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박사/광고PD/다큐멘터리 제작자/연극 연출가 김한석
문학박사/광고PD/다큐멘터리 제작자/연극 연출가 김한석

바바라 홀은 이렇게 말했다. “접대의 비결은 다음과 같다. 손님을 환대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라. 진심으로 그렇게 하면, 나머지는 일사천리다.” 문장으로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으나 접대하는 쪽에서는 상대방을 환대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약속이 잡히는 순간부터 두통이 밀려오고 정보 검색을 위한 안압 상승이 따라온다. 거기에다 진심의 기준이 없다 보니 아무리 진심을 담으려 애를 써도 한 끗 차이로 뭔가 어긋나기라도 하면 그날의 접대는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되기도 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더 그렇다. 광고업계가 사람 간의 관계로 얽힌 산업이다 보니 일이 잘 마무리된 후에 갑의 임원이나 담당자들과 좀 더 친해지기 위해서 혹은 이미 친한 사이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 뒤풀이라는 접대 자리가 만들어질 때가 꽤 있다. 본인의 경우 상대방이 친해지기 전에는 눈치를 보며 본인이 차려놓은 밥상을 받으며 맛있다고 먹어주지만, 친해지고 나면 ‘사실 그때 별로 맛있지 않았다’라는 말과 함께 자신들의 코스를 주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차라리 이렇게 시원하게 자신의 코스를 주문해 주면 머리도 덜 아프련만, 요구하는 과정이 찜찜한지 스무고개 하듯 본인이 접대 내용을 제시하면 고개를 ‘도리도리’하며 알아맞혀 보세요를 시전(始展)하며 애를 먹인다. 

본인의 입에서 자신을 청렴하게 포장해 주기도 바란다. 본인 자신도 일이 잘 마무리되면 회포를 풀고 싶고 감사의 의미를 전달하고 싶기때문에 접대가 기분 나쁘거나 부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업체와 접대를 비교하며 경쟁 접대를 바라거나 누가 봐도 무리한 요구이다 싶은 접대는 살아온 날에 대한 자괴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또 상급자가 자신이 접대받고서는 아랫사람에게 해당 업체와의 동행을 강요하는 것을 경멸한다. 본인이 회사 재직 시 임원의 강요에 따르지 않았다가 제대로 요단강을 건너서 출근길이 지옥 길이었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억울함에 목이 멘다. 

직장을 함께 다니며 절친하게 지내던 착한 성품의 후배가 외국계 회사의 기획 담당 임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한 달에 서너 번 술자리를 함께할 정도로 친한 후배였는데 이 친구는 2차로 자리를 옮길 때면 꼭 여성이 합석하는 장소로 강요하다시피 동행을 원했다. 그런 업소를 좋아하지도 않고 비용도 많이 들어서 거절했지만, 분위기 망치지 말자는 마음에 마지못해 따라가서는 자리만 지키곤 했었다. 어느날 평소와 다르게 할 말이 있다고 연락이 와 만난 술자리에서 자신의 회사에 제작 담당 임원을 뽑는다며 본인에게 추천해달라고 했다. 혹시나 본인의 일에도 도움이 될까 싶어 그 친구도 알고는 있지만 별로 친하지는 않은 후배를 한껏 포장하여 추천했고 결과는 좋았다. 

굳게 믿고 있는 기획과 제작 임원 동생들이 든든하게 형에게 일을 의뢰할 줄 알았으나 업무와 관련한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본인에게 문제가 있다면 솔직하게 말해달라는 뜻에서 제작 담당 후배를 만났고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됐다. 기획 담당 후배에게는 이미 긴밀한 관계의 제작사가 곁에 있으니 본인에게 좀 더 사적인 노력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제작 담당 임원이 즐기고 있던 스쿠버 다이빙에 기획 담당 임원이 관심이 많으니 함께 하러 다니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했다. 친한 후배가 본인과 꼭 일을 같이하라는 법이 없긴 하지만 왠지 모를 섭섭함이 밀려오며 ‘그래도 생계는 챙겨야 하지 않겠나’라는 마음에 고가의 스쿠버 다이빙 장비를 장만해 동남아 바다 일대를 함께 누비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세 차례의 동행이 끝나고 드디어 귀국 뒤풀이 자리에서 두 후배의 입을 통해 큰 프로젝트가 맡겨졌다. 그 이후 일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뒤풀이로 반드시 동남아 바다로 나가야 했다. 본인이 내키지 않거나 몸이 좋지 않아서 거절 의사를 표현하면 기획 임원은 자신의 히든카드인 본인의 경쟁 제작사를 들먹이며 그쪽과 동행하겠다고 조롱하고 실제로 그쪽 제작사 대표를 스쿠버 다이빙에 입문시켰다. 그가 왜 그렇게 동남아에 집착했는지는 남자들만의 문제이기에 길게 언급하지 않겠다. 

어쨌든 그의 동남아 바다 사랑은 그가 퇴사할 때까지 이어졌다. 본인이 결정적으로 그에게 실망한 부분은 자기 조직의 팀장이 심장마비로 급사(急死)했다는 연락을 받고도 제작사 대표와 동행한 스쿠버 다이빙 일정을 마치기 위해 장례를 마친 다음 주에야 나타났다는 점이었다. 그가 회사에서 퇴사한 이후 몇 년간의 스쿠버 다이빙 접대 및 이와 관련한 사건들과 상처로 그와는 소원한 관계가 됐다. 물론 본인에게 끊김 없이 일을 의뢰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아직도 있지만, 상처가 더 크기에 마음이 아프다. 

어느 예능 프로에서 모 연예인이 “호의를 베풀면 그걸 권리인 줄 안다. 사람들이 쟤는 그런 애, 쟤는 그렇게 해도 된다”는 고민을 털어놓자, 법륜스님은 “내가 선하게 대한만큼 돌아올 확률이 높은 것이지 반드시 선하게 대해서 좋게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하게 대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유리하다. 그러나 악하게 대하면 일시적으로 좋은 효과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중에는 악한 결과가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공감하듯 사회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이 인간관계다. 그래서 접대와 같은 처세술도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경력이 쌓이다 보면 가식과 진심의 접대가 구분되기 마련이니 가식을 강요당하지 않는 진심의 접대로 건강한 관계가 형성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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