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50조+알파’…5대 금융지주도 95조 투입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3년 만에 가계대출 최고 7%↑

사진=레고랜드
사진=레고랜드

‘레고랜드 디폴트’로 인한 금융위기 공포가 확산하면서 금융시스템 전체가 마비될 위기다.

지난 9월 28일 강원중도개발공사(GJC) 회생 신청 발언 탓에 2050억 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부도 처리로 이어졌다. 강원도가 보증 섰던 2050억 원은 200배가 훌쩍 넘는 50조 원+알파로 돌아왔지만 신뢰가 무너진 시장의 반응은 요지부동이다.

지방자치단체에 높은 신용도를 부여해왔던 시장의 신뢰는 바닥을 쳤다. 자연스럽게 ‘돈 줄’이 말랐다. 수년간 부동산 호황이 이어지면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많은 돈을 빌려준 국내 채권 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자기자본 비율 하락은, 반대로 타인자본 즉 부채 비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재정건전성 악화는 결국 중소 건설사 등의 자금난으로 이어졌다. 부동산 시장은 가격 하락과 금리인상이 동시에 맞물리면서 건설·부동산 업계의 줄도산도 우려되고 있다.

시계를 조금만 뒤로 돌려보면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가 떠오른다.

이 사건은 당시 미국 2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회사인 ‘뉴 센추리 파이낸셜’의 파산신청으로 시작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프라임(prime) 등급 보다 낮은 미국 주택담보대출의 일종이다. 모기지 부실 문제로 벌어진 파산신청은 시장 전체에 불안감을 확산했다. 

불똥은 주택담보대출 시장 전체로 번졌다. 자금경색이 시작됐고, 미국 정부는 부랴부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낮추며 대응했지만, 은행과 보험사 등이 줄줄이 파산했다.

결국 세계 4대 투자은행(IB)으로 꼽혔던 ‘리먼 브러더스’가 2008년 9월 파산신청을 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됐다. 

(그래픽=성주희 기자)
(그래픽=성주희 기자)

정부 ‘50조+알파’ 등 대규모 유동성 공급

‘레고랜드 디폴트’로 신뢰가 깨진 국내 시장은 극도의 불안감이 확산했다. 투자심리는 꽁꽁 얼어붙어 한국전력을 비롯한 한국도로공사, 국가철도공단 등 신용등급 트리플A 채권마저 줄줄이 모집에 실패했다.

한국가스공사(AAA)는 2년 회사채가 유찰됐다. 인천도시공사(AA+)는 3년물 500억 원 대상 투자자 모집을 포기했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PF 대출은 만기를 하루 남기고 기존 발행 금리 연 3.55~4.47%의 3배 가까운 연 12% 금리에 가까스로 차환됐다. 현대·롯데·대우건설의 채권 연대보증도 효과가 없었다.

정부는 부랴부랴 ‘50조+알파’라는 자금을 투입하는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채안펀드 20조 원,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 16조 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의 사업자 보증지원 10조 원, 증권사 지원 3조 원 등이다.

여기에 한국증권금융은 중·소형 증권사를 대상으로 환매조건부채권(RP)과 증권담보대출을 통해 3조 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했다. 산업은행도 증권사 CP 매입에 2조 원 규모를 투입하기로 했다. 증권사들에만 5조 원대에 달하는 유동성이 풀린다. 

또 금융회사의 해외채권 발행도 열어주는 한편 대출적격담보증권 대상에 은행채와 한전채 등 공공기관채까지 포함하기로 했다.

국민연금 등에 신용보증기금의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발행 물량에 대한 매입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P-CBO 보증은 개별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 등을 기초자산으로 유동화증권을 발행해 기업이 직접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특히, 예대율(은행의 예금 잔액에 대한 대출금 잔액의 비율) 규제 비율을 은행 100→105%, 저축은행 100→110%로 완화했다. 은행과 저축은행이 기업들에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이는 은행을 통해 시장에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취지다. 

가계대출 7% 돌파…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3년만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GJC 회생 신청 발언 이후 한 달여 만에 수백 배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유동성이 쏟아 부어지고 있다. 문제는 풀리는 돈 대부분이 기업과 금융시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임시방편이라는 점이다.

물가와 부동산 안정을 이유로 급격하게 올린 기준금리는 시중은행의 주택담보·전세·신용대출 등 가계대출 금리를 최고 7%대로 끌어 올렸다. 가계대출 금리가 7%를 돌파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3년 만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9월 금융기관 가중평균금리’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금리는 평균 5.15%로 10년 2개월 만에 최고치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4.79%로 10년 4개월 만에 최고다. 신용대출 금리도 9년 6개월 만에 6.62%를 기록했다. 

결국 5대 금융지주까지 긴급 자금 수혈에 나섰다. 5대 금융지주 회장들은 올해 연말까지 무려 95조 원 규모의 시장 유동성·계열사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시장 유동성 공급 확대에 73조 원을 투입한다. 대기업과 공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등에 자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그래픽=성주희 기자)
(그래픽=성주희 기자)

금융위기 뇌관 가계대출 시한폭탄 ‘째깍째깍’

인플레 등 물가 우려에 금리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지만, 수십 수백조 원에 달하는 유동성이 공급되는 기현상이다. 지난해 12월 당시 1.00%였던 기준금리는 올해만 빅스텝을 포함해 6차례 인상하면서 3.00%까지 올랐다. 

우리나라 가계 빚은 올해 2분기 기준 1869조4000억 원이다. 서민들과 취약계층이 안고 있는 신용대출, 전세자금 대출 등 대출이자 폭탄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단순 계산으로 금리가 2%포인트 상승하면서 서민들이 떠안아야 할 이자 부담은 40조 원 가까이 늘어난다. 시중금리로 환산하면 이자 부담은 60조 원에 육박한다. 특히 올해 8월 기준 전체 가계대출의 75.6%가 금리 인상에 취약한 변동금리다. 

대출이자와 물가, 부동산 등 서민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모든 지수가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이미 저소득층, 다중채무자 또는 저신용인 취약 차주 등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물가상승률도 부담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7%를 기록하며 3개월 만에 오름세로 전환했다.

물가상승률은 지난 5월부터 6개월 동안 꾸준히 5%대 이상 높은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은행은 내년 1분기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내년부터 규제지역 내 무주택자와 기존 주택을 처분하기로 한 1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을 50%로 단일화하는 등 대출 규제 완화에 나섰다.

규제를 풀어 줄 테니 대출받아 집 사고 높은 이자를 내라는 말이다. 15억 원 이상 주택이 특정 지역에 집중된 특혜라는 지적은 차지하더라도 서민들 등골을 뽑아 기업들을 살리고 있는 꼴이다.

한쪽에서는 거대 유동성을 공급하고, 다른 한쪽에선 금리를 올리면서 서민들만 높은 이자 부담을 떠안게 됐다.

(그래픽=성주희 기자)
(그래픽=성주희 기자)

한국은행 빅스텝 고심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 2일(현지시간) 4회 연속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연준의 4회 연속 자이언트스텝으로 미 기준금리가 3.75~4.00%로 오르면서 현재 한국 기준금리 3.00%보다 0.75~1.00%포인트 높아졌다.

국내 경제·금융당국 수장들은 비상 회의를 개최하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에 따른 대내외 상황을 점검했다.

시장과 물가, 부동산 등은 여전히 진정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자이언트스텝은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한 또 다른 압박이다. 예고대로 빅스텝을 밟으면 기준금리는 3.50%로 가계대출 최고금리는 9%까지도 넘볼 수 있다.

그러나 190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가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또 다른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어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오는 24일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 방향 결정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최소 0.25%포인트 이상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두 번 연속 빅스텝을 밟을지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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