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제공)
(KBS 제공)

 한때의 기사 생산 종사자로서 메인뉴스는 거의 챙겨보는 편이다. 콘텐츠빅뱅 시대, 수많은 시청자가 뉴미디어인 OTT 서비스, 유튜브 같은 동영상 플랫폼 등으로 옮겨가서 TV 자체가 올드매체가 됐다. 그래도 아직은 보도국 기능을 대체할 종합뉴스를 생산할 만한 기관이 불쑥 나타나기는 어려우니 각 TV 채널마다 뉴스성 프로그램이 시청률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인터넷이나 유튜브로 단발성, 화제성 사건이나 사실확인이 전혀 되지 않는 의견이나 거짓을 뉴스처럼 알리고 있는 편파적 유튜버들을 접하는 것보다, 정확하고 종합적인 소식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일 테다. 

지상파TV들은 젊은 세대들의 선택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다 파악이 됐으니, 올드미디어에 익숙한 장년·노인층의 눈높이에 맞춰야 그나마 시청률을 보장할 수 있겠다. KBS 메인뉴스인 ‘뉴스9’는 뜬금없이 ‘9시 뉴스’를 첫 시작 엠블럼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세련됨은 떨어지나 구어체로 시청자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겠다는 시도로 보인다. 2~3년 전부터는 연말연시 한정이긴 하나 ‘이웃돕기성금모금’을 뉴스 말미에 전면 자막으로 내보내며 여자 아나운서가 또박또박 기탁자와 성금액을 읽어준다. TV에 얼굴 한 번, 이름 한 번, 나오는 것이 ‘가문의 영광’급이었던 20세기 이후로는 보지 못했던 광경이다. 전통이라면 전통이겠지만 배경 화면도 참 복고풍이다. 자연스레 1980~1990년대가 떠오른다. 

‘평화의 댐 성금’을 비롯해 수도 없이 많은 정부 주도 성금 모금에 부단히 ‘뜯긴’ 학창 시절을 보낸 이로서는 국가가 당연히 잘 알아 해야 할 복지와 재분배를 왜 국민에게 떠넘기나 하는 불만이 끓어오른다. 주로 국가 주도로 이뤄지던 공동모금은 1998년 사회복지법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설립되며 기능이 이양됐다. ‘사랑의 열매’ 배지로 유명해 연말연시면 KBS 앵커들이 오른쪽 가슴 위에 꼭 꽂고 나온다. 2010년 임직원들이 횡령, 비위 등 각종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이 발각되며 신뢰를 잃었고, 성금관리모금단체들의 횡령 사건은 심심하면 한 번씩 터지는데 여전히 존속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홈페이지를 아무리 뒤져봐도 대표가 누구인지, 어떤 기관이고, 어떤 연혁을 지녔는지 등의 정보는 찾아보기 어렵다.

KBS뉴스1
KBS뉴스9

KBS의 보수화는 정권이 바뀌고 지난해 11월 박민 사장이 취임하면서 더욱 본격화됐다. 평일 뉴스9 첫 메인 여성앵커로 상징적 지위를 지닌 이소정 앵커를 박장범 앵커로 갈아치운 것이다. 앵커 교체야 늘 있지만 취임 첫날, 시청자들에게 하차 인사를 할 기회도 안 주고 대폭 인사를 감행했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구설에 오를 일이다. 결국 평일, 주말 뉴스 모두 기자 출신 중장년 남자앵커와 젊고 예쁜 여자 아나운서가 보조를 맡는 식의 ‘그림’이 완성됐다. 이번 정부가 우리 사회에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즉각적 이미지로 드러냈다. 과거 회귀를 안정화라고 여기는 이들은 스마트폰 등 신문물에 절대 적응하지 못한 노인층일 뿐인 거 같다. 초고령화 사회를 고려한 표밭 일구기일까? ‘일베’ 등으로 불리는 극우성향 젊은 남성들이 지상파TV 뉴스까지 챙겨볼 것 같지는 않아서 하는 말이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으며 나의 성장기를 내내 지배하던 핵전쟁, 전쟁 공포증은 사라질 줄 알았다. 혹독한 세계 1·2차 대전과 냉전 시대를 지난 지라 인류는 이제부터 우호화 협력을 지향하는 줄만 알았다. 남북 관계도 연방제나 흡수통일 등으로 차차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도 생겼다. 21세기 들어 ‘북한 도발’로 호들갑스럽게 시작되는 ‘뉴스9’를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우크라이나전쟁,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하고 양안 관계의 갈등 상황도 커지는 등 국제정세가 불안정하게 돌아가는 마당에 ‘휴전’ 중인 한반도에도 전쟁광들이 시동을 걸지 말라는 법은 없다. ‘총풍사건’이나 선거철 ‘북풍’ 보도 내력을 많은 국민이 알고 있고, 좌우 편향 평론가들도 한목소리로 실제 전면전으로까지는 확산하진 않을 거라고 확언한다. 다만 KBS 뉴스가 자주 북한 동향 뉴스로 요란하게 시작할 때마다 그나마 우리 경제의 활력이 됐던 외국인 관광객 수만 뚝뚝 떨어지는 것이 체감된다.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면 우리는 세계적 문화강국이 될 수 있고, 관광 같은 굴뚝 없는 3차산업이 꽃피워야 선진국이라고 나 자랄 때는 그렇게 배웠다. 4차산업까지 내다볼 수 없는 시대였기에 최소 한류를 이끈 문화세대인 ‘X세대’는 그렇게 교육받았다. 국지전이라도 벌어진다면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군대에 끌려간 20대 남자 젊은이들이다. 확전된다면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는 것은 실시간으로 퍼지는 외국의 전쟁 영상만 봐도 알 수 있다. 정부는 북한을 깡패짓하는 동생쯤으로 여기고 어떻게든 교화해 볼 생각은 없는 것인가. 아무리 역사는 돌고 돈다지만, KBS 뉴스만 틀면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시대 혼란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 영 마뜩잖다. 우리의 국력이나 국방력이 북한에 비교할 바이던가, 북한이 그걸 모를까? 지긋지긋한 한국전쟁 체험 세대의 반공이데올로기가 다시금 부활하고 있다는데 충격을 금할 수 없다. 국민의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이 누구의 자리와 누구의 권력을 지키기 위함인지 묻고 싶다. 

김태은 작가  thereport@thereport.co.kr (erikim02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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