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리포트] “박세현은 한국시의 어떤 범주에도 귀속되지 않는 변방이자 동문서답이다.”(이심정, 시인)

시인 박세현은 올해 출간한 두 권의 산문집을 통해 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피력한 바 있다. 한국시가 너무 질서정연하고 너무 시 같다며 시에 대한 평균적 합의가 격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인용하면 이렇다.

“쓸 수 있는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쓸 수 없는 시를 써야 한다.”, “노래를 위해 창법을 버리듯이 시를 위해 작시법을 버려야 한다.”

신간 박세현 시집 <나는 가끔 혼자 웃는다>(예서, 2020)은 시의 정형성을 탈피하려는 점에서부터 눈길을 끈다.

시인은 시집 표사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시가 아니라 /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대충 쓴 시를 / 나는 지지한다’고 일관된 입장을 밝힌다.

이번 시집의 가치는 의미와 의미의 갱신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계 혹은 현실이 능청스럽게 감추고 있는 허구적 환상을 일상어를 통해 드러내는 데 있다. 언어라는 기표를 혹은 거기에 묻어 있는 의미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부정해나간다.

<당신>

김소월로 살았던 김정식

이상을 연기했던 김해경은 궁금하다

임화로 살다 사라진 임인식도

내게는 뜨거운 미제로 남아 있다

미제(未濟) 없는 시인들은

궁금하지 않다

당신

시집엔 70편의 시가 수록되었다. 시집 제목이 된 작품 ‘나는 가끔 혼자 웃는다’ 외에 ‘나는 당신이 알고 있는 그 누구도 아니다’,  ‘나는 이렇게 쓴다’, ‘시는 읽고 버리는 것’에서 시인의 시 세계와 시에 대한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박 시인은 책 뒤에 나온 인터뷰를 통해 “요즘엔 시가 존재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며 “시가 자기 역할을 새롭게 찾아나서는 도중에 있다”고 진단한다. 이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에 너무 많은 의미를 거는 것이야말로 시의 가장 큰 적이다. 요즘 언어로는 적폐다. 언어에 묻어있는 초라한 의미들을 강박적으로 추구할 것이 아니라 의미를 해방시키는 작업도 누군가는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 이 시집의 가느다란 희망일 수도 있다.”

박 시인은 1983년 제1회 문예중앙 신인추천에 <오랑캐꽃을 위하여> 외 9편의 시가 당선되어 공식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했다(신경림, 황동규 추천).

이번 시집은 도서출판 <예서>가 내놓은 <예서의시> 시리즈 중 첫 번째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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