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 사학과 한상준 교수. 국제학부 중국지역 전공 담당. 
아주대 사학과 한상준 교수. 국제학부 중국지역 전공 담당. 

1979년 1월 미·중 수교는 1969년부터 전환을 준비했던 중국 외교가 1970년대 데탕트라고 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미·중 수교와 맞물려 진행됐던 중국 개혁개방정책은 미·중 간의 협력과 교류를 강화시키며 양국관계를 밀착시켰다. 중국은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 세계무역기구(WTO : World Trade Organization) 각료회의에서 143번째 회원국으로 WTO에 가입하며 ‘세계의 공장’으로서 세계무역체제의 한 축을 담당하기 시작했고, 2010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무역 대국으로 성장하면서 G2 일원이 되었다. 이로써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며 세계를 분담하는 지위에 올라섰다.

2023년 현재,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표출되고 있는 갈등과 대립은 개혁개방 이후 40년에 걸쳐 형성된 양국 간 상호적인 경제이익 관계의 구조 자체가 변했다는 것을 반영한다. 더 이상 중국 경제 성장이 미국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미래산업과 군사기술, 우주산업 핵심인 인공지능, 자율주행, 무인기술 관련 정보가 5G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통해 이동하면서 초고속 통신망뿐 아니라 반도체, 빅데이터, 양자 컴퓨터 등을 둘러싼 기술 경쟁 분야에서 미국은 실질적인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2017년 출범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3월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선포한 배경과 원인이다. 그로부터 가속된 미중 디커플링(decoupling, 갈라서기, 탈동조화)은 2022년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고 주저앉혀야 한다는 목표에서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입장은 일치한다. 오히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의 거친 방법보다 더욱 정교한 방식으로 시진핑 정권을 옭아매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중국 봉쇄와 압박은 시진핑 정권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주목해야 할 점은 트럼프 정부 시기 중국과 미국은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실질적인 행동으로 중국 때리기에 나서기는 했지만, 시진핑이 주창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Make China Great Again)”과 트럼프의 외침인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는 적대적 공생관계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공명(共鳴) 현상이다. 미중 디커플링이 심화됐던 시기 필자가 참석했던 한중전략회의에서 중국 측 학자가 “미국의 중국에 대한 압박과 봉쇄가 단기적으로는 중국에게 손해일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중국에게 유리하다”고 평가했던 것도 미·중간의 적대적 공생관계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발언이라고 하겠다. 그러한 흐름과 상황은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으며, 시진핑 정부는 외부로부터 고조된 위협을 십분 활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2012년 말 최고지도자로 등장했던 시진핑은 오늘날 21세기 중국의 ‘시황제’로 불린다. 2017년 19차 당 대회 폐막 이틀 전 국가주석 임기 제한 철폐를 담은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던 중국공산당의 의도대로 2018년 3월 1일 전국인민대표대회는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폐지하는 개헌안이 99.8%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2021년 11월, 중국공산당은 40년 만에 제3차 「역사결의」도 채택하였다. 2021년은 1921년 창당한 중국공산당이 100주년을 맞는 해였으므로 명분과 맥락상에서 「역사결의」를 채택할 시기이기는 했다. 그런데 중국은 중국공산당 100년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결의문의 절반을 시진핑 집권 10년 업적을 강조하는데 할애하였다. 소위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강조되면서 시진핑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고, 2022년 10월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예상했던 대로 국가주석 3연임을 확정했다.

'한겨레' 신문 박민희 논설위원은 '중국딜레마'에서 시진핑 리더십이 외부로는 강력한 자신감, 내부로는 불안감의 두 얼굴로 등장했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시진핑은 권력을 잡은 직후부터 공산당 지도부를 향해 당이 처한 상황에 대한 위기감을 강조했고, 그 위기를 돌파할 강력한 지도자인 자신을 핵심으로 하는 시진핑 1인 체제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서구 자유주의가 중국공산당 일당통치를 위협한다는 두려움은 서구 민주주의를 비롯한 외부의 사상과 이념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났고, 결과적으로 중국은 대외적으로 더욱 강경한 태도를 취하였다. 박민희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가 집권했던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이 국제사회의 규범과 질서를 파괴하며 글로벌 리더십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동안 중국은 자신의 발언권과 영향력을 키우며 소프트 파워를 세계에 전파할 수 있었지만,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은 더는 서구의 제도와 사상을 따르지 않고 중국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하며 중국적 ‘천하체계’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천하세계’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또한 중국이 과연 미국을 넘어 세계패권국가 지위를 차지할 수 있을까?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다만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진정으로 책임 있는 대국의 위상과 지위를 확보하려 한다면, 국제사회의 비판적인 목소리에 보다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하드파워’보다는 ‘소프트파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중국의 부상이 주변국과 국제사회에 ‘21세기 신조공체제’의 등장이라는 오명을 전달한다면 궁극적으로 중국의 국익에도 이롭지 못할 것이다. 반면 중국의 ‘천하질서’가 국제사회의 다양화와 다극화에 기여하고 주변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면 이는 환영할 일이다. 시진핑 정권의 선택과 향배가 어떤 것일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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