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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知의 최전선⑨] 더 정밀하고 더 정확하게...‘분석과학’의 힘
[기획-知의 최전선⑨] 더 정밀하고 더 정확하게...‘분석과학’의 힘
  • 전동민 기자
  • 승인 2019.08.09 2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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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리포트] 우리 사회에는 이 세계가 나아갈 항로를 맨 앞에서 이끄는 지(知)의 최전선이 있다. 때때로 그 전선은 ‘무지’로 베일에 가려있고, 지식의 높이나 시-공간 장애로 난공불락이어서 보통사람이 접근하지 못한다. [더리포트]가 그 현장을 찾아 지혜와 영감 한 수를 전한다. -편집자 주

일본의 경제 도발이 가져온 가장 큰 과제는 ‘핵심 부품의 국산화’다. 이를 가능케 하는 힘이 바로 과학기술이다.

보통 우리는 이 과학의 토양을 기초 과학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과학기술의 토대는 ‘분석과학(Analytical Science)이라고 주장하는 기관이 있다. 바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이다.

이 기관의 주요 임무는 국가 과학기술의 기반이 되는 '연구시설·장비 및 분석과학기술 관련 연구개발'이다. 그런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연구개발의 ’도구‘가 바로 분석과학이라는 것이다. 대체 분석과학은 무엇일까.

국가 과학기술의 기반이 되는 '연구시설·장비 및 분석과학기술 관련 연구개발'에 매진하는 KBSI 실험실. (사진=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제공)

분석과학은 과학기술에서 토양에 해당하는 분야

분석과학이란 용어는 일반인에게 생소한 단어다. 분석기술(Analytical Technology)과 분석장비(Analytical Equipment)에 관한 연구를 총칭하는 분야이다. 분석기술은 물질과 현상을 하나하나 풀어서 자세하게 관찰하고 측정할 수 있게 하는 테크놀로지이고 그 도구가 분석장비다.

KBSI는 이를 좀 더 흥미롭게 설명한다.

'과학기술을 나무에 비교하면, 뿌리는 기초과학이고 기둥은 원천기술이다. 기둥에서 뻗어 나온 가지는 파생기술이라면 열매는 제품이다. 기초과학 연구로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원천기술은 다양한 파생기술을 만들며, 파생기술에서 제품이 개발된다. 그런데 여기에 가장 중요하면서 기본이 되는 요소는 토양이다. 과학기술에서 토양에 해당하는 것이 분석과학이다.'

이쯤 되면 분석과학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분석과학이 혁신적인 발전을 가져온 과학기술분야 중의 하나가 바로 진단의료 분야다. 인류 역사에서 이 부문의 가장 앞선, 과학적 업적은 뢴트겐이 발견한 X선이다.

이 엑스선 진단은 영상으로 확대 되었고, 보다 선명한 CT(computed tomography)와 MRI (magnetic resonance imaging) 그리고 초음파·고주파 장치, MDCT(다중검출 CT), PET(positron emission tomography) 등 최첨단 영상장비들로 진화했다.

예전에는 외과 수술로 몸 내부를 들여다봐야만 병의 원인을 알 수 있었으나 이제는 진단 장비를 통해 통증의 원인을 바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이 분석과학의 힘이다.

미술품 감정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감 속에는 탄소가 있다. 지구 대기에 있는 이산화탄소에는 세 가지 유형의 탄소가 존재한다. 탄소12(질량수가 12)와 탄소13(질량수가 13)은 안정동위원소이며, 질량수가 14인 탄소14는 붕괴하는 방사성동위원소다. 이 세 원소의 비율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된다.

모든 생물들은 호흡과 먹이사슬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이것이 생물체 속에 남아, 화학적 자취를 남기게 된다. 단 체내에서 세 개의 일정한 탄소 비율을 유지한다.

그러나 그 생물체가 죽으면 탄소 비율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탄소12와 탄소13은 안정동위원소로서 그대로 남아있는 반면, 탄소14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일정 속도로 붕괴되기 때문이다. 이에 근거하여 이 세 탄소의 비율을 정확히 측정하면 생물체가 죽은 시기를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한때 생물체였던 나뭇가지나 뼈 등에서 나온 조각으로도 그것의 생존연대를 측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적 사실을 통해,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기법이 위작 판별에 활용되고 있다. 극소량의 캔버스 조각을 시료로 삼아 탄소14의 비율을 측정하고 그 값을 토대로 제작 연대를 분석하는 원리다.

동위원소 분석에 쓰이는 첨단장비 TIMS(열이온화질량분석기). (사진=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제공)
동위원소 분석에 쓰이는 첨단장비 TIMS(열이온화질량분석기). (사진=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제공)

새 과학기술 견인, 노벨상 수상의 근원인 분석과학

2014년 1월 우리나라 국보 1호 숭례문 복원에 사용한 소나무가 삼척에서 벌목된 금강송이 아닌, 값싼 러시아산 구주송이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정부는 즉각 숭례문 복원 사업에 쓰인 소나무의 DNA 분석에 나섰다. 결국 동위원소 분석을 통한 연대측정으로 진짜임을 밝혀냈다.

KBSI의 지구환경연구부는 이와 같은, 다양한 지구물질의 정확한 연대측정을 위해 방사기원 동위원소를 활용한 절대연대측정법 개발 및 분석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첨단 분석 장비다. 문화유산의 연대 측정 및 분석에는 KBSI가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최첨단 분석 장비가 활용된다.

지구환경연구부에서는 퇴적층의 연대측정, 동위원소분석, 표면분석을 통해 문화재 분석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 중 퇴적층의 연대측정에는 루미네선스를 이용한 OSL장비가, 동위원소 분석을 위해서는 TIMS(열이온화질량분석기), MC-ICPMS(유도결합플라즈마질량분석기), SIRMS(안정동위원소질량분석기)가 투입된다. 또 표면분석장비로는 전자현미경인 SEM, 레이저를 활용한 LA-(MC)-ICPMS(레이저삭박 다검출기 유도결합플라즈마 질량분석기), 이차이온 질량분석기인 SHRIMP 등이 사용된다. 이처럼 KBSI는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 대형연구장비를 구축·운영하고 있다.

분석과학은 최근 새로운 과학기술을 견인하고, 세계적인 연구 경쟁력을 확보, 국가 경제성장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노벨상 수상의 근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1901년부터 2009년까지 전체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 총 304건 중 61건(20%)이 분석과학 분야에서 수상했다는 데이터도 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관계자는 “지금까지 국내 분석과학 연구는 선진국에 비해 인력, 예산의 투자가 빈약한 실정으로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빈약한 토양과 뿌리를 가진 나무에 다른 환경에서 자란 가지와 과실을 접목해 놓은 것과 다름 없었다”며 “다행히 점차 기초과학과 분석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우리 땅에서 토종 과실이 굵어질 수 있도록 기초과학과 분석과학에 장기적인 투자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KBSI는 2015년부터 ‘세상을 바꾸는 분석과학’이란 시리즈를 연재해 오고 있다. 지난달 24일자로 37회가 발행되었다.

여기에는 100억분의 1미터를 분석하는 ‘수차보정 투과전자현미경’을 통해 신소재의 비밀을 밝히는 이야기부터 1미리그램만 섭취해도 사망에 이르는 리신(Ricin)을 분석해내는 방법까지 최신 과학실험과 연구 과정이 생생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 시리즈를 읽으면 분석과학에 대해 좀 더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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