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곧 신념과 용기'라는 메시지를 주는 '여인의 향기'(국내 방영 제목).
'삶이란 곧 신념과 용기'라는 메시지를 주는 '여인의 향기'(국내 방영 제목).

[더 리포트] ‘불의의 사고로 실명이 됐지만 안내견의 도움으로 맹학교 교사가 되었다.’

예전에 방영된 SBS 드라마 '내 사랑 토람이'의 줄거리다. 중도 시각장애인의 이런 사례가 인간 승리의 모델로 매체를 통해 소개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런데 이는 그만큼 장애를 받아들이고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실태조사(2017년)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애인 추정 인구수는 267만 명이다. 이중 후천적 장애인 비율은 거의 90%에 육박하고 있다. 병이나 사고가 원인이다. 국민 20명 중 한 명은 누구나 장애인이 될 가능성을 안고 산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 대우는 여전히 높지 않다.

과연 삶의 어느 순간에 갑자기 시력을 잃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중도시각장애인의 삶의 경험에 대한 질적연구>(충북대학교 대학원, 2019)가 답을 준다.

사실 시각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상실감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져 있다. 시각장애인 재활의 아버지라 불리는 촐든 캐롤(Cholden Carroll)은 상실감을 6가지로 정리했다. 심리적 안정감과 일상생활과 보행과 같은 기초적인 삶의 기능, 읽고 쓰기 등 의사소통, 심미감, 직업과 경제적 지위, 자존감 등이다.

논문은 성인이 된 이후에 시각장애 진단을 받은 16명을 만나 삶을 살폈다. 그 결과, 중도시각장애인의 삶의 유형은 ‘저항형’, ‘미래개척형’, ‘장애수용형’, ‘자원공유형’이란 네 가지로 나뉘었다. 

하지만 장애에 대한 인식과 고통의 수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대부분 분노와 우울에서 주체적 삶으로의 이행해간다는 사실이다.

즉 초기단계엔 상실과 소외 속에서 분노하던 중도장애인은 결국 장애를 받아들인다. 이후 주변의 지지를 회복하고 일상에서 긍정적 요소들을 발견한다. 이어 잔존감각을 활용해 새로운 가능성을 되찾는다. 잃어버렸던 삶을 다시 세우고, 일상에서 작은 것을 성취하며 자신이 쓸모 있다는 면을 되찾게 되면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다.

논문에 따르면 연구 참여자들이 장애를 자신의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지속적인 도전을 시도했다.

일부는 자신의 관심과 애정을 주변으로 확장시키고 가족과 동료장애인들의 희망이 되고자 했다. 또 일부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장애와 함께 성장해 갔다.

영화 <여인의 향기>(1992)는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입은 괴팍한 시각장애인 프랭크(알 파치노 역)과 한 순수한 고등학생 찰리(크리스 오도넬)의 만남과 우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말미에서 ‘신념을 지킬 수 있는 용기’를 말한다. 그것은 알파치노 입장에서는 장애를 입은 삶의 긍정이다.

이 논문은 <여인의 향기>처럼 장애진단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심리·정서적 스트레스, 실존의 바탕으로서의 가족기능, 장애 후 성장과 자기 실존에 대한 자각을 생생하게 담아냄으로써, 중도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인의 향기>를 대표하는 명대사 “실수로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다.”는 실수로 장애를 입으면 그게 바로 인생이다“로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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