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 사학과 한상준 교수. 국제학부 중국지역 전공 담당. 
아주대 사학과 한상준 교수. 국제학부 중국지역 전공 담당. 

2023년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는 해이다. 어느덧 반세기가 훌쩍 넘어 버린 시간이 흘러갔지만, 전쟁이 한반도에 남긴 상처와 아픔, 그리고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숱한 문제가 여전히 우리를 짓누른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반도가 분단되는 상황은 피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남북이 서로를 잔혹하게 죽이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인 한국전쟁을 겪지 않았더라면 남북 간에 존재하는 극단적인 적대감과 분노의 정도가 지금보다는 덜 했을지 모른다. 그만큼 한국전쟁은 남북의 정권뿐만 아니라 남북 주민들의 정서와 사고까지 매우 확고하게 ‘분단’시켰다.

한국전쟁은 20세기 외국군대의 한반도 주둔 역사와도 연결된다. 20세기 초반 대한제국이 일본에 의해 합병되면서 한국의 국권은 피탈됐다. 한반도는 일본 식민지 지배하에 처했다. 한반도에 수많은 일본군이 진주해 식민지 조선에 주둔했다. 1945년 8월 일본이 패망한 직후에는 한반도 주둔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하기 위해 미군과 소련군이 한반도에 들어왔다.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한반도 북부지역에는 소련군, 남부지역에는 미군이 진주했다. 이후 해방정국의 혼란 속에서 1948년 한반도의 남과 북에는 이념과 체제가 다른 이질적인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됐다. 남북 정권을 배후에서 실질적으로 뒷받침해 줬던 세력은 각각 미군과 소련군이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군을 위시한 유엔 16개국의 전투부대가 한반도에 들어왔다. 전쟁 발발 초기 북한군은 한반도 남부 대부분을 점령하면서 전황에서 우위를 보였지만, 1950년 9월 15일 미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면서 전세는 다시 역전됐다. 38선을 넘어 한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하면서 북한은 패망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군이 참전했고, 1950년 10월 19일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로 들어왔다. 그로부터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이 정전될 때까지 한반도에는 한국군과 북한군 이외에 미군을 비롯한 유엔 16개국과 중국군이 주둔한 상태가 지속했다.

한국전쟁 정전 이후에도 미군과 중국군은 한반도의 남과 북에 그대로 잔류했다. 미군은 오늘날까지도 한국에 주둔하고 있지만, 북한의 경우 중국군은 1958년에 이르러 최종적으로 북한지역에서 철수했다. 1953년 정전 직후 북한에 잔류했던 중국군은 총 120만 명이었다. 1954~1955년에 걸쳐 중국군의 부분적인 철수가 진행됐다. 1958년 초 북한 주둔 중국군은 약 3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1958년 4월부터 10월까지 3단계에 걸쳐서 최종적인 철수를 완료했다. 사실 중국군 철수 문제를 둘러싸고 북중 간에는 갈등과 의심이 존재했고, 1956년 말 북한이 먼저 중국 측에 중국군 철군 요구를 제기한 것으로 보이지만, 북중 간의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중국군 철군이 진행됐다는 것이 북중의 공식적인 설명이자 입장이다. 어쨌든 1958년 이후로 오늘날까지 한반도에 주둔하는 외국군대는 주한미군이 유일한 상황이 됐다.

이렇게 살펴본다면 20세기를 통틀어 한반도에 외국군대가 주둔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인 1949년 6월부터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 6월까지의 대략 1년간은 한반도에 외국군대가 주둔하지 않았었다. 1948년 8월과 9월 한반도 남과 북에 각기 단독 정부가 수립된 이후인 1948년 12월 소련군이 북한 지역에서 철수했다. 

이듬해인 1949년 6월 미군도 500여 명의 군사고문단만을 남기고 군대를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철수했다. 그런 측면에서 1949년 6월부터 1950년 6월까지 한반도에 외국군대가 주둔하지 않았던 상황을 한반도의 ‘1949년 체제’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1949년 체제’는 한반도에 가장 이상적인 형태인데, 한반도에 주둔하는 외국군대가 없는 상황을 일컫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전쟁의 발발로 철수했던 미군이 다시 한반도로 돌아왔고, 이후 중국군도 참전하면서 한반도는 다시 외국군대가 주둔하게 된 셈이다. 

오늘날 주한미군은 한국의 방위와 동아시아 안정적 상태 유지라는 목적 속에서 주둔의 의미를 찾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주한미군의 철수가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것도 아니지만,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한반도 외국군대 주둔의 역사를 돌아보면 ‘1949년 체제’를 유지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회한 역시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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