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박사/광고PD/다큐멘터리 제작자/연극 연출가 김한석
문학박사/광고PD/다큐멘터리 제작자/연극 연출가 김한석

대기업에서 임원 대우를 받는 후배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다. 나이 오십 넘어서도 생일 파티를 하는 후배의 삶에 대한 열정이 부럽기도 하고 분위기도 궁금했지만, 초대 인원이 수십 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참석 여부를 고민했다. 보통 이럴 때 주최자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이 서로 간 네트워크를 형성할 좋은 기회’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현실은 알코올의 힘을 빌린 잠깐의 소비적 친밀감일 뿐 협력관계까지 발전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참석자들은 주최자와 ‘관계’를 고려해 참석했지만, 여기서 서로 간 갑과 을의 위치가 드러나며 잘나가고 못 나가고가 훤히 보이다 보니 접근하려는 자와 밀어내려는 자의 거리 밀당이 보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 관찰하면, 파티라기보다는 아쉬운 쪽이 힘을 가진 쪽의 도도함과 허세를 참아내며 자신의 능력을 프레젠테이션하는 자리로 바뀌기도 한다. 이러한 분위기를 잘 알기에 어떻게 할까 망설이던 중 후배는 계속해서 참석을 종용하는 문자를 보내왔고 그래도 ‘혹시 모를’ 기대감으로 참석했다. 본인이 낯가림이 심한 탓에 우선 낯익은 사람들을 찾아 그들 곁에 자리 잡고 갑도 을도 아닌 독립적인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격변하는 미디어 쓰나미 시대에 그런 분한테 귀동냥으로 지식과 소식이라도 얻어 간다면 그래도 그날 하루는 잘 보낸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너무 일찍 간 탓인지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만 보였고, 괜한 대화를 소비하고 싶지 않아 멍때리다 지인들과 이런저런 소식이나 주고받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참석자들이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고, 주최자는 한 명 한 명 성심성의껏 화려하게 소개하며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그러던 중 지인 한 명이 갑자기 파티를 스케치하는 사진을 찍어 댔다. 주최자에게 전달하려나 싶은 마음에 “뭐 찍을 게 있어?”라고 물었고, 지인에게서 “회사 국장님한테 업무 현황 보고 차 카톡으로 보내려고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일 아침, 그릇을 꺼내다 떨어뜨린 파편에 손등을 베어 몇 바늘이나 꿰매고도 계속된 업무의 강행군으로 컨디션이 말이 아니라던 그의 예상치 못했던 대답은 너무 슬프게 다가왔다. 원래 주당인 그는 가장 일찍 도착해서 의사의 처방 때문에 술을 입에 대지도 못하고 음료수만 홀짝거리며 주최자와 대화할 차례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티 며칠 전에 주최자 회사와 갑을 관계로 MOU를 맺어 언론 보도를 통해 홍보하고 있던 기간이었으니 지인으로서는 단순한 파티 이상의 중요한 자리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허세에 가득 찬 어느 빌런의 입 털림은 시작됐고, 예상대로 다른 참석자들과도 양질의 대화를 나누기 힘들었다. 

다음날 들어보니 지인은 안 좋은 몸 상태에도 꽤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다 갔다고 했다. 중국의 사상가 묵자(墨子)는 ‘미인은 밖에 나가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만나길 원한다’라고 했다. 떠들고 다니지 않고 조용히 내실을 다지다 보면 세월이 지나 반드시 실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지켜봐 주며 기다려 주지 못하는 세상이다 보니 본래의 성격과 성향을 바꿔서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자신만 정체된 듯 불안해하는 것 같다. 광고업계 특성상 이직률이 높다 치더라도 OB 모임이나 업종 모임에서 주변인들의 소식을 들어보면 새로운 회사로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만두었다, 잘렸다, 광고업계를 떠났다는 이야기가 줄 이어 들린다. 대부분이 실적과 관계된 것이고 실적 부진에서 오는 내부 갈등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묵자의 이야기는 상황에 따라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실적을 채우고 메우기 위해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과정을 얼마나 많이 참아내고 이겨내야 했던가. 그렇게 버티고 버텨가는데 제대로 된 전문가 대접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가장 호소력이 있을법한 스타가 된 업계 선배들도 자주 등장하는 매체에서 후배들의 고된 상황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자신들의 사상 전파에 힘쓰며 세상 우아한 자태로 자신만 빛낼 뿐이다. 

본인이 회사 다닐 때 광고대행사에 노조가 없고 광고업에 종사하는 여러 직종에서도 그들만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단체가 없다는 것이 의아했다. 있었어도 유명무실했거나 잠시 타오르다 꺼진 젖은 장작 같았다. 이런 사정을 아는 빠꼼이를 자처하는 어느 광고주는 ‘그쪽 사람들은 서로 잘났다고 하고 개인주의적이라 그렇다’며 악담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다음 실적 걱정 때문에 항의하거나 기분 나쁜 티를 내지 못한다. 몇 년 전 아주 절친했던 후배가 갑자기 심정지로 세상을 등졌다. 그 친구는 비교적 안정적인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에 본인이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회사로 이직을 주선했었다. 

이직한 회사에서는 좋은 대우를 해준 만큼 당연히 결과로 보여주길 요구했고, 후배는 실적에 쫓긴 스트레스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 후로 본인은 후배에게 괜한 선의를 베풀었나 하는 후회와 한숨으로 시간을 보냈다. 주변인들의 애도와 안타까움과는 달리 그의 죽음에 대한 보상 절차는 복잡하기만 했고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문득 드라마 ‘미생’의 대사를 되뇌어 본다. “이왕 들어왔으니까 어떻게든 버텨봐라. 여긴 버티는 게 이기는 데야.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간다는 거니까.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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