 사람이 선조 때 사람인 성암省庵 이지번李之蕃이다. 그는 토실土室에서 수도하면서 흙으로 길게 바를 만들어 구담봉과 맞은편에 있는 오로봉五老峯에 걸쳐 매고, 그 줄에다 가마를 달아매어 탄 후 그 밧줄을 잡아 당겨서 구담 위를 임의로 왕래하면서 놀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광경을 바라보고 신선이 학을 타고 노는 것이라고 하였다는데, 이것이 삭도索綯의 효시가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은 김일손이나 이황 등이 걸었던 그 길에 충주댐이 들어섰어도 옥순봉이나 구담봉은 국가 명승으로 남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으니, 명승은 세월이 지나도 명승으로 남는 법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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