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리포트] 하늘에서 내린 눈과 바다로부터 얻은 소금에는 공통점이 있다. 아주 작은 입자로부터 시작되어 큰 덩어리를 이룬다는 점이다. 가령, 대기 중의 수증기는 얼며 ‘눈핵’이라는 아주 작은 입자를 만들고 이후 주변 수증기들이 달라붙으며 우리 눈에 보일 정도로 결정이 커진다.

이처럼 원자가 모여 물질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핵생성(nucleation)’이라는 과정이 필수적이지만, 아직까지 핵생성의 메커니즘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 연구단 박정원 연구위원 연구팀은 한양대 ERICA캠퍼스,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와 공동으로 원자가 모여 결정을 처음으로 이루는 핵생성 과정을 원자 수준에서 직접 관찰하는데 성공했다.​

5일 기초과학연구원에 따르면 핵생성 과정은 1800년대 후반부터 그 이론이 연구돼왔을 정도로 중요한 과학적 현상이다. 하지만 원자의 크기는 수 옹스트롬(Å‧백억 분의 1m) 수준으로 작고, 밀리 초(ms‧1000분의 1초) 단위로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기존 기술로는 핵생성 과정을 직접 관찰하기 어려웠다. 핵생성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여러 이론이 등장했지만, 실험을 통한 증명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늘의 눈과 바다의 소금은 ‘핵생성’이라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이처럼 핵생성은 물질이 생성되는 출발점이다.
금 나노결정의 탄생 순간을 촬영한 고해상도 투과전자현미경(TEM) 영상. 세 번째 이미지 빨간색 영역 안에 규칙적으로 배열된 작은 알갱이가 금 원자다. 금 원자의 규칙적인 배열이 보였다 사라졌다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사진: Pixabay)

연구진은 핵생성 과정을 원자 수준에서 실시간으로 관찰하기 위한 실험을 설계했다. 우선, 원자 한 개 두께의 얇은 그래핀 막 위에 전자빔을 받으면 금 원자를 방출하는 나노 물질을 합성했다. 이후 합성된 시편을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가 보유한 세계 최고 성능의 투과전자현미경(TEM)으로 관찰하며 금 결정의 형성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했다.

투과전자현미경의 전자빔을 받고 방출된 금 원자는 그래픽 박막 위에서 뭉치며 나노결정을 형성한다. 관찰 결과, 안정적인 결정핵이 탄생할 때까지 원자들은 무질서하게 뭉친 덩어리 구조(비결정상)와 규칙적으로 배열된 결정 구조(결정상)의 두 상태를 가역적으로 반복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결정핵의 크기가 성장함에 따라 가역적인 반응은 비가역적으로 변했다. 결정핵이 처음부터 규칙적으로 정렬된 결정상으로 성장한다는 전통적인 핵생성이론과 상반되는 결과다.

박정원 IBS 나노입자 연구단 연구위원은 “원자 몇 개가 뭉친 정도의 초기 핵생성 단계에서는 결정상과 비결정상을 오고가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작기 때문에 두 상태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연구진은 결정핵의 크기가 성장함에 점점 결정상 상태로 머무르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도 확인했다. 지름이 약 1nm일 때는 10%의 확률로 결정상 상태를 가졌지만, 지름이 약 2nm를 넘어가면 90% 이상의 확률로 결정상으로 존재했다. 즉, 처음엔 대부분 비결정상이었던 결정핵이 성장하여 최종적으로는 결정상 상태를 이루는 것이다.

박정원 연구위원은 “물질 성장의 신호탄인 핵생성 과정의 새로운 원리를 발견함과 동시에 이를 실험적으로 검증한 연구”라며 “핵생성에 관한 새로운 열역학적 이론을 제시했다는 학문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지난달 29일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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