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은 우현(又玄) 고유섭 선생(1905∼1944)이 타계한지 78주년 되는 날이다.

고유섭은 한국의 대표적인 미술사학자이자 미학자이다. 일제강점기 때 최초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에서 미술사와 미학을 전공한 미술사학계의 선구자다. 

그는 우리나라 전역을 직접 답사하며 유물유적과 미술작품을 연구하여 많은 연구업적을 남겼다. 

특히 고유섭은 한국미의 특징을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성'으로 정의하고, 우리의 전통미를 '구수한 큰맛'으로 표현한 것으로 잘 알려졌다 

"조선미술에 있어 ‘구수한 큰맛’이란 확실히 특징적 일면이요, 번역할 수 없는 일면이다. 중국의 미술은 웅장한 건설미가 있으나 이 구수한 맛은 없는 것이며, 조선의 미술은 체량적으로 비록 작다 하더라도 구수하게 큰맛이 있는 것이다." -고유섭, <조선고대미술의 특색과 그 전승문제> 중에서

그런데 이 '구수한 큰맛'에 대한 '미각'을 달리하는 주장이 있다. 

논문 <구수한 큰 맛: 번역된 자연미>(정혜린, 민족문화연구, 2020)은 해당 개념이 "그 질박한 뉘앙스와 달리 서양 미학과 미술사, 일본·중국의 미술과 긴밀한 비교 속에 조성된 것"이라고 말한다.

논문에 따르면 고유섭은 문화과학, 진·선·미와 지·정·의의 분류법을 수입하여 한국 미술문화의 모든 역사 구간을 아우르는 ‘보편타당한 가치 표준’을 탐색했다. 

논문은 "문화과학, 진·선·미와 지·정·의 등의 개념은 신칸트학파의 산물"이라고 밝혔다. 그 배경으로 '고유섭이 경성제국대학  재학 시절 철학·미학을 담당했던 아베요시시게는 빈델반트, 리케르트 등의 신칸트학파의 대표적 전달자'라고 전했다.

"고유섭은 당시 최신의 선진적 학문을 따라 자신의 학문의 방법론과 연구대상을 설정하고 이로부터 한국미술의 역사를 한국인의 손으로 서술하는 길을 걸었다. 그러나 근대 유럽의 학문 체제와 가치로 한국 미술문화를 재단하고 번역함으로써 그의 한국미술사에는 시서화일치를 추구하는 회화가 제외되고 공예만 남았다."

사실 한국근현대사에서 구수한 큰 맛과 같은 자연미를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으로 제시하는 발언은 수없이 이어져 왔다고 한다. 

논문은 "고유섭이 이러한 논란을 학계로 끌어들인 근원으로 짐작된다"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논문은 "그가 제시한 공예 미로서의 자연미는 근현대 한국 문화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지만 그 개념들이 한국 자생의 것이 아니라는 점은 한번도 명확히 지적되지 않았다"며 "이제 구수한 큰 맛이 근현대라는 시대의 산물임을 밝혀 이 개념이 지시하는 과거, 이 개념에서 시작한 현재가 고유섭의 시대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질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수한 큰맛'(다할미디어) 표지 이미지.
'구수한 큰맛'(다할미디어) 표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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