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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반갑다! 문화재(16) '기묘한 아름다움' 예천의 명승 초간정
[기획] 반갑다! 문화재(16) '기묘한 아름다움' 예천의 명승 초간정
  • 신정일 기자
  • 승인 2022.05.13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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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예천군 용문면의 용문사 아래에 있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정자 초간정. (사진=신정일)예천

[더리포트] 오천년 역사가 켜켜이 쌓아올린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적. 대대로 전승된 장인의 솜씨와 금수강산이 빚어낸 우리의 소중한 국가자산을 찾아보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두 번째 용문사龍門寺에 이르니 산이 깊어서 세속의 소란함이 끊어졌네. 상방(스님이 있는 곳)에는 중의 평상이 고요하고 옛 벽에는 부처의 등불이 환하다. 한줄기 샘물 소리는 가늘고 일천 봉우리 달빛이 나누인다. 고요히 깊은 반성에 잠기니 다시 이미 내가 가졌던 것까지 잃어버렸다.” 

조선시대의 문장가인 서거정이 물맛이 좋은 예천 용문사의 정경을 노래한 글인데, 예천군 용문면의 용문사 아래에 그림처럼 아름다운 정자 초간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국가 명승으로 지정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인 초간정草澗亭은 정자의 입구에서 보면 정면 2칸은 방이고, 물이 흐르는 계류쪽은 ‘ㄱ’자형으로 마루를 놓고 난간을 둘렀다.

이 정자는 초간 권문해權文海가 그의 나이 49세인 1582년에 공주목사를 그만두고 낙향하여 지은 별채 정자로, 처음에는 작은 초가집으로 지어 초간정사草澗亭舍라고 불렀다. 용문사 아래 매봉과 국사봉 사이로 해서 예천읍으로 흐르는 금곡천변에 세워진 초간정은 권문해가 풍류를 즐기기 위해서 지은 정자가 아니라 주자가 거처했던 무이정사와 같이 서재의 용도로 지었다.

우거진 소나무 숲과 굽이쳐 흐르는 계곡이 벼랑과 함께 깊은 소를 이루어놓은 자리에 서 있는 이 정자 오르면 잠시나마 속세를 잊어버린 신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 정자가 기묘한 것은 금곡천에서 소나무 우거진 정자를 바라볼 때 다르고,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계류를 흐르는 물줄기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 또한 초간정의 마루에 앉아서 바라보는 정자 밖의 풍경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초간정은 자연을 자신 앞으로 끌어다 놓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연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자연과 하나로 동화되고자 했던 옛사람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정자다. 

권문해는 이곳에서 3월과 6월까지 한달에 2~4회씩 손님을 맞이하거나 강회를 가지면서 소일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불에 탔던 것을 17세기에 다시 세웠다. 그때 석조헌과 화수헌 그리고 백승각 등의 건물을 함께 세웠으나 다시 무너진 것을 1870년에 연이어 중수하여 권문해의 유고를 보관하는 전각으로 만들었는데, 초간정은 현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43호로 지정되어 있다.  

초간정. (사진=신정일)

권문해는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라고 부르는 <대동운부군옥>을 편찬한 사람이다. 이 책의 초간본이 간행된 것은 선조 22년인 1589년, 대구부사로 재직 중일 때였는데, 이 책의 대부분은 이 초간정에서 집필했다.

단군 시대로부터 그가 살고 있던 당시까지의 우리나라의 역사 지리 인물 문학 식물 동물 등을 총망라하여 운별韻別로 분류한 책으로 그가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가 <연보>에 나와 있다.

그의 나이 26세 때에 그의 동생 문연文淵에게 “우리나라의 선비들은 중국 역대의 치란흥망治亂興亡은 마치 어제 일처럼 말하지만 수천 년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알지 못한다. 이는 눈앞의 물건은 보지 못하고 천 리 밖을 바라보는 식이다.” 라고 말했다. 그것은 당시의 선비들이 중국의 역사에는 해박하면서 우리나라 역사에는 무지한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 <대동운부군옥>을 저술한 그는, 1580년에서 1591년 까지 11년 동안 일상생활에서 국정에 이르기까지의 일들을 기록한 <초간일기草澗日記>(보물 제879호)를 남겼다. 

그의 호인 초간草澗은 당나라 때 시인인 위응물韋應物의 시 구절인 ‘독련유초간변생獨憐幽草間邊生’(시냇가 그윽한 풀 홀로 사랑하노라)에서 ‘초간’ 두 글자를 따온 것으로 속세를 떠나 자연과 함께 하고자 했던 권문해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아버지 권문해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권별은 이곳 초간정에서 <해동잡록>을 저술하였다, 그런 연유로 영남지역의 수많은 문인들이 이곳 초간정의 기운을 받기 위해 답사를 다녀갔고, 이 초간정 부근을 100번을 돌면 문과에 급제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였다.

그 소문을 들은 어떤 유생이 99번을 돌고서 현기증이나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난간 밖으로 떨어져 즉사했다. 그 소실을 들은 그 유생의 장모가 도끼를 들고 와서 정자 기둥을 찍었다고 하며 그 때 내려 친 도끼 자국이 지금도 남아 있다. 

금곡천을 따라 내려가면 나오는 용문면 상금곡리는 금당실 위쪽이 되므로 웃금당실 또는 상금곡이라고 불리는데, 이곳이 바로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지 중의 한 곳인 예천의 금당곡金塘谷이다. ‘병화兵火가 들지 않는다는 땅’이라고 알려진 이곳은 임진왜란 때도 온전하였으며, 이곳을 찾았던 당나라 장수는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학(鶴)고개가 입구에 있고 개(犬)고개가 오른쪽 어깨에 있으니, 금계(金鷄)가 앞에 있고 옥견(玉犬)이 뒤에 있어서 중국 양양(襄陽)의 금곡(金谷)과 같다.

금곡천변에 소나무와 여러 나무들이 우거진 곳에 자리한 초간정 앞에 서면 권문해가 30년간을 동고동락하던 아내를 잃고 90일장을 지내면서 뼈에 사무치는 제문을 지었다.

나무와 돌은 풍우에도 오래 남고 가죽나무, 상수리나무 예대로 아직 살아 저토록 무상한데 그대는 홀로 어느 곳으로 간단 말인가. 서러운 상복을 입고 그대 영제 지키고 서 있으니 둘레가 이다지도 적막하여 마음 둘 곳이 없소. 얻지 못한 아들이라도 하나 있었더라면 날이 가면서 성장하여 며느리도 보고 손자도 보아 그대 앞에 향화 끊이지 않을 것을.

오호, 슬프다. 저 용문산을 바라보니 아버님의 산소가 거기인데 그 곁에 터를 잡아 그대를 장사 지내려 하는 골짜기는 으슥하고 소나무는 청청히 우거져 바람 소리 맑으리라. 그대는 본시 꽃과 새를 좋아했으니 적막산중 무인고처에 홀로 된 진달래가 벗 되어줄게요. ……이제 그대가 저승에서 추울까 봐 어머님께서 손수 수의를 지으셨으니 이 옷에는 피눈물이 젖어 있어 천추만세를 입어도 헤어지지 아니하리다.

오오, 서럽고 슬프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우주에 밤과 낮이 있음 같고 사물이 비롯함과 마침이 있음과 다를바 없는데, 이제 그대는 상여에 실려 저승으로 떠나니 그림자도 없는 저승, 나는 남아 어찌 살리. 상여 소리 한 가락에 구곡간장 미어져서 길이 슬퍼할 말마저 잊었다오. 상향.

임을 여윈 슬픔을 이다지도 깊게 표현할 수 있으랴. 조선 영조 때의 문인 권상일權相一은 훗날 이곳을 찾아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초간정사는 티끌에 물들지 않고
옛 현인이 남긴 향기 다시 감동시키네.
속세 떠난 마음은 수많은 복록을 사양하고,
작은 집 비로소 이루어져 오랜 세월 지냈구녀.
춘추를 쓸 때는 의리를 근본으로 삼고,
책상 위 경전은 밝은 정신 드러내었네.
내 와서 손을 씻고 남긴 책 펼치지,
의기로운 마음 가득 넘쳐 빈한하지 않도다.”

초간정에서 멀지 않은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에 중요민속자료 제201호로 지정된 예천 권씨 종택이 있다.  그 중에 권문해의 할아버지 권오상 선생이 지었다고 전하는 예천권씨 초간종택 별당은 앞면이 4칸이고 옆면은 2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앞쪽에서 보면 오른쪽 3칸은 대청마루고 왼쪽 1칸은 온돌방인데 온돌방은 다시 2개로 나뉘어 있으며 집 주위로 난간을 돌려 누(樓)집과 같은 모양으로 꾸몄다.

이 별당의 겉모습은 대체로 소박한 구조를 보이고 있으나 안쪽은 천장 부분에 설치한 여러 재료들을 정교하고 화려하게 장식하여 호화롭기 그지없다. 별당 뒤 서고에 권문해가 지은>대동운부군옥(大東韻部群玉)>의 판목 677매와 14대째 전하는 옥피리,<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전질 120권을 보존하고 있다.

15세기 말에 지어진 이 건물은 보존 상태도 아주 좋은 편이라서 보물 제457호로 지정되었다.

두고 떠나온 뒤에도 금세 다시 가서 보고 싶은 정자가 초간정이고 며칠이라도 살고 싶은 집이 예천권씨 종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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