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리포트=이진수기자] 칭기즈칸의 덕목 중, 오늘날 시점에서 되돌아볼 때 경이롭게 느껴지는 장점은 바로 ‘포용력’이다. 이민족을 차별하지 않았으며, 이교도릏 박해하지도 않았다. 문명이 발달하고 시민의식이 성숙한 작금의 한국 정치를 보면 반대편을 포용 하기가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알수있다

다만 몽골군은 저항하는 경우, 상대를 학살했다. 하지만, 예외가 있었는데 바로 기술자였다. 이는 몽골제국의 무기제조 기술 발전의 힘으로 작용했다. 그 단적인 예가 말안장 장식이다.

<원대 말안장鞍裝 장식을 통해 본 몽골의 주체성 통해 본 몽골의 주체성>(최국희, 덕성여대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2022)은 말안장 장식을 통해 몽골 제국을 분석한 논문이다. 

논문에 따르면 중국의 내몽골지역을 비롯하여 몽골, 우크라이나, 중동지역 등의 몽골제국에 속했던 지역에서 두루 발견된 말안장 장식은 몽골의 주체성을 가장 잘 반영하는 기물 중의 하나이다.

이 안장 장식은 실용적인 목적에서뿐만 아니라 사냥과 행렬에서 과시를 위한 목적으로 화려하게 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원대에 이르러 안장 장식은 기형과 장식문양에서 이전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며 전체적으로 실용적이고 간결하면서도 호방한 느낌을 줬다. 

논문은 원대에 새로운 형식의 안장 장식이 제작된 원인을 바로 기술 우대 정책으로 봤다.

"몽골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장인집단을 포용하여 그들 사이에 발생하는 문화적 충돌과 융합이 자연히 스며들도록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 전역을 통일하여 원을 건설한 쿠빌라이 칸(세조, 재위 1260-1294)이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었던 장인들을 중앙에 집중시켜 원대 공방 제작기구를 개편한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이다."

결론적으로 몽골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장인집단을 포용하고 십분 활용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물품을 자신들의 취향과 기호에 맞게 만들었고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이 자연히 그 속에 반영되도록 이끌었다고 매듭지었다. 

말안장 장식 하나에도 몽골인의 위대한 포옹 정책이 새겨져 었던 셈이다.

몽골인에게 말은 이동수단 그 이상이다. 전통 전투경기. (픽사베이)
몽골인에게 말은 이동수단 그 이상이다. 전통 전투경기. (픽사베이)

 

저작권자 © 더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