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포트] 단어를 조합해서 만든 문장이 과학자를 전혀 뜻하지 않는 세계로 이끄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이데오노미(Ideonomy)’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Ideonomy(이데오노미)는 idea(아이디어)와 ‘nomy(노미)’의 합성어다. ‘-노미’는 특정 분야에 관한 법칙이나 지식의 총체를 나타낼 때 쓰인다. 따라서 ‘생각의 법칙‘ 정도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런데 이데오노미는 ’생각의 과학‘으로 정의된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아이디어 법칙에 관한 과학‘이다.

“이데오노미는 우리가 사용하는 말-신중하건 부주의하건 간에, 전문적이건 일상적이건 간에-속에 감춰진, 또는 묻힌 방대한 저장고를 탐색한다.”-<지식의 역사>(갈라파고스)

즉 말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언어의 채굴이다. 언어의 의미를 캐내며, 그 속에 담긴 새로운, 숨어있는, 깊은 뜻을 찾아낸다. 그렇다면 언어의 과학이기도 한 셈이다.

창안자는 패트릭 건켈(Patrick Gunkel)이라는 학자다. 그는 특이한 사람이다.

하루 종일 생각과 사물에 관한 목록을 만들고 확장하고 정련한다. 이 목록을 오르가논(organon)이라고 부른다. 건켈은 이 목록이 조합, 치환, 변형, 일반화, 특수화, 교차, 상호작용, 재적용, 귀납적 이용을 통해 이뤄진다고 밝혔다.

Patrick Gunkel. (사진 월스트리트 저널)

예를 들어 조합을 보자. 건켈은 ‘별과 코끼리의 58가지 닮은 방식’을 지어냈다. 이는 별과 코끼리를 숙고하여 얻은 생각의 샘이다. 마찬가지로 ‘개미 노예에 관한 거짓말’과 ‘날개가 달린 돼지’에 대해 독특한 생각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이데오노미 작업과 결과는 종종 무의미하고 지루하다. 예컨대 ‘하품의 풍차’라는 조합이 무엇을 상징하겠는가. 그러나 가끔 놀랍게 흥미로운 사안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초전도체의 구조적 불규칙성은 무엇입니까?"라는, 무작위적으로 얻은 이 질문은 저항 없는 전기를 전도하는 새로운 재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화제가 되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었다.

 ‘Can arteries have rashes?(동맥에 발진이 생길 수 있습니까?)’

긴켈이 얻은 문장이다. 이와 관련 한 병리학자(Michael T. O'Brien)가 그 질문을 받고 이런 말을 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피부와 마찬가지로 일부 대형 동맥이 작은 혈관에 의해 혈액이 공급된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런 다음 그 혈관이 실제로 피부에 있는 사람들처럼 염증과 팽창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누군가가 연구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긴켈은 고등학교 입시에서 떨어졌고 대학엔 다니지 않았다. 연구 보조금을 받아 대학교와 싱크 탱크에서 20년을 일했다.

긴켈은 이데오노미 덕에 과학에 관한 독특하고 심오한 탁견을 가지고 있다. 그를 두고 하버드 대학의 법학 교수 인 로버트 클락(Robert Clark)은 "의심의 여지없이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긴켈은 조선시대 학자 화담 서경덕 선생을 떠오르게 한다. 화담 선생 역시 젊은 시절 방 안에서 글씨를 써놓고 며칠을 사유했다. 당시 화담이 무엇을 고민했는지, 그 열매는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다.  혹시 긴켈의 이데오노미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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