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 중국연구원. 정혜영 학술연구교수.
건국대 중국연구원. 정혜영 학술연구교수.

2023년 4월 중국, 브라질 등 개발 도상국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평화협상을 시도할 "평화클럽" 창설을 제안한 이후, 남아공, 인도네시아 등 남반구 국가에서 우크라이나 전쟁평화를 언급하고 있다.

세계는 왜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終熄)을 논하고 한반도형 휴전(休戰)을 논하는가?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었지만, 서방세계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예상과는 달리 러시아가 전쟁에서 크게 고전을 했다. 우크라이나는 자신의 국토 일부를 러시아에게 점령당하는 열세에 있지만, 서방이라는 우군확보로 인해 영토회복을 위한 전쟁의지가 여전히 강하다. 이러한 전쟁의 장기화로 인해, 유럽에서는 현 전쟁을 교착상태로 평가하며, 대체로 2024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2023년 1월에 발표된 독일인 설문 조사(Forsa Institute)에 따르면, 조사 참가자의 80% 이상이 우크라이나가 승리하는 것보다 협상을 통해 전쟁이 종식되는 게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이어 영국 YouGov PLC가 2월 8일-22일기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스웨덴(63%), 덴마크(56%), 영국(53%) 응답자의 과반수만이 러시아 군대가 모든 점령지에서 물러날 때까지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한다고 응답했을 뿐, 기타 국가인 미국(46%), 스페인(44%), 독일(40%), 프랑스(37%), 이탈리아(29%)에서는 우크라이나를 끝까지 지원하는 일에 회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유럽국가들의 이러한 의견변화는, 전쟁의 장기화로 인한 높은 인플레이션, 식량수급 곤란, 에너지 가격이 4배나 상승된 경제적 압박과 군비지출 부담에 시달리고 있는 원인이 크다. 또한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직접 지원하는 당사자이면서, 전쟁이후 우크라이나 전쟁복구에 참여해야 하는 재정 부담도 크다. 전쟁으로 인한 유럽국가들의 피로감이 이러한 조사결과를 초래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이 없었던, 지구 반대편 국가들이 전쟁종식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 당사자가 아닌, 제3지역 각국이 처한 국제정치 지정학은 각기 다르지만, 대체로 강대국 권력분포의 현 상태(status-quo)에 순응하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통해 유럽국가들과 군사적인 단합과 영향력 강화에 성공했다. 군사안보 파워측면에서 전쟁 이전보다 커진 미국의 영향력을 국제사회에 발휘하게 된 것이다. 핀란드에 이어, 회원가입이 기대되는 스웨덴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에 대항하는 나토세력을 강화했으며, 유럽국가들과 러시아가 단절되는 추동력을 만들어 냈다. 미국은 동아시아로 확장되는 나토의 영향력을 통해, 동맹국들과 관계를 다지고, 그들로 하여금 중국과의 단절을 이끌어낼 가능성이 크다.

만약, 현 단계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일부지역을 점령한 채, 전쟁이 휴전 또는 종식된다 하여도, 나토의 동진을 막으려는 러시아의 전쟁시도는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러시아는 미국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군사적 규모가 커진 나토와 더욱 가까워진 국경선에서 대적해야만 한다. 전쟁이전, 러시아라는 권력국가가 누렸던 유럽에서의 입지를 생각해 본다면, 전쟁은 러시아로 하여금 권력(power)의 손실을 불러왔다. 전쟁개시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 전쟁기간의 인재유출과 희생, 유럽국가에 대한 에너지 수출 좌절, 유럽과의 경제교류 단절, 전쟁배상에 대한 부담 등을 안게 된 측면에서 보자면, 러시아의 전쟁개시가 가져온 손실들이 너무 크다.

한편, 중국은 한반도형 휴전을 중재안으로 제시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철군없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휴전에 도달하는 방식을 중국에서 제안한 배경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일부를 점령한 현 상황에서 전쟁이 종식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국제사회에 중국이 러시아를 지원하는 이미지를 주는 일이기도 하지만, ‘미국-유럽’ 대 ‘중국-러시아’ 구도에 중국이 놓여지는 국제체제 변화를 암시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구조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소환한 강대국 권력정치 구도이면서, 한반도 지정학의 불안정성을 더하는 역학관계가 아닐 수 없다.

유럽, 미국, 러시아와는 달리,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큰 부담이 없었던 국가이다. 오히려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의 지정학 변화로 중국이 지정학적 수혜를 입게 되었는데, 전쟁으로 서방과의 경제 및 무역 거래가 차단된 러시아가 서부에 집중되었던 물류망을 극동지역 중심으로 재편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중국이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항을 ‘내륙 화물중계항으로 사용 (2023년 6월 1일부터 무관세 교역) 하게 된 것이다. 이는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해양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보자면 전략적 손실이다. 중국이 전쟁 이전에는 운영하지 않았던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를 통해 동북지역 국내물류이동을 태평양 연안해로를 통해 실현하는 것은. 중국의 ‘차항출해-진주목걸이 전략’이 남아시아에 외, 동북아시아에서도 실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동북아의 긴장을 불러오는 사건인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지 않고, 휴전 혹은 종식으로 종결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영토를 회복하지 못한 우크라이나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러시아일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는 정부관료의 심각한 부패로 국가발전이 정체되어 있었던 국가이다. 전쟁으로 파괴된 영토를 회복하는 대가로 서방으로부터 국가 재건을 위한 도움과 러시아로 향하지 못하는 투자를 받아낼 것이다. 중장기적 시각에서 보자면, 전쟁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고도의 발전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나토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유럽국가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질 것이며, 대신 러시아 세력을 막아내는 완충지대 임무가 주어질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여전히 “러시아로부터 완전한 영토회복, 전쟁에 대한 러시아의 피해보상, 푸틴의 전쟁범죄 인정이 선결된 후, 평화협상이 가능하다”는 강경한 입장이지만, 우크라이나가 강대국 세력균형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세계가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논하고, 한반도형 휴전을 논하는 것은 강대국 권력(power)정치의 소환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변화되는 극(極)질서와 미-중 세력충돌지역에서 증대되는 불확실성은 향후, 한반도 국제정치가 현실주의 지정학에 더욱 민감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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