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열린 귀가쫑긋 모임에서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강연을 하고 있다.

[더 리포트] 우리 사회에는 이 세계가 나아갈 항로를 맨 앞에서 이끄는 지(知)의 최전선이 있다. 때때로 그 전선은 지식의 높이와 지리적 장애로 난공불락이어서 보통사람이 접근하지 못한다. [더 리포트]가 그 현장을 찾아 삶의 지혜, 한 수를 전한다. -편집자 주

“베이비붐 세대들이 65세가 되는 2020년부터는 우리나라 고령화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질 겁니다. 이들은 입시 파동과 취업난 등 한국사회에 수많은 파동을 일으켰는데, 마지막으로 고령화 폭풍을 일으킨 후에 없어질 거예요.”

지난 1일 금요일 저녁. 고양시 인근에 사는 지식인이라면 대개 이름을 알고 있는 인문학 모임 ‘귀가쫑긋’ 강연회에 다녀왔다. 2010년에 시작해 올해로 9년째 맞는 서부지역 대표 인문학 공부 모임이다. 이날 강연자는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김 이사장은 현재 보건 의료정책과 관련,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문재인 케어’의 설계자다. 이날은 ‘저출산, 고령화 정책의 허와 실’이라는 주제로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고령화 대책 핵심은 '생산가능인구 확보'

이날 강연 관객은 대략 70명 정도 됐다. 머리가 희끗한 중, 장년 세대가 대부분인 가운데 젊은 층도 눈에 띄였다.

김 이사장은 “참여정부 초창기에 저출산, 고령화 대책을 수립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었다”며 “그때 정리한 것을 기초로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우리나라는 1955년경부터 빠른 속도로 아이를 낳았고, 영아사망률이 줄어 아이들 숫자가 크게 늘었다. 이 베이비붐 세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2020년에 65세가 되고, 30년 후인 205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인구의 38%, 즉 1/3을 차지하게 된다. 

김 이사장은 “이 수치는 곧 젊은이 한 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80년대부터 출산율이 점점 줄어들어 생산가능인구도 감소하는 반면 노인층은 증가하고 있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동안 아이를 낳는 수를 나타내는 ‘합계출산율’이 현재는 채 한 명도 안 된다. 저출산이 이대로 진행되면 22세기 후반기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가 소실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저출산 대책은 뭐가 있을까?

“보육과 유아교육 서비스 제공, 출산 및 육아 휴가, 아동과 육아 수당 지급 등과 함께 사교육이 없어지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가사노동과 육아에 있어 평균 할애 시간이 현저히 적은 남성의 역할을 개선해야 한다.”

이어 김 이사장은 고령화 대책의 핵심 전략으로 ‘생산가능인구 확보’를 꼽았다. 인적자본 확보를 위해 출산율을 늘리려야 하고, 건강 수명을 늘리기 위해 예방 의학에 힘써야 하며 노인, 여성, 장애인을 새로운 노동력으로 대체해 생산가능인구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김 이사장은 “정년을 75세까지 늘려 노인이 근로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하고, 여성을 돌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장애인의 이동성을 확보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일자리 나누기와 공공 고용확대, 다양한 고용형태와 근무시간이 고령화 대책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강연이 끝난 후 참석자들은 “외국인 노동자 고용이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북한 인구 활용은 언제쯤 가능한가?”, “기업의 입장에서 75세 정년을 수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이 있는가” 등의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김준태 시인 강연.
황선도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관장 강연
김선두 화가 강연.

행사에 참가한 60대 중반의 한 여성 회원은 “오랫동안 교육계에 있었지만, 배움이라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고 있다”면서 “관심 분야가 큰 틀 안에서 서로 이어지고, 앎이 통합되는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문화 생산자이자 문화 유통자...지역사회 발전 기여 

이날 강연을 주최한 귀가쫑긋은 매달 첫째주 금요일 월례강좌를 진행한다. 작년에 100회를 넘었다. 자녀들의 공동육아를 위해 처음 시작된 모임이 현재 연회비를 내는 정회원이 70명을 넘어설 정도로 성장했다. 월례강좌는 정회원이 아니어도 누구나 무료로 들을 수 있다. 그 외 서양철학반, 동양철학반, 문학공부반, 논어반, 등산반과 독서모임 등 다양한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모임 회장 김경윤 자유청소년도서관 관장은 "귀가쫑긋은 자유롭게 공부하기를 원하는 시민들이 만든 평등한 공동체”라며 “다양한 재능을 가진 회원들이 단순히 문화의 수용자로 남는 게 아니라, 문화 생산자이자 유통자로서 역할까지 함으로써 지역사회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관장은 올해 3대 신임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동안 귀가쫑긋 월례강좌에는 철학자 조광제, 건축가 서현, 황선도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관장, 조용헌 박사, 서민 교수, 김준태 시인, 김선두 화가, 강소연 교수, 진중권 교수 등 국내의 내로라 하는 이들이 강연을 했다. 

앞으로, ‘정의, 진리, 그리고 자유’를 주제로 한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의 강연과 언어학을 전공하고 <한족과 유목민족간의 역사적 관계>라는 책을 저술한 송기중 서울대명예교수의 강연 그리고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의 저자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강연이 이어진다.

귀가쫑긋은 아주 작은 모임으로 시작해서 지역의 중추적인 인문학 모임으로 성공한 흥미로운 사례다. 타 지역에서도 시민들 스스로가 만들고 참여하는 소통과 학습의 장이 펼쳐지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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