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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탐] 일본이 부자나라가 된 기 막히는 이유
[知탐] 일본이 부자나라가 된 기 막히는 이유
  • 이진수 기자
  • 승인 2019.05.10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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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우리 조상이 발명한 '단천연은법'이 보존, 확장되었다면 우리나라도 이런 은화를 사용했을지 모른다.

[더리포트] [知탐]은 '지식을 탐하다'라는 문장의 줄임말입니다.-편집자 주

‘C4 J0 K21 O19’

이 암호 문은 15세기 초엽부터 중엽까지, 조선의 과학기술이 세계 역사에서 눈부시게 빛났음을 증명하는 수치인 것으로 밝혀졌다.

과학 칼럼니스트 이성규씨는 ‘인문360°’에 쓴 칼럼(4월 22일)을 통해 일본 도쿄대의 이토 준타로 연구팀이 1983년에 편찬한 <과학사기술사사전>을 인용해서 놀라운 사실을 전했다.

“...(이 책에는) 마치 암호문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C4 J0 K21 O19’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 여기서 C는 China, J는 Japan, K는 Korea, O는 Others를 뜻하며, 뒤의 숫자들은 15세기 초엽부터 중엽까지 세계적으로 눈여겨볼 과학적 성취 건수를 의미한다.”

이를 해석하면 중국은 당시 세계 과학사에서 최고기술로 평가받은 실적이 4건, 일본은 0건, 조선은 21건, 그 외 유럽 및 중동 등의 기타 국가는 19건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조선이 21건의 업적을 낸 시대는 바로 세종대왕 때다. 지금의 우리나라 과학기술 현주소를 생각하면 놀라운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이 칼럼에서는 또 하나의 기 막힐 이야기 하나를 전하고 있다. ‘은 제련 기술‘과 그 후폭풍이다. 칼럼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최고의 은 제련 기술자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양인 김감불과 장례원(掌隷院)1의 노비 김검동이다.

칼럼에 따르면 이 두 사람은 납 한 근으로 은 두 돈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고 다니자, 연산군이 그들을 궁중으로 불러서 직접 시연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1503년, 연산군 9년)

당시 은은 금과 함께 귀한 금속이었다. 그런데 은은 다른 금속과 뒤섞인 광석으로부터 뽑아내야 하는데 그 제련 과정이 상당히 까다로웠다고 한다. 김감불과 김검동은 왕 앞에서 실제로 납으로 은을 만들어 보였다. 두 사람이 개발한 그 방법은 ‘단천연은법’이다. 이성규씨는 “이 단천연은법은 당시 유럽이나 중국보다 뛰어난 방식이며 전 세계에 내놓을 만한 훌륭한 은 제련 기술”이라고 칼럼을 통해 밝혔다.

그런데 이 귀한 발명이 나라에 의해 활용되지 못하고 사장되었다. 중종반정 이후 조정은 명나라의 지나친 조공 요구를 우려해 은광들을 폐쇄해버렸다는 것이다. 칼럼은 “(그래서) 김감불과 김검동은 어렵게 개발한 자신들의 놀라운 기술이 사장될 위기에 놓이자 해외로 눈을 돌렸던 것 같다”고 추정했다.

더 중요한 사실은 다음이다. 칼럼 내용이다.

“한 일본 학자에 의하면 일본은 17세기에 이르러 전 세계 은 생산량의 약 30%를 생산하게 되면서 부강한 나라가 되었는데, 이는 16세기 중엽 조선이 지니고 있던 은 제련 기술을 몰래 수입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문헌을 예전 사료와 비교해볼 때, 16세기 중엽은 곧 김감불과 김검동이 단천연은법을 개발한 이후다.

이성규씨는 “단천연은법의 도입으로 당시 세계 2위의 은 생산국가로 올라선 일본은 포르투갈 상인들에게 은을 주고 화승총을 대량으로 구매했다”며 “일본은 연산군과 중종이 소홀히 한 단천연은법 덕분에 조총을 수입해 임진왜란 초기의 일방적인 승리 기반을 마련한 셈”이라고 밝혔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읽는 독자로선 분통이 터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성규씨는 각종 매체에 과학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왕조실록에 숨어 있는 과학’ ‘밥상에 오른 과학’ 등이 있다.

인문360°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만든 온라인 서비스로, 인문정신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콘텐츠를 누구나 쉽게 누리도록 만든 사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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