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 중국연구원. 정혜영 학술연구교수.
건국대 중국연구원. 정혜영 학술연구교수.

◇ 리콴유의 세계질서관  

국제정치(international politics)의 사전적 정의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정치 관계’를 의미한다. 정치관계란 권력과 영향력을 추구하는 관계인데, 한 국가의 정치 관계를 세계질서 안에서 논하자면 국가 간 권력정치 영향력뿐 아니라 문화와 경제, 사회, 역사, 지리적 분야의 광범위한 영향력을 논하는 개념이다. 싱가포르는 운이 좋게도, 이에 대해 명석한 이해를 지닌 지도자 리콴유(李光耀)가 있었다. 리콴유는 지정학적 문제와 문화적 문제에 정통했다. 세계 강대국의 그 어느 지도자보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뿌리 깊은 이해를 지녔던 인물이다. 미국과 중국을 자국 국가이익을 위해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살아남기 위해 어떠한 외교와 경제전략이 필요했는지?, 싱가포르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국정 운영 방향성에 대한 확신을 지닌 지도자였다. 

말레이시아에서 축출돼 독립하다시피 한 냉혹한 지리적 논리, 역사적, 민족적, 경제적 세력, 모든 것이 운명지어진 싱가포르의 형편없는 운명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 올린 위대한 인물이다. 권위주의적 통치, 언론탄압과 인터넷 검열, 엄격한 규율과 형벌로 인해 그를 독재자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를 제3세계의 독재자와 함께 놓고 평가하기엔, 그는 놀라운 개방적 업적과 발전성과를 이뤄낸 차별적 인물이다. 총리 취임 시 1인당 국내총생산 400달러였던 싱가포르를 8만2000달러(2022년 기준)가 넘는 아시아 최대 부국으로 이끄는 기반을 다졌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성립 초기 총리 리콴유와 초대 외무부 장관 라자라트남은 “싱가포르는 국가 규모가 작고 자유무역을 지향하기 때문에 외교 문제에 민감하지 않으면 작은 문제에도 국가 경제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해 외교정책에 높은 중요성을 부여했다. 그렇다면 그는 중국과 미국을 어떻게 바라보았으며, 미·중 경쟁에 대한 국제질서를 어떻게 예견했는가? 

◇ 미국과 중국에 대한 그의 생각

리콴유는 2015년 3월 23일 서거에 이르기 전까지 31년간 총리직에 재임했는데, 중국과 미국에 대해 날카로운 분석과 탁월한 식견을 지니고 있었다. 먼저 그는 중국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지녔다. 중국은 13억 인구인 자국 시장에 대한 진입 거부가 중국의 경제제재 수단이 될 것으로 일찍이 판단했다. 또 자국 중심의 세계관 때문에 오늘날에도 주변국과의 국제관계를 옛 조공 관계의 연장선에서 바라본다고 했다. 중국이 이야기하는 평화로운 부상은 용어 자체가 모순임을 지적했는데, 평화적 방식으로는 부상할 수 없으므로 중국 정부가 이야기하는 ‘화평굴기’는 이웃으로부터 그 경계심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라 언급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의 굴기는 ‘평화로운 부흥’ 혹은 ‘평화로운 발전’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무력이 필요 없이 경제력만으로 주변국을 흡수할 수 있는데, 바로 이 점에서 미국이 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중국 중심의 경제권 형성을 억제해야 미국의 패권을 유지할 수 있으며 중국 주변국들이 경제적으로 미국과 협력을 지속해야만 중국의 부상을 억제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 중국 정부가 젊은이들에게 애국심 고취하는 행동은 국가 불안정을 초래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황제 중심적 거버넌스가 중국 각지에 살아있는 점이 결국 중국발전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견했다. 중국의 거버넌스는 창의성과 상상력을 제한하는 제도이며 배우기 어려운 중국어도 중국이 세계로 나가는 개방성과 포용성의 한계가 된다고 했다. 해외 인재 유치와 흡수가 어려운 국가 시스템을 개혁하지 않으면 중국의 성장은 한계에 다다를 것이며 공산당 권력 독점은 2150년까지 장기적으로 이루어질 일로 예견했다. 중국에서의 다당제는 곧 군웅할거의 불안한 정국을 의미하기 때문에 중국당국은 일당제를 고집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를 위해 중국은 100년이 걸려서라도 첨단기술 제어가 작동하는 사회로 진입하게 될 것을 확신했다.

 다음으로 미국에 대한 그의 견해다. 미국은 쇠퇴하지 않는다. 회복력이 뛰어난 국가다. 그러므로 그는 세계정치 게임의 규칙 제정자이면서 주인의 자리가 미국에 의해 유지될 것으로 보았다. 미국의 부는 진취적이며 혁신적인 경제문화에 근거하므로, ‘발명·혁신·부의 창출 욕구·개척자 기질’에 의해 미국의 부는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모든 강대국과 신흥 강대국 중, 가장 온건한 나라이면서 강압적인 태도를 덜 취하는 국가이며 번영된 세계를 위해 자신의 부를 나눠줄 줄도 아는 나라인 것으로 진단했다. 

그러나 미국이 가끔 인권 문제로 리콴유 특유의 통치 방식에 대해 비판을 가했기 때문에 그도 인권을 중시하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문화 우월의식일 뿐이라며 종종 힐난했다. 리콴유는 민주주의 확립 보다 국가의 기강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무질서와 국가 기강 위험성이 존재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안정되지 않은 개발도상국에서는 강력하면서도 정직한 정부가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차후, 싱가포르의 이러한 강한 정부 시스템, 청렴한 관리, 최고 인재 기용에 따른 임금의 차별화, 엄격한 사회규율, 글로벌 다국적기업 유치와 자국 기업의 해외 진출로 경제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배워 간 사람은 시진핑을 비롯한 중국 관료들이었다.

마지막으로 미·중 갈등에 대한 그의 의견은 싱가포르의 국익과 연결된 견해였지만, 강대국 행동에 대해 시사점을 던져준다. 중국은 자국의 이익 관점에서 국제사회를 바라보기 때문에 세계를 바꾸는 것에 관심이 없고, 자신이 굴기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미국 시장과 기술이 필요하므로 미국을 손절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이 필요할 것이며 미·일을 합친 것 보다 중국의 잠재적 비중이 크기 때문에 역학 구도는 필요하다고 보았다. 미국이 중국에 취할 수 있는 방향은 ‘관여’ 혹은 ‘고립’ 정책이지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면 그르친다고 생각했으며 한 가지로 일관해야 미국의 전략이 성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중국이 주변국에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도록 내버려두면 종국에는 중국 세력권이 형성돼 지역 패권국으로 부상할 수밖에 없으므로 주변국에서 중국의 말에 순종하지 않도록 하는 미국의 정책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리콴유는 미국이 중국을 선량한 국제사회 구성원으로 대하고 그러한 공간을 만들어 줌으로써 미국에 덜 위협적인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듯하다. 중국을 강압적으로 행동하는 국가로 내몰지 말고, 지역 내 책임 있는 국가로 성장하도록 20~30년 동안 역할 적응 기간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경제가 이웃국들과 무역·투자로 의존·양립하도록 만들어야 일방적인 패권을 휘두르지 못하게 될 것으로 보았다. 그 때문에 중국이 국수주의적인 국가로 남지 않도록, 외부 세계와 접촉해 중국의 문화적 가치관과 도덕적 기준을 변화시키는 온건한 방법을 생각했다. 

리콴유는 중국이 글로벌 체제 안으로 잘 편입되고 흡수돼 국제적 기준을 준수하는 국가로 성장하는 것이 싱가포르의 국익에도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중국이 서방에 적개심을 품은 국수주의 세력으로 성장하지 않도록 중국이 이웃과 조화로운 관계를 만드는 일을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의 개방화와 국제화가 심화해야 하며 중국 젊은이들이 국수주의와 민족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개방적이고 겸손한 태도로 자라나게 해야 함을 강조했다. 리콴유는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 강대국 지위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지역 내 맹주 역할을 중국에 빼앗기지 않는 것임을 강조했다. 미국 외교의 역내 관여로 중국의 지나친 세력 확장을 막고 싶어 했다.   

◇ 조용하지만 강한 싱가포르의 강소국 외교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상황에 따른 외치를 해나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국이 국익에 맞는 방향으로 강대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세계 정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행동주의 외교로서 자신만의 외교 공간을 넓혀왔다. 싱가포르의 국제정치는 지역(아세안) 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중립성을 유지하는 것이었으며 크게는 미·중 세력(power) 모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서 전략 균형 공간을 마련했다. 그 공간 안에서 최대한의 국가이익을 추구하고 실용주의 경제발전을 도모했다. 그 결과, 중립성이 필요한 동아시아 금융서비스 경제를 키웠으며 역내 자유무역의 해양 경제를 견인하는 국제무역 허브로서 자신이 지닌 지정학을 국가의 부(富)로 연결했다. 

이러한 정책 기조를 계승한 리센룽(李显龙) 역시 ‘동남아 지역 미·중 세력균형’을 중시하고, 중재자로서 중립노선을 고수한다. 2009년 리센룽은 미·중 관계에 따라 싱가포르 경제발전이 달라진다고 실토했는데, 싱가포르의 외교 균형이 경제발전문제와 밀접한 영향 관계임을 인식한 발언이었다. 싱가포르의 역내 다자주의는 동남아 국가들을 결속시켰으며 아세안 공동체 안에서 싱가포르의 정치 위상이 강화되는 선순환 결과를 불러왔다. 강대국 사이에서는 조용하지만, 강한 강소국 외교를 펼쳤다. 

미·중 갈등 격화로 국제정치의 패러다임이 전환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 역시 ‘미·중 세력균형의 지렛대’ 사용법을 바꿔나갈 것으로 판단된다. 싱가포르가 불확실한 미래를 어떠한 행동주의 외교로 넘고자 하는지, 다시 한번 그들의 미·중 외교를 주의 깊게 살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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