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은 월드컵 추억보다 제2연평해전 6용사에 대한 기억으로

제2연평해전 6용사(왼쪽부터 윤영하 소령, 한상국 상사, 조천형 상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연합뉴스)
제2연평해전 6용사(왼쪽부터 윤영하 소령, 한상국 상사, 조천형 상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연합뉴스)

과거 일을 보면 결과에 대한 처우가 너무 야박한 것 아닌가 하는 경우가 있다.

스물한 해 전 일어났던 두 번째 연평해전이 그러했다.

당시 한일 월드컵에서 예상 외로 선전한 우리나라 축구 열풍이 한풀 꺾인 뒤 여운으로 들떴던 형제의 나라와의 3‧4위 결정전 분위기에 중계방송이 끝나가는 무렵 화면 아래로 경미한 교전이 있었음을 알리는 자막이 지나가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드러나는 그 해 6월 29일 교전은 바로 3년 전 우리 해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북한이 작정하고 기습 발포로부터 시작한 보복이었다.

북한 경비정 1척에 불이 나자 나머지 1척도 같이 물러나면서 교전은 20여 분만에 끝났다.

하지만 참수리 357정에서는 함교를 노린 북한군 첫 포탄에 치명상을 입은 윤영하 소령, 교전 직후 침몰한 357정 조타실에서 발견된 한상국 상사, 각자 위치에서 맡은 병기 방아쇠를 쥔 채 산화한 조천형 상사, 황도현‧서후원 중사, 교전 중 부상 후유증으로 숨진 박동혁 병장 등 6명이 사망했다.

또 참수리 357정에서는 숨진 윤영하 정장을 대신해 지휘했던 이희완 당시 중위를 비롯해 19명이 교전 중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6.25 한국전쟁 이후 북한 정규군과 싸우다가 숨졌는데도 교전 이틀 뒤 국군수도병원에서 해군장으로 거행된 합동영결식에는 당시 군 통수권자는 월드컵 결승전을 직접 관람하기 위해 일본 사이타마로 출국했었다.

답답한 일은 또 있었다. 당시 군인연금법에는 순직과 전사가 구분되지 않아 포괄적인 공무원 사망자로 규정하면서 전사자로서 추가 보상은 받지 못했다. 정부가 나서서 국민성금에 정부 지원금을 포함해 모두 3억5000만 원을 보상금으로 장병 가족들에게 전달했다.

유도탄 고속정으로 부활한 연평해전 6용사. 아래부터 윤영하함, 한상국함. 조천형함. 황도현함, 서후원함, 박동혁함. (해군 제공)
유도탄 고속정으로 부활한 연평해전 6용사. 아래부터 윤영하함, 한상국함. 조천형함. 황도현함, 서후원함, 박동혁함. (해군 제공)

해군 대응기동 절차가 5단계에서 3단계로, 참수리 고속정 초계활동도 초계함 사정거리 안에서 하도록 각각 개선됐다. 참수리 고속정도 방어력과 화력을 크게 개선한 윤영하급 고속함으로 대체했다.

이제는 해마다 6월 29일에 대한 우리들의 기억도 달라졌다.

차디차게 대해도 따뜻하게 달래보려고 해도 ‘그들’은 언제든지 사고를 친다는 것을.

그리고 나라를 위해 싸우다 다치거나 숨진 이들에 대해서는 정치 상황에 따라서가 아닌 마땅한 처우를 해야 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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