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금강 죽봉. (사진=신정일)
빼어난 자태를 숨긴 고흥 지죽도 금강죽봉. (사진=신정일)

[더리포트] 오천년 역사가 켜켜이 쌓아올린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적. 대대로 전승된 장인의 솜씨와 금수강산이 빚어낸 우리의 소중한 국가자산을 찾아보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옛날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변신이야기>에서 ‘사람의 마음은 항상 신기한 것을 향해서 움직인다'고 한 말은, 우리 인류의 표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매일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는 저 위대한 광경에 대해서 새삼스레 감동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나, 만약 여태 보지 못했던 별 조각이 하나 흘러간다면, 사람들은 모두 그 유성을 보기 위해서 황급히 뛰쳐나올 것이다.

책에 대해서도 그렇다. 책을 파는 행상인들은, 옛날 로마의 시인인 비질이나 호라티우스 같은 고전을 이고 등에 짊어지고 짐을 무겁게 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그들이 이고 다니는 것은 새로 나온 책이다.”

프랑스의 작가인 볼테르의 <철학사전>에 실린 글이다. ‘사람의 마음은 항상 신기한 것을 향해서 움직인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신기하다고 여기기만 하지 그 신기한 것을 창조적으로 이용할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참으로 신기한 것을 신기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아 뒤늦게 발견된 보석이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있다.

한려수도, 태안반도와 함께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은 전라남도 신안군 홍도(紅島)에서 신안군·진도군·완도군·고흥군 등을 거쳐 여수시 돌산읍에 이르는 구간이다. 해안 일대와 도서를 중심으로 지정된 전라도 다도해국립공원면적은 1981년 12월 23일 지정되었다.

1,700여 개의 섬으로 형성된 다도해에는 오랜 해식으로 기암괴석의 해식애(海蝕崖)·해식동(海蝕洞) 등 특이한 해안지형이 발달하였고, 따뜻한 해양성 기후로 인해 무성한 난대성 식물이 어울려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신라 때에는 장보고(張保皐)가 당나라와 왜(倭)의 해적 떼를 토벌하여 해상왕국을 건설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해상무역로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충무공(忠武公)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격파했던 발포 해전의 전적지가 도처에 남아있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구역인 고흥군 도화면 지죽리에 숨겨져 있던 보석이 만천하에 알려진 것은 2021년 6월이었다.

몇 년 전, 산악회에서 올린 몇 컷의 사진을 보고 신기해서 찾아갔더니,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이 다도해를 바라보며 숨어 있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라는 말을 실감하고 문화재청에 알렸다.

2020년 10월 문화재청에서 현장답사를 한 뒤 2021년 5월 26일 제5차 천연기념물분과위원회 회의를 거쳐 9일 ‘고흥 지죽도 금강죽봉’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 확정 고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고흥 사람들은 어째서 이렇게 진귀한 보석과 같은 금강죽봉의 진가를 몰랐을까? 참으로 아름다운 명승은 아무에게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누구나 접근 할 수 없는 곳에 숨어서 자기를 찾아오기를 기다리다가, 그 가치를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보여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금강죽봉은 어떤 말이나 수식어로도 대체할 수 없는 천하의 절경이다. 천재 시인 존 키츠는 그러한 경관을 두고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다.” 라고 찬탄하였다.

금강 죽봉. (사진=신정일)
천하의 절경 금강 죽봉. (사진=신정일)

지죽도는 고흥반도 끝에 딸린 작은 섬으로 대염도와 목도·죽도·대도 등 주변의 여러 섬들을 육지와 연결되어 있어서 이 일대 섬 사이에서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배를 타고 가던 지죽도에 지죽대교가 건설된 것은 2003년이었다. 이 다리가 놓이면서 배를 타지 않고 자동차로 갈 수 있게 된 섬이지만 지죽도라는 이름은 아직도 여행자들에게 생소한 편이다.

이 지역 사람들조차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고 자랑하지 않았던 작은 섬의 유일한 자랑거리인 금강죽봉이다. 그런데 금강죽봉이란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지죽도(支竹島)란 지명에 걸맞게 섬을 떠받치고 있는 주상절리를 사람들이 금강죽봉(金剛竹峯)이라고 명명했던 것은 아닐까?

금강죽봉으로 오르는 길은 지호마을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마을 안 골목길로 들어가 탐방로를 따라 산길을 1시간 가량 올라가면 금강죽봉에 이른다.

“신기하다!, 신기해! ”를 연발하면서 경탄에 경탄을 금할 수 없는 금강죽봉은 돌병풍처럼 동서로 길게 펼쳐져 있는데, 그 죽봉 가운데서도 오른쪽 맨 끝부분에 홀로 떨어진 돌기둥은 ‘송곳바위’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우뚝우뚝 치솟은 금강죽봉 위로 건너갈 수도 있고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발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라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곳 금강죽봉의 주상절리를 보고 작은 금강산이라고 불렀는데, 태산 자락의 모든 바위 군락들이 다 주상절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보는 위치에에 따라 경관이 달라진다. 이곳 저곳에 층층이 쌓여 있는 주상절리는 자연이라는 석공이 오랜 세월에 걸쳐 한 땀 한 땀 빚어낸 듯 싶어,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지죽도 금강죽봉은 도화면 남단 지죽리에 있는 섬으로 지죽도(支竹島) 태산(또는 남금산)에 있는 주상절리로, 예부터 거금도의 청석 해변 쪽에서 보면 마치 바위가 왕 대나무처럼 솟아 있어 그 일대를 ‘금강죽봉’이라 불러왔다.

북한에 있는 관동팔경 중의 한 곳인 통천의 총석정이 남성적인 주상절리라면 고흥의 금강죽봉은 여성적이면서도 웅장한 주상절리로 경주 양남면의 주상절리나 무등산 서석대의 주상절리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금강죽봉에서 바라본 소염도와 대염도. (사진=신정일)
금강죽봉에서 바라본 소염도와 대염도. (사진=신정일)

금강죽봉은 약 100m의 깎아지른 수직 절벽이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중생대 백악기에 분출한 응회암에 발달한 주상절리로 해식풍화 작용을 관찰할 수 있는 중요한 곳이다. 특히 다도해의 침식지형과 어우러지는 지질학적 특성이 두드러진 것이 금강죽봉이다.

또한 규모가 크고 보존상태가 아주 양호하며, 정상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과 같다,

높이가 202.8m인 금강죽봉의 정상에서 보면 능가사를 품에 안은 팔영산과 이순신 장군이 수군만호로서 18개월 동안 근무했던 발포진, 그리고 이순신장군을 모신 사당인 충무사가 바로 지척이다. 1960년대 레슬링 선수로 이름을 날린 김일의 고향 거금도와 소설가 이청준이 지은 <당신들의 천국>의 무대인 소록도와 거금도, 나로도 등이 한눈에 조망된다.

또한 바다와 맞닿은 부분에 해식동굴, 바위경사지인 해식애와 기암괴석들, 산 능선부의 억새군락지,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곰솔) 등 식생 경관과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날개를 편 것 같다고 해서 활개바위라고 이름이 붙은 다양한 다도해 경관이 함께 연출되어 경관적 가치 또한 뛰어나다.

금강죽봉에서 해 질 녘 수평선 뒤로 붉은 노을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바라보는 것도 일품이다. 대염도와 소염도, 머구섬이 손에 닿을 듯 펼쳐져 있고, 날이 맑을 때는 시산도와 무학도 그리고 멀리 여수 손죽도와 소거문도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곳, 또다시 가고 싶은 곳이 지죽도의 금강죽봉이다,

-신정일(문화사학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

고흥 활개바위. (사진=신정일)
고흥 활개바위. (사진=신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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