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국이다. 고려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적어도 200여 년 앞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고려 금속활자의 그늘에 가려져 조선의 금속활자들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활자본색>은 그 조선시대 활자를 조명하고 그 의미와 가치를 전할 목적으로 쓰어졌다. 저자 이재정은 20년 넘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 활자를 정리하고 연구해온 이다. 책은 그에 부응하듯 흥미로운 이야기가 넘친다. 

무엇보다 조선은 세계 최대 규모로 금속활자를 제작했다. 저자는 조선시대 금속활자는 수십 차례에 걸쳐, 수백만 자 이상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중 82만여 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이토록 많은 활자가 보존되어 있는 예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유일하고 독특한 것이라고 한다.

특히 활자는 왕들의 시그니처였다. 조선의 경우 1403년(계미년)에 첫 금속활자를 주조했다. 만든 해 이름을 따 '계미자'(癸未字)라 부른다. 예컨대 갑인자는 1434년에 세종의 명으로 주자소에서 만든 동활자다.  

갑인자로 추정되는 금속활자.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갑인자로 추정되는 금속활자.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책에 따르면 조선시대 금속활자는 값비싼 구리를 사용하여 문자를 새긴 보물과 같은 것이었다. 왕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금속활자를 가지고 싶어했다. 말하자면 활자는 왕권을 상징하는 보물 같은 존재였다. 

"금속활자를 만든 왕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왕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상징, 권력과 재물의 상징을 누리고 소유하고 싶은 심리가 있지 않았을까? (중략)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하는 것을 가짐으로써 권력과 재력을 과시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본문중

조선시대에 가장 많은 활자를 만든 왕은 정조로 1백만 자가 넘는 활자를 만들었고, 그 뒤를 이어 세종과 세조가 수십만 자의 활자를 만들었다.

활자가 왕권의 상징이어서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경오자는 안평대군의 글씨체로 1450년(문종 즉위) 경오년에 만든 금속활자다. 조선시대 손꼽히는 명필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안평대군이 쓴 글씨였던 만큼 경오자로 찍은 책의 글자는 힘차고 멋진 모습이다. 그런데 1455년(세조)에 이 활자를 녹여서 강희안의 글씨체로 을해자를 만들었다. 

만든 지 5년밖에 안 된 활자를 왜 녹였을까. 책은 이렇게 말한다.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찬탈할 때 안평대군은 세조와 반대편에 있었다. 형제 사이지만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여 결국 숙청되었고, 경오자도 안평대군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고 만 것이다. (중략) 세조는 즉위하자 바로 안평대군의 흔적을 지우고자 그 활자를 녹여 새로운 활자를 만든 것이다."- 본문중

한가지 더. 활자로 만든 책을 둘러싼 일화. 책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조선시대에는 오탈자에 대한 처벌이 가혹했다. 정조는 가장 아꼈던 신하 정약용이 책의 편찬을 잘못했다고 파직했다. 책에 오자를 내거나 인쇄 상태가 나쁜 경우에 태형에 처한다는 규정도 있었다.

이재정 / 책과함께 / 2022
이재정 / 책과함께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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