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융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대학교 아시아학과 교수. 소설가.
·강병융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대학교 아시아학과 교수. 소설가.

‘염소(GOAT, Greatest of All Time) 논쟁’은 스포츠 팬들에게 관람 이상의 흥밋거리이다. 각자 주장에 따라 팬들 간에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이 갈등이 스포츠 팬들이 즐기는 또 하나의 재미 요소가 되기도 한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istiano Ronaldo)냐? 리오넬 메시(Lionel Messi)냐? 세계 축구계 ‘염소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농구계 ‘염소 논쟁’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이냐? 르브론 제임스(Lebron James)냐? 하지만 최근까지 치열했던 테니스 코드의 ‘염소 논쟁’ 3파전은 이제 한 선수로 기울어가는 분위기다.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 라파엘 나달(Rafael Nadal)과 경쟁했던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가 얼마 전(2023년 6월 12일)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카스페르 루드(Casper Ruud)에게 승리하면서, 메이저대회 스물 세번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그는 이 분야 최다 우승자가 되었고, 해당 대회 최고령 우승 기록(만 36세 20일)까지 갈아치웠다. 조코비치는 페더러와 나달을 위대한 경쟁자라며 두 사람을 존중하는 인터뷰를 했지만, 그의 스포츠 정신을 담긴 말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대신 1회전 승리 후, 카메라 렌즈에 세르비아어로 자신이 직접 쓴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심장(Kosovo je srce Srbije.)”이라는 표현이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세르비아 출신은 그는 왜 이웃 나라 코소보를 조국의 심장이라고 했을까?

하나의 연합 국가였던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1991년 슬로베니아의 독립 선포를 계기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코소보의 경우, 2008년까지 세르비아 자치 지역으로 있다가 독립했는데, 북부 지역 주민들은 주로 세르비아계로 코소보를 자신의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다. 코소보 전체로 보면 이슬람교도인 알바니아계가 90% 이상이고, 세르비아계는 6%에 불과한데, 코소보 북부 세르비아 접경 지역은 반대로 세르비아계가 절대다수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요구하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sevic) 당시 세르비아 대통령은 1998, 1999년 2년에 걸쳐 코소보 알바니아계에 대한 ‘인종청소’를 벌였다. 그 과정에는 무려 1만 명이 넘는 코소인들이 숨을 거뒀다. 종국에 코소보가 2008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으나, 여전히 세르비아는 코소보를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현재, 미국과 유럽연합 등 99개국은 코소보의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러시아와 중국 등은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다.) 세르비아 사람들은 중세 정교회 수도원 등 많은 코소보를 종교의 중심지이자 민족의 발생지로 여긴다. 조코비치에게 “코소보가 세르비아의 심장”이라 발언한 이유다. 러시아 사람들이 우크라이나를 민족의 발생지로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발칸의 화약고’인 코소보에서 양국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와중에 조코비치가 던진 말이 큰 파장이 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르비아와 코소보의 갈등은 점점 고조됐다. 전쟁이 세르비아의 민족주의를 자극했다. 코소보 역시 이에 강경하게 대응해 왔다. 2022년 7월 코소보 정부가 북부의 세르비아계 주민에게 세르비아에서 발급한 차량번호판 사용을 금지하자,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를 차별로 여긴 코소보에 사는 세르비아계 경찰들, 판검사들은 집단 사퇴까지 했다. 심지어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도로를 막고 코소보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4명의 세르비아계 시장이 사퇴했고, 코소보 정부는 이렇게 빈 시장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선거를 치뤘다.

2023년 4월 23일 치러진 코소보 지자체 시장 선거가 갈등의 기폭제가 된 것이다. 세르비아인 많은 코소보 북부의 경우, 세르비아 진영의 후보가 당선될 수밖에 없는 정세인데, 친 세르비아 진영에서 선거를 전면 거부했다. 그 이유는 코소보 정부가 세르비아계 주민들을 박해한다는 것이었고, 코소보 정부는 세르비아인들의 이러한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선거도 계획대로 강행했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되었던 즈베찬(Zveçan) 시(市)에서는 (세르비아계 주민들의 불참으로) 114표밖에 얻지 못한 알바니아계 일리르 페치(Ilir Peci)가 당선되었다. 이를 용납할 수 없었던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시장의 출근을 저지하면서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2023년 5월 29일 경찰과 함께 출근을 강행했던 페치 시장과 이를 저지하려 했던 주민들 사이에 충돌이 생긴 것이다.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알바니아계 시장의 출근을 막기 위해 시청 청사 진입까지 시도했고, 이를 해산시키려던 북대서양조약기구의 평화유지군(KFOR) 병력과 몸싸움을 벌여 최소 주민 50명과 나토군 30명이 다쳤다.

사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23년 6월 15일 세르비아 군대가 코소보의 경찰관들을 구금하면서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알빈 쿠르티(Albin Kurti) 코소보 총리는 세르비아에 구금 중인 자국 경찰관 3명의 석방을 촉구하면서 국경 통제 강화를 지시했다. 이 조치에 따라 세르비아 번호판을 단 트럭의 코소보 입국이 금지되었다. 코소보는 세르비아군이 코소보 경찰관 3명을 납치해갔다는 입장이다. 반면 세르비아 정부는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코소보 경찰관 3명이 국경을 넘어와 체포했다고 말하고 있다.

두 나라의 갈등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 지역은 누군가에게는 ‘심장’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화약고’이다. 하지만 스포츠의 세계와는 달리 현실 세계의 국가 간 논쟁과 갈등은 희생이 뒤따른다. 코소보는 누군가의 심장도 아니고, 화약고가 되어서도 안된다.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평화로운 삶의 터전이 되어야 한다는 점, 그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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