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군 송면에서 동북쪽으로 1∼2km에 걸쳐 있는 계곡 '선유구곡' 중 제1곡 '선유동문'. (사진=신정일)
괴산군 송면에서 동북쪽으로 1∼2km에 걸쳐 있는 계곡 '선유구곡' 중 제1곡 '선유동문'. (사진=신정일)

오천년 역사가 켜켜이 쌓아올린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적. 대대로 전승된 장인의 솜씨와 금수강산이 빚어낸 우리의 소중한 국가자산을 찾아보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나더러 어떤 사람들은 한량이라고 또는 신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언제 어디를 가고 언제쯤 돌아온다는 정해진 시간 속에 떠나고 돌아오는 내가 무슨 신선이고 한량이겠는가. 그럼에도 떠나고 돌아옴이 생활화 되어 있다는 사실만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데 충분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게 주어진 특권 아닌 특권 이것을 자유 혹은 자연스러운 삶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옛사람들이 느꼈던 자유나 한가로움 그리고 자연과 사람의 어우러짐은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을까.

"강과 산, 그리고 바람과 달은 본래 일정한 주인이 없고 오직 한가로운 사람이 그 주인이다" 송나라 때의 시인인 소동파의 문집인 <소문충공집>에 나오는 말이다.

"부귀를 누리는 선비는 강산이나 소나무와 대나무의 즐거움에 뜻을 두지 못하고 산천, 괴이한 형상, 노을과 구름, 대나무와 돌, 시와 술, 바람과 달은 오직 세상을 만나지 못한 사람만이 비로소 그 즐거움을 독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 사이에 있는 씩씩하고 뛰어난 곳이나 범상치 않은 곳은 하늘이 어진 사람에게 주어 그들의 우울한 생각을 풀도록 한 것이다."

명나라 때의 문인인 황시익이 지은 <지비록> 에 나오는 구절과 같은 장소가 괴산의 선유동이라면 과찬일까?

경치가 아름다운 곳도 역사 속에서는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은 곳이 있는 반면, 경치는 아름답지 않은데, 역사 속의 큰 족적을 남긴 곳도 있다. 괴산의 외선유동과 내 선유동은 역사 속에 큰 인물들이 살다 간 곳이고, 아홉 개의 구곡이 두 개나 관평천과 화양천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다. 그리고 다른 지역의 길보다 걷기에 가장 알맞은 길이 이어지므로 걷는 사람들이 아주 만족해하는 곳이다.

누군가 나에게 나라 안에서 걷기에 가장 좋은 곳이 어디인지 물으면 주저 없이 말해주는 곳이 몇 곳이 있다. 그 중의 한 곳이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있는 외 선유동과 화양동계곡이다.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에 있는 내 선유동과 기가 막힐 만큼 신비하게 생긴 용추를 답사하고 517번 도로를 넘어서 충청도 땅과 경상도 땅의 경계에 자리 잡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 관평리官坪里에 이른다.

관평리는 본래 괴산군 남하면의 지역으로, 큰 산골짜기 안에 들이 있어 골안들이라고 하던 것이 변하여 관들, 또는 관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곳 아랫관평에서 칠성면 사기막으로 넘어가는 고개는 군자산 밑에 있으므로 군자티라고 부르는데, 이곳에서 외선유동 거쳐서 화양동 계곡으로 이어진 도보답사를 시작한다.

이 마을 초입에 3.4백년은 너끈히 되었을 느티나무가 있으며, 그 아래에 수십 명의 사람이 쉴만한 바위가 있는데, 바위 아래를 흐르는 물이 바로 관평천이다. 개울물보다 조금 더 큰 관평천을 따라 길은 이어지고, 얼마쯤 내려가다 보면 아랫관들 마을에 이르고 그 소 부근의 바위에 제비가 깃든다는 제비소가 있다. 여름철에만 입장료를 받는 매표소는 텅 비어 있고, 여기서부터 관평천변을 따라 아홉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외선유동이다.

조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송시열과 이준경 등 이름난 사람들이 즐겨 찾았으며, 그들이 오래도록 대代를 이어 살고자 했던 곳이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의 선유동 부근이다.

송면리는 본래 청주군 청천면의 지역으로 사면四面에 소나무가 무성하여 송면松面이라 부른다. 이곳 송면리는 조선 선조宣祖 때 붕당이 생길 것을 예언했던 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이 장차 일어날 임진왜란을 대비하여 자손들의 피난처로 지정하여 살게 했던 곳이다.

어쩌다 승용차만 지나는 작은 길 따라 냇물이 흐르고 냇물 위에 기이한 형상을 한 바위들이 하나둘 나타난다. 대야산(931m)을 사이에 두고 10km 떨어져 있는 괴산군의 선유동계곡보다 계곡의 길이가 더 길고 계곡미가 빼어나 문경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인공적으로 쌓아 놓은 듯한 거대한 암석 사이로 맑은 옥계수가 흐르며 굽이마다 옥하대·영사석·활청담·세심대·관란담·영규암·난생뢰·옥석대 등의 경승지가 있다.

용추동에는 이재가 지은 둔산정사와 이재를 추모하는 후학들이 그를 기려 1906년에 세운 학천정이, 계곡의 하류 끝지점에는 의친왕이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칠우정이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곳곳에 석각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그 가운데 최치원이 쓴 <선유구곡>이 유명하다.

괴산 선유동. (사진=신정일)
괴산 선유동. (사진=신정일)

선유구곡은 괴산군 송면에서 동북쪽으로 1∼2km에 걸쳐 있는 계곡이다. 조선 시대 의 큰 유학자인 퇴계 이황이 7송정(현 송면리 송정부락)에 있는 함평 이씨댁을 찾아갔다가 산과 물, 바위, 노송 등이 잘 어우러진 절묘한 경치에 반하여, 9달을 돌아다니며 9곡의 이름을 지어 새겼다 한다. 긴 세월이 지나는 동안 글자는 없어졌지만 절경은 여전하다.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노닐던 곳이라는 선유 동문을 비롯해 경천벽, 학소암, 연단로, 와룡폭, 난가대, 기국암, 구암, 은선암이 9곡을 형성하고 있다.

제1곡은 선유동문이라고 부르는데, 이 문은 백 척이 넘는 높은 바위의 사이사이 마다 여러 구멍이 방을 이루고 있다. 제2곡은 경천벽으로 절벽의 높이가 수백 척이나 되며 바위층이 첩첩을 이루어 하늘의 지붕인 듯 길게 뻗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제3곡은 학소암으로 기암절벽이 하늘로 치솟아 그 사이로 소나무가 조밀하게 들어서 있어서 푸른색의 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고 한다. 제4곡인 연단로는 그 위가 평평하고 가운데가 절구처럼 패어 있는데, 신선들이 이곳에서 금단을 만들어 먹고 장수하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제5곡은 와룡폭포로 용이 물을 내뿜는 듯이 쏟아내는 물소리가 벼락치듯 하고 흩어지는 물은 안개를 이루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제6곡은 난가대이고 제7곡이 기국암인데, 난가대와 기국암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서려 있다.

조선 명종 때의 일이다. 한 나무꾼이 도끼를 가지고 나무를 하러 갔다가 바위에서 바둑을 두는 노인들을 발견하고 가까이 가서 구경을 했다. 그러자 한 노인이 “여기는 신선들이 사는 선경이니 돌아가시오.” 했다.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 옆에 세워둔 도끼를 찾았는데 도끼자루는 이미 썩어 없어진 뒤였다.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니 낯 모르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누구인가 물었더니 그의 5대 후손이었다. 그곳에 간 날을 헤아려보니 그가 바둑 구경을 한 세월이 어느 사이에 150년이나 되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도끼 자루가 썩은 곳을 ‘난가대’라고 불렀고, 노인들이 바둑을 두던 곳을 ‘기국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제임스 힐튼의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히말라야에 있는 상그릴라에 가면 나이가 들지 않는다는데, 기국암이 바로 그런 곳이다.

괴산 선유동의 기국암. (사진=신정일)
괴산 선유동의 기국암. (사진=신정일)

제8곡은 거북 바위로 그 생김새가 마치 큰 거북이가 머리를 들어 숨을 쉬는 듯하여 구암(龜岩)이라 하며, 겉은 여러 조각으로 갈라지고 등과 배가 꿈틀거리는 듯하다.

제9곡이 은선암이다. 두개의 바위가 양쪽으로 서 있으며 그 사이로 10여 명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다. 옛날에는 통소를 불며 달을 희롱하던 신선이 이곳에 머물렀다 하여 은선암이라 한다.

이 지역에는 저마다 다른 뜻을 지닌 아름다운 곳들이 유난히 많은데, 바위위에 큰 바위가 얹혀 있어서 손으로 흔들면 잘 흔들리는 바위가 흔들바위다.

큰 소나무 일곱 그루가 정자를 이룬 칠송정터, 바위에서 물이 내려가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린다는 바위가 울암이라고 불리는 울바위다. 울바위 옆에 있는 바위로 사람의 배처럼 생겨서 정성을 들여 기도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배바우가 있고, 근처가 모두 석반인데 이곳만 터져서 문처럼 되어 봇물이 들어온다는 문바우등이 이곳 송면리의 선유동을 빛내는 명승지이다. 문처럼 터진 바위에 선유동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고, 그 아래 강물은 수정처럼 맑다.

이곳 선유동에 남아 있는 선유정仙遊亭터는 약 220여 년 전에 경상도 관찰사를 지냈던 정모라는 사람이 창건하고 팔선각八仙閣이라고 지었는데 그 뒤에 온 관찰사가 선유정으로 고쳤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그 터만 남아 있다.

한편 솔면이라고 부르는 송면리의 솔면리에는 이준경이 그 자손들을 데리고 집을 짓고 살았다는 ‘이 동고 터’ 또는 ‘이정승 터’라는 집터가 남아 있다. 솔면이 서남쪽 삼거리에 있는 청천, 상주, 괴산으로 가는 세 갈래 길을 지나서 32번 지방도를 따라 내려가자 다시 주차장이고, 충청북도 자연학습원 아래로 난 길이 화양동으로 가는 길이다.

-신정일(문화사학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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