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리포트] 최초의 과학 논문은 표준화된 형식 없이 일반적인 편지 형식을 띠었다. 편지처럼 논문에 인사와 서명이 들어갔다. 실험 연구 역시 특별한 형식 없이 시간 순에 따라 매우 서술적 방식으로 작성되었다. 17세기 말에 이르자 논문 제목tile이 등장했고 일부 논문에서는 섹션을 나누어 소제목section heading을 붙이기 시작했다. 즉 논문이 구조화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지식 전달의 효율성도 높아졌다.- 본문 중에서

시중에서 논문을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요령에 대해서 정리한 책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논문을 왜 그렇게 작성해야 하는지, 즉 언제부터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작성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쓴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논문이라는 창으로 본 과학>(지성사, 2019년)은 과학 연구의 최종 산물인 논문이라는 창으로 과학 연구의 현장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책이다. 과학 논문이 무엇인지를 이해함으로써 과학자가 되려면 어떤 소양이 필요한지에 관한 성찰의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은 과학 논문이라는 진중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이 책은 지루하거나 낯설지가 않다. 부제인 ‘과학 논문을 둘러싼 온갖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논문과 관련된 역사적 이야기는 한 편의 과학사다. 이중엔 고양이를 논문 저자로 올린 사건도 있다. 책의 한 대목이다.

1975년 잭 헤더링턴Jack Hetherington과 공동저자 펠리스 도메스티쿠스 체스터 윌러드Felis Domesticus Chester Willard는 물리학 분야의 저명 학술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에 논문을 게재했다. 지금과 달리 그 당시는 컴퓨터로 논문을 쉽게 작성하고 수정하던 시절이 아닌, 주로 타자기를 사용하던 때였다.

문제의 발단은 타자기로 논문을 작성하는 기술 환경에 있었다. 원래 연구는 헤더링턴 혼자 한 것이었으나 논문을 작성하면서 무심코 ‘we’ 나 ‘our’과 같은 복수형 인칭 대명사를 사용했다. 여기서 헤더링턴은 타자기로 논문을 완전히 새로 치는 대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저자를 한 명 추가하는 방식으로 복수형 인칭대명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새롭게 추가한 저자로 헤더링턴의 논문은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펠리스 도메스티쿠스는 말 그대로 집고양이라는 뜻이다. 놀랍게도 실제 저자는 고양이었다.(……) 저자의 서명은 체스트의 발 도장으로 대신했다. 하지만 학술지 편집진은 고양이 저자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본문 중

이 책은 “연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본질적으로 접근하면서 오늘날 과학자에게 필요한 소양이 무엇이고, 과학 연구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저자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양적 규모와 성과는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지만 경쟁력은 정체되고 있는 냉엄한 현실 속에서 논문이라는 창으로 과학의 현실을 조망하고 과학자란 어떤 사람인지를 성찰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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