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 중국연구원. 정혜영 학술연구교수.
건국대 중국연구원. 정혜영 학술연구교수.

‘디지털 경제 (digital economy)란?’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분배·소비 등의 경제활동이 디지털화되고 네트워크화된, 정보지식 생산요소에 의존하는 경제를 말한다. 디지털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에 기반하기 때문에 네트워크 효과가 존재하며, 디지털 공간의 ‘선점성’으로 인해 글로벌 차원의 독과점 형태 또는 첨단기술 보유자에게 부가 집중될 수 있다.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디지털 첨단 기술패권’을 두고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는 형세가 디지털 경제에서 보여지는 이유이다. ‘디지털 무역장벽(TBT), 국경간 데이터 이동 규제, 디지털 상품 관세’ 등 각종 장벽 요인이 미-중 디지털경제 블록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정치경제적 거버넌스와 그 매커니즘 결합이 가능함으로 인해,  디지털 첨단기술 경쟁의 승자 국가가 역내패권을 장악할 확률이 커지고 있다. 

“심화되고 있는 미-중의 디지털기술 경쟁 속에서 이루어지는 기술협력에 대해 아세안 국가들은 어떠한 자세로 임하고 있을까?”

아세안 지역은 중국의 지정학적 글로벌사업인 ‘일대일로’의 영향이 깊은 곳이다. 중국은 2015년부터, 일대일로 참여국을 대상으로 유·무선통신 기반시설, 클라우드 컴퓨팅 등을 지원하는 정책인 ‘디지털 실크로드(DSR)’를 전개했으며, 그 중심에서 국가 보조금으로 해외진출이 용이했던 화웨이(Huawei), 차이나텔레콤(中国电信), 차이나유니콤(中国联通), 차이나모바일(中国移动通讯), 하이크비젼(Hikvision), 다화(Dahua Technology), 헝퉁그룹(亨通集团) 등이 적극적으로 디지털 육·해상 광케이블, 5G 통신 인프라 건설에 나섰다. 중국과 육상·해상 국경을 마주한 아세안 지역의 디지털 인프라 건설은 지정학적 안보 전략가치가 높고, 인프라 연계가 중국 대륙과 용이하기 때문에 중국이 미국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근래에는, 육상과 해상의 통신뿐 아니라, 중국항천과기그룹(中國航天科技集團)의 위성발사와 연계된 베이더우(北斗) GP항법 서비스를 수용하는 국가도 라오스, 브루나이, 태국,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세계 30여개국 동참)으로 늘어나고 있다. 

중국과 아세안의 디지털 데이터 이동무역 역시 세계최고 수준인데, 알리바바, 텐센트, 징동이 동남아 전자상거래 및 전자결재 시장의 지배력 측면에서 미국기업을 넘어선 것과 무관치 않다. 더 나아가, 화웨이는 아세안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정부·기업·대학 등과 협업으로 5G, 공공클라우드, AI 분야에서 혁신교육을 지원하고, Digital Talent Summit를 통하여 중국 중심의 디지털 기술 표준을 전파한다. 미국의 강력한 제재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중국 통신장비의 저렴한 가격과 기술은 개도국에게 여전히 큰 매력으로 읽힌다. 중국기술로 구축된 디지털 인프라로 인해, 자연스럽게 중국을 아세안 스마트시티 건설 협력자로 인도하고 있다.

그러나 아세안에서, 인공지능, 산업로봇, 산업인터넷 네트워크, 퀀텀컴퓨팅, 데이터센터 등의 첨단기술 분야는 미-중의 글로벌 각축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분야이다. 인프라 건설에 대한 부채 부담으로, 아세안 각국의 디지털산업 정책 (Industry 4.0) 은 중국의 디지털 기술패권에 예속되지 않으려는 정치적 성향도 강해졌다. 플랫폼기업 중심의 공유경제가 빠르게 파고들어 데카콘들이 배출된 아세안은, 자신들의 디지털 경제가 미-중의 각축에 의해 어지럽혀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또 다른 기술력을 지닌 축, 즉 유럽기업들의 디지털 기술협력 진출강화, 일본과 한국기업의 디지털 기술력이 중국의 일방적 질주를 막고 있기 때문에 디지털경제 파트너 선택에 있어 아세안은 자유로운 판단을 한다. 실제, 트럼프 정부시기의 압력으로 화웨이와 협력하던 적지 않은 아세안 각국의 통신회사들은 5G 벤더회사를 스웨덴 에릭슨과 핀란드 노키아로 다변화 했다. 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아세안 국가들의 협력자세는 자국의 이익에 따라 상당히 유동적인 자세를 보인다. 

먼저, 아세안 각국은 대중국 디지털 실크로드 협력에 대해, 무조건적 수용도 아니며 미국을 의식해 적극 거부하는 움직임도 아닌, 디지털 기술분야에 따라 ‘합종연횡(合從連橫)’의 선택적 협력자세를 보인다. 중국에 대한 아세안 개별국의 이합집산(離合集散)적인 협력태도는 ‘미-중 갈등의 첨예화’, ‘GVC 재편 움직임’, ‘자국의 경제안보 방향’ 등의 외부환경 압력으로 변화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즉 첨단기술 협력은 미국의 견제, 미국 및 유럽 선진기술 기업의 투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판단으로 인해, 중국 디지털 실크로드 협력을 종종 번복·중단하며, 기술습득 조건 또는 사업 재협상용에 활용했다. 

두 번째, 동남아국가연합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차원에서 추진하는 ‘아세안 중심성’은 안정, 평화, 화합, 역동성, 개방성의 원칙을 바탕으로 아세안 개별국이 중국-미국의 압력에서 벗어나 선택적 협력을 하도록 뒷받침 해준다. 특히 아세안은 비동맹 및 중립주의적 안보에 의해 개방적인 외교관계를 맺고, 역외 국가와 자유로운 경제관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그러나 투자여력과 기술적 한계에 있는 국가들이 디지털경제 완성을 위해 완전 독립적 선택을 하기는 어렵다. 아세안 전자상거래 토종기업들이 ‘알리바바, 텐센트, 화웨이’라는 중국 거대 플랫폼 기업의 영향력과 분리되기 힘든 구조를 보여주듯, 미국과 중국의 가치사슬 수용에 따른 첨단 디지털 기술과 거대 금융자본 협력을 무시하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세 번째, 중국의 디지털 실크로드는 중국과 국경을 인접한 아세안 저개발국가에서 선호한다. 특히 디지털 실크로드의 신형 인프라 측면인 ‘5G, 고속철도, 스마트시티, 전자상거래 플랫폼’ 분야에서 강한 협력관계에 있는 중국은, 개도국을 지원하는 경제 축을 통해 중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이들 국가들을 지렛대로 미국을 견제한다. 반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같은 디지털 첨단기술 수준을 어느 정도 확보한 국가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국익에 유리한 협력방향을 선택하는데, 기술 별로 양대 축 모두와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는 특징을 보인다. 충분한 첨단기술은 없지만, 베트남, 필리핀과 같이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할 줄 아는 국가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경쟁할수록 협력노선의 변화를 펼치며 상황을 자국에게 유리하게 이끈다. 베트남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스탠스를 취해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얻는 반면, 필리핀은 중국의 부상을 기회로 활용하면서 중국으로부터 인프라가 부족한 필리핀에 기반시설 원조를 얻어냈다. 이들 국가에게 미국과 중국은 헤징(hedging)의 대상이다. 

동남아 각국의 디지털경제 발전을 견인하는 핵심은 역외기업으로부터의 ‘투자유치와 기술습득’이다. 아세안 디지털산업 전환(TX)을 이끄는 상위 100대 다국적기업은 실질적으로 중국, 일본, 한국 기업이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기술보유 측면에서 일본기업의 이미지는 여전히 아세안 국가들에게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한국기업에 대한 신뢰도는 중국보다 강한 편이다. 한국은 아세안 지역에서 형성되고 있는 디지털 신(新)냉전과 다극(Multi-Polarization)질서를 이해하고, 아세안 개별 국에서 일어나는 실질적인 미-중 디지털기술 주권 경쟁구조 이해를 바탕으로 투자협력을 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분야에서 일어나는 미-중 격전(激戰)의 치킨게임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이합집산하는 아세안 개별국가의 전략과 산업정책 방향을 좀 더 세부적으로 이해하며, 거시적 관점의 디지털경제 공급망 형성을 조망할 필요가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더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