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박사/광고PD/다큐멘터리 제작자/연극 연출가 김한석
문학박사/광고PD/다큐멘터리 제작자/연극 연출가 김한석

‘공부 잘해 취직한 너! 너만 잘났냐, 백수지만 꿈 많은 나! 나도 잘났다, 젠젠젠 젠틀맨이다, 돈 많아서 양주 먹는 너만 잘났냐, 돈 없어서 소주 먹는 나도 잘났다, 젠젠젠 젠틀맨이다.’ 

오래전 독특한 소재로 방영된 시트콤에서 주요 출연진이었던 김수미가 부른 코믹송 ‘젠틀맨이다’의 가사다. 현재의 시간에 대입해서 해석해 보니 현대 사회에서는 온라인으로 다양한 기회가 열려 있고, 인공지능(AI) 분야의 개척이 무궁무진하며 실체가 보이지 않는 화폐가 고가에 거래가 되는 등 서로 간 인생이 어떤 성공으로 어찌 역전될지 모르니 겸손하게 살자는 의미로 코믹하게 들렸다. 

인생처럼 광고업계에서도 정상적 경로이건, 의외의 경로이건 종종 관계가 역전된 상황을 보게 된다. 그중에서 관계의 역전이 가장 확연하게 드러나는 직종은 아마도 PD일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광고대행사가 내부 PD들을 내보내고 외주 프로덕션에 의뢰하고 있지만, 과거 모든 대행사는 내부에 PD들을 고용하고 있었다. PD들은 공채를 거치거나 경력직으로 회사에 입사했었는데 경력직은 작은 대행사와 큰 대행사 간의 교차 이동도 있지만, 프로덕션 조감독들이 경력에 큰 변화를 주거나 설움(?)에서 해방되기 위해 이동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선례를 지켜본 눈치 빠른 조감독들은 대행사로 이동하기 위해 촬영장에서 제작팀장이나 임원에게 최선을 다해 눈썹을 휘날리고 영화 ‘조커’의 입처럼 늘 웃는 입이며 후반 작업실에서는 적극적인 의견 개진으로 틈틈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재주를 어필하는 등 영혼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 노력이 결실을 보며 제작팀장 혹은 임원의 추천으로 대행사로 이동하게 되면 과거 대행사 직원이라며 자신의 자존심을 ‘기스’나게 했던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복수를 하게 되는 셈이었다. 대행사 PD 대부분은 ‘차장’ 직급에서 프로덕션 감독이나 기획실장으로 나가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퇴사 후 일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최전방 정보 수집원인 대행사 PD에게 선택받아야 한다. 그런 후에 팀장과 임원, 광고주까지 거쳐 최종 낙점을 받게 되니 한참 후배이거나 예전 조감독으로 편하게 대했던 상대에게 이제는 영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좋은 관계였다면 협업으로 이어지거나 거절도 모양새 좋게 하겠지만, 불편한 관계였다면 뻔한 결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심지어 애써 만들어진 술자리에서 옛날 서러움이 잊히지 않았던 조감독 출신 PD가 이제는 을의 입장이 된 감독에게 ‘자질이 없으신 것 같다’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런 복수가 그에겐 잠시나마 통쾌함을 줄 진 모르겠으나 몇 년 지나면 그 또한 회사를 나와 프로덕션으로 자리를 옮기며 후배에게 영업하는 상황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껏 누리는 자리에 있으니 미래 걱정일랑 잠시 꺼두고 이 순간을 즐길 수밖에. 

이와 반대로 광고대행사에서 광고주로 이동하는 때도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울트라 ‘갑’으로 변신하는 케이스이다. 광고주로 이동하며 이들은 해당 기업에 대행사 출신으로서의 장점을 보여주고 싶은지 예전에 자신들이 관여했던 각종 견적서와 스케줄에 딴지를 걸며 대행사를 너덜너덜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누구 앞에서 사기를 쳐요! 왜 이래요 선수끼리!”라는 말을 입에 달고 기존 광고주의 몇 배로 갑질을 해대서 ‘왜? 그리 잘하는 권력질 하고 싶었으면 진작에 광고주부터 시작하지 그랬니?’라는 의아함을 주기도 한다. 

가끔이지만 자신을 갈궈댔던 대행사 시절 팀장이나 임원을 광고주 입장에서 마주치는 경우가 있는데 서로 간의 과거에 사건이 있었다면 빈정댐과 조롱의 눈빛 스포트라이트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유형은 개인적 통계로는 대행사 시절, 소심하게 보였던 성격이 많았다. 하지만 광고주의 위치 또한 영원하랴. 어차피 때가 되면 ‘일신상의 이유’ 어쩌고 하면서 나와야 하는 것을. 

위의 상황들에서 을이 된 입장이 모욕을 느끼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을 보기도 하고 사과를 건네는 것을 보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서로 여전히 격무에 시달리며 상처배틀 평행이론을 설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우리가 모르는 세계에서도 위치의 역전은 많을 것이다. 그러기에 모두가 역전이 가능한 ‘젠틀맨’이다. 젠틀맨들에게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대사를 권하고 싶다. 

“나도 좀 나이스하고 양반 같은 인간들이랑 일하고 싶어. 근데 왜 못 그러냐? 내가 양반이 아니라는 거지. 왜? 끼리끼리는 과학이니까. 쓰리지만 내 수준이 여기라는 거. 그래서 늘 ‘양반 되자’, ‘저 인간이 양반 되길 바라지 말고 내가 양반 되자’ 득도한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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