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섭 선문대학교 교수.
최용섭 선문대학교 교수.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 후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시각은 급격하게 변화되어 현재는 비핵화 회담 자체를 거부한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국내외 많은 전문가 역시 북한 비핵화의 한계점은 이미 지났고 따라서 이제는 북한 핵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비핵화가 아닌 군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 외교협회 회장인 리처드 하스(Richard Haass)는 '새로운 핵 시대(The New Nuclear Age)'라는 글에서 북한을 인도, 파키스탄과 함께 아시아의 핵 보유국으로 꼽으며 이제는 북한에게 비핵화가 아닌 핵 군축을 위한 협정을 제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이제 북한 비핵화는 더 이상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일까? 이 글에서는 그렇지 않다. 즉 북한 비핵화는 여전히 실현 가능한 선택지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아래에서는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북한의 핵 관련 선언, 담화, 발표 등에 대한 검토를 통해 북한과의 비핵화에 대한 협상의 여지가 여전히 존재함을 주장하고자 한다.

2019년 5월 하노이 회담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지 약 석 달 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이 '연말까지' 핵 협상 관련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으라는 데드라인을 임의로 설정하여 발표했다. 이러한 일방적인 발표 후 수개월이 지나 연말이 곧 다가오는데도 미국에서 별다른 반응이 없자 김정은은 2019년 12월 제7기 제5차 당 전원회의에서 핵 무력 강화방침을 발표하면서 미국을 압박했다. 이와 함께 (1) '시간을 끌수록' 미국은 북한의 군사력에 당할 수밖에 없고, (2) 미국의 '대북한 입장에 따라' 북한의 군사력 강화의 정도와 폭은 조정될 것이며, (3) 미국이 '끝까지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취한다면' 북한 비핵화는 영원히 없다고 선언했다. 

위의 김정은의 선언 행간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이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북한과의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북한이 미국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미국이 대북한 유화 입장으로 돌아선다면 북한은 이에 상응하여 군사력 강화방침을 조정할 수 있다. 셋째, 미국이 적대적 대북 정책을 철회할 경우 북한 비핵화는 가능하다. 즉 2019년 2월 하노이회담의 결렬에도 불구하고 2019년 12월 기준 북한은 여전히 비핵화를 얘기하고 있으며 강화된 북한의 압박은 북한에게 비핵화가 매우 시급한 사안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019년 말이 끝나고 김정은이 전에 설정한 데드라인을 미국이 준수하지 않음이 명백해지자 북한의 대미 목소리는 확실히 더 강경해졌다. 2020년 7월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의 담화에서는 기존의 북미 간 '비핵화 조치 대 제재 해제'라는 협상 주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이제는 '적대시 철회 대 북미협상 재개'로 협상 주체를 주장하며 국내외로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이는 '비핵화'를 협상 카드로 쓰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며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면 이번 담화는 고강도 대북 제재 이전 시기 북한의 주장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2019년 이전의 핵 협상에서도 미국의 '대북 적대시 철회'는 북한의 핵심 요구사안이었다. 비핵화와 경제제재를 맞바꾸지 않겠다는 것은 코로나19라는 극단적 봉쇄 상황에서도 경제적으로 잘 버텨왔기 때문에 경제제재에 대한 공포가 누그러진 결과이며, 따라서 경제제재보다 더 시급한 '대북 적대시 철회'가 '다시' 협상의 핵심 사안으로 복귀한 것이다. 

2022년 4월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이 밝힌 핵 사용 관련 언급, 2022년 9월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에서 채택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라는 법령, 그리고 2022년 12월 31일 당 중앙위원회 8기 6차 전원회의 폐회사에서 김정은이 핵과 관련하여 발표한 내용 등을 정리해 보면, 북한은 대북 강경정책을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의 한국을 명백한 적으로 규정하고 미국으로부터의 핵 위협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근본이익을 침탈'하려는 시도가 있으면 먼저 핵 무기를 사용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즉, 재래식 공격 및 심각한 영향을 초래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의 경우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을 향해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며, 실제 이를 위해 김정은은 여러 종류 전술핵무기의 다량 생산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된 북한의 핵 정책과 북미 비핵화 협상을 별개의 문제이다. 과거에도 북한은 한편으로는 핵 무력 강화를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나섰으며, 단지 이번에는 과거보다 핵 무력 강화의 내용이 보다 고도화된 것일 뿐이다. 북한 정권의 생존을 위한 미국과의 협상은 김일성 시기부터 현재까지 북한 외교의 제1순위이다. 제재 해제를 통한 경제적 문제 해결은 차치하고 북한 정권의 안보 우려를 해소할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된 미국으로부터의 안보 우려 해소가 정권 생존의 가장 중대한 사안인 북한으로서는 '핵 군축'이 아닌 '비핵화'라는 카드를 내놓을 때 미국도 '적대적 관계의 청산'이라는 카드를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진정한 의미에서의 비핵화 의도를 떠나 협상테이블 위에 북한 비핵화 카드는 앞으로도 계속 올려질 수 있다. 관건은 북미 비핵화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 무력을 어느 정도로 약화시킬 수 있느냐이다. 

2022년 9월의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에서 김정은은 '절대로 먼저 핵 포기란,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그 어떤 협상도, 그 공정에서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습니다'라고 역설한 바 있다. 이에 국내외 많은 기사 및 논문에서 이를 비핵화 불가 선언으로 해석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기존 북한의 입장과 일치한다. 즉, '먼저' 핵 포기(=비핵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지, 핵 포기 자체의 가능성을 닫아버린 것은 아니다. 

유진상 기자 yjs@the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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