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학교 사회과학기초자료연구소 한혜진 연구원.
경북대학교 사회과학기초자료연구소 한혜진 연구원.

작금의 한일관계를 바라보고 있자니 과히 양국은 반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도 여전히 1965년 체제에 머물러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더 거슬러 올라가 지금의 외교참사의 씨앗이라고도 할 수 있는 미국 주도의 1951년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틀이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아연함이 든다. 

지난 3월 16일 12년만에 고대하던 한일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한일 관계는 급물살을 타고 돌아나올 수 없는 새로운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그 1년 간의 과정을 지켜보며 대일 행보에 있어 65년 이후 이렇게 우려와 기대, 실망 그리고 참담함을 골고루 안겨 준 정부가 있었던가 과거를 절로 짚어보게 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자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이었던 일본과의 역사문제를 포기하였다. 여기에 더해 헌법수호, 법치주의를 외쳐왔던 행정 수반인 대통령이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최대의 법적 영향력을 가진 대법원의 판결을 부정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과연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일본 정부와 법원은 과거 90년대 재판에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으며 또한 징용은 강제 노동이라는 것을 이미 인정하였다.

중국이 한국과 동일한 케이스로 일본과의 재판에서 일본 피고기업이 합의하고 문제가 봉합된 사례가 엄연히 있다. 국제법 또한 개인청구권을 인정하고 있으며 더구나 21세기 들어 더욱 피해자 중심의 인권 편에 서고 있다. 시간은 걸릴지라도 일본과의 강제동원 문제는 승산이 매우 높은 상황에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 결과 오히려 양국이 대등하고 올바른 새로운 미래지향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해버린 자승자박의 결과를 낳아버렸다.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윤석열 대통령의 우려스러운 대일 정책은 예견되었던 것이긴 했다. 대선후보 때부터 한일관계 조기 개선에 대한 의욕을 강하게 피력하였으며 정권 발족 전 한일정책협의대표단을 파견하여 기시다 총리와 조기 면담을 이루어냈다. 정권 초에는 기시다 총리에게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든 한일 간의 현안을 해결하겠다는 통 큰 약속 등을 해왔다. 이러한 모든 윤 대통령의 의지와 노력은 물론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행보들은 일본의 국내정치 상황에 대한 배려와 인지의 부재, 치밀한 외교전략의 부재로 일본과 여러 가지 불협화음을 낳아왔다. 결국 현재까지 특별한 외교적 성과를 얻지 못한 우리 정부는 일본 당국의 당혹과 놀라움을 넘어 이제 비웃음거리까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공이 다시 일본에게로 넘어갔다. 한국이 마련한 빈 잔을 앞으로 채워나갈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은 일본에게 얼마든지 있다. 현재 일본 정부 측에서도 어떠한 화답을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도 보인다.

한국 측 피해자에 대해 피고기업의 배상을 요구하는 일본 내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그렇게 빨리, 쉽게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들을 내어줄 것으로 기대 하지는 않는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정권이 바뀌면 대일정책 또한 바뀔 것이라는 점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오히려 한국의 이러한 여세를 몰아 남아 있는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한 해결을 앞으로 계속해서 우리에게 요구해 올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큰 안보 과제인 대만 유사시까지 한국에 군사 협력을 요구해올 가능성도 있다. 정상회담 시 우리 측의 최대한의 양보가 있었음에도 독도와 위안부 문제까지 언급했다는 사실은 하나의 시그널로 볼 수 있다. 일본은 오래 전부터 정상 간의 회담 시 여러 참모들이 모니터로 그 내용을 듣고 있다고 일본의 전 총리가 밝힌 바 있다. 독도 등 다른 현안에 대해 거론이 있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본다. 

한일 간에는 그동안 중요한 변곡점마다 미국의 개입이 있어 왔다. 이번 정상회담 또한 미국의 압력이 있었다고 일본에서도 밝히고 있다. 미국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 일관되게 멀어진 한일 양국을 다시 손을 잡게 하여 국제질서를 구축하는 데 활용해 왔다. 한국은 이제 세계 경제 12위의 나라로 성장했고 세계 각국은 이미 상호의존성이 매우 높아진 생태망에 살고 있다. 신냉전이라고까지 불리는 현 국제정세 속에 동맹과 파트너라는 이름으로 미국과 일본의 주도에 의해 미워도 같은 민족인 북한 그리고 중국, 러시아를 등지는 것이 과연 옳은 방향인 것인지 의문이다. 뼈아픈 민족 분단도 한일협정도, 위안부합의 실패도 지금의 대일 외교참사도 미국의 영향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만의 외교철학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외교역량을 키워 주변국에 휩쓸리지 않는 외교적 주도권을 발휘해 나가야 할 때라고 본다. 한일 양국이 세계에 모범적이고 바람직한 관계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견인해 나가는 정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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