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 사학과 한상준 교수. 국제학부 중국지역 전공 담당. 
아주대 사학과 한상준 교수. 국제학부 중국지역 전공 담당. 

외교가 중요하지 않은 국가는 없지만, 한국은 특히 중요하다. 한반도가 갖는 지정학적 특징과 가치는 한국 외교의 엄중함을 더욱 요구한다. 한국 외교는 한반도에 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미국, 중국, 일본, 북한 등으로 둘러싸여 있고, 좋건 싫건 간에 이들 국가를 상대해야 하는 책무를 지고 있다. 만약 국가가 이사할 수 있다면 유럽이나 북미 혹은 남태평양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으로 옮겨가고 싶지만, 그것은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까 한국 외교는 노련함과 신중함을 품고 주변국들을 상대하면서 한국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정책을 항시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이 상대해야 할 주변국의 외교력이 상당하다는 사실은 한국 외교의 어려움을 한층 가중한다. 현재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지위를 유지하는 미국은 정치·경제·군사·외교 등의 방면에서 한국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은 정치 체제의 특성상 집권당이 교체되지 않고 권력을 지속해서 행사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외교 경험의 장기적인 축적을 바탕으로 국가의 외교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게 만드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특히 북한은 외교정책이 북한 정권의 생존과 직결되고 있다는 특징까지 내포한다. 일본은 근대 이후 축적된 외교 경험과 제국주의 국가를 운영했던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습득한 ‘탄탄한’ 외교력을 내세운다. 한반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한국이 반드시 상대해야 할 국가의 외교력이 이처럼 만만치 않다는 사실은 한국 외교의 고민을 더욱 깊게 한다.

 주지하듯이 외교정책을 포함한 안보, 국방 등의 분야에서 ‘진보’와 ‘보수’의 구별은 무의미하며 구분돼서도 안 된다. 보수 정부이건 진보 정부이건 간에 국가가 추진하는 외교정책의 최종적인 방향과 목표는 국익이다. 그러한 외교정책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에는 정해진 방식이나 특정한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편적인 가치에 어긋나는 반인륜적인 수법이 아니라면 그 무엇이라도 외교정책에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민간 영역의 다양한 교류, 혹은 죽음이나 스포츠 등도 국가 관계 개선의 결정적인 수단으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1960년대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극도로 악화했던 북·중 관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됐던 것은 1969년 베트남의 지도자 호찌민의 장례식이었다. 최용건이 이끄는 북한사절단이 베트남에서의 조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중국 베이징에 들러 중국지도부와 회담을 진행하며 북·중 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다. 이는 북·중이 호찌민의 죽음을 활용해 일종의 조문외교를 펼친 결과였다. 1970년대 미·중 데탕트의 시작을 가속한 것은 1971년 미국 탁구 선수단의 중국 방문이었다. 미국 탁구 선수단은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을 순방하면서 친선경기를 펼쳤고, 탁구라는 스포츠 경기를 활용한 소위 ‘핑퐁외교’의 전개는 미·중 관계 개선의 단초를 열었다. 

2024년 2월 14일 한국과 쿠바가 공식 수교를 맺었다. 이로써 쿠바는 한국의 193번째 수교국이 됐고, 유엔 회원국 중에서 한국이 수교를 맺지 않은 국가는 이제 시리아만 남았다. 외교부는 “중남미 가리브 지역 국가 중 유일한 미수교국인 쿠바와의 외교 관계 수립은 한국의 대중남미 외교 강화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으로,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한국의 외교지평을 더욱 확장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또 ‘북한의 형제국’이라 불리는 쿠바가 한국과 수교를 맺으면서 북한 외교정책에도 일정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2018년에는 미겔 디아스카넬 당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회담하는 등 양국은 최근까지도 밀접한 관계를 과시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쿠바와의 수교는 보수 정권인 윤석열 정부의 외교적 성과이기는 하다. 하지만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 정부가 지난 20여 년간 쿠바와의 수교를 위해 지속해서 노력해 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20년의 외교적 노력의 과정 중에는 진보정권이 집권했던 시기도 있었고 보수정권이 집권했던 시기도 있었다. 한국은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 쿠바에 수교를 제안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양국 영사 관계 수립을 제안한 바 있다. 2016년 박근혜 정부 시절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이 외교부 장관으로는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했고, 윤석열 정부 기간인 2023년 5월 박진 당시 외교부 장관도 과테말라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쿠바의 외무부 차관을 만나 수교를 제안했다. 이처럼 한국정부는 쿠바와의 수교를 맺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였고, 그 결실이 이번 정부 들어서 맺어진 것이다.        

한국과 쿠바의 공식 수교는 한국 외교의 분명한 성과다. 이는 한국의 진보정부와 보수정부가 지난 20년간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성과를 얻기 위해 꾸준하게 노력해 얻은 결과물이다. 이처럼 국가의 외교정책에서 진보와 보수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영 논리에 좇아 외교정책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한다면 국익이 손상된다. 외교정책 결정의 책임자들은 항상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면서 G2로 부상한 중국은 전통적·역사적으로 한국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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