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리포트] 우리의 코는 악취에 금세 익숙해지도록 만들어져 있듯, 시각 역시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다만 매커니즘은 좀 다르다.

최근 나온 <당신의 뇌, 미래의 뇌>(해나무. 2019)는 뇌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 여러 가지를 전한다. 이 중 뇌의 시각정보 처리에 관한 내용이 특히 이목을 끈다.

결론부터 말하면 뇌는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데 일정시간 동안 변하지 않는 것들은 모두 지운다.

쉽게 설명해보자. 창밖의 풍경을 쳐다볼 때, 얼마나 많은 사물이 눈에 들어오는가. 그런데 우리는 특정 부분만 보고(인식하고) 나머지는 보지 못한다. 우리는 이것을 ‘주목 효과’라고 말한다. 즉 무언가를 집중해서 봐야 지각한다는 식이다. 그런데 실은 뇌가 불필요한 정보, 변하지 않는 부분은 삭제해버리기 때문이라고 해야 더 옳다.

“1초에 수백 장씩...이렇게 똑같은 정보가 계속 들어오는 건 뇌의 하드디스크를 낭비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훨씬 더 효율적인 방법은 그림이 뇌로 들어올 때 첫 번째 그림과 그다음 그림의 차이 값(미분)만 계산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책상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거기 앉은 사람이 움직였다면 그것만 입력하면 되는 거예요. 사람만 변화가 있으니까요.” -45쪽

책에 따르면 뇌는 일상생활에서 아무 변화가 없으면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지워버린다. 매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나중에 기억나는 게 별로 없는 이유다.

우리 눈에 원래 보여야 할 혈관 그림자(좌)가 지워진 채로 보이는 것은 뇌가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내기 때문이다. (사진=해나무 제공)

책에 나온, 더 귀를 솔깃하게 하는 대목이다.

우리가 외부 세계를 볼 때 실은 눈동자에 혈관 그림자가 있는 모습으로 보여야 한다.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다.

빛에 반응하는 하는 세포, ‘광검출세포’는 눈 뒤쪽에 있다. 따라서 사물을 볼 때 세포 속의 어지러운 혈관이 시야에 함께 나타나야 한다. 그런데 눈 속의 혈관은 눈하고 같이 움직이기에 변화가 없다. 따라서 혈관 그림자가 빠진 채로, 풍경만 오롯이 눈에 들어온다.

눈 안의 맹점 설명도 이채롭다. 맹점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맹점은 왜 생기는가.

우리가 물체를 인식하는 과정은 이렇다.

바깥 세상에 있는 물체의 광자가 반사돼서 렌즈를 통해 망막에 맺힌다. 망막 안에 있는 다양한 세포 중 광검출기 역할을 하는 ‘광검출세포’와 신경세포를 통해 빛 에너지가 스파이크로 바뀌어진다. 이것이 뇌에 보내진다.

그런데 이 스파이크는 ‘축삭’을 통해 뇌에 전해진다. 축삭(軸索突起이 다른 말)은 신경 세포(뉴런)의 세포체에서 길게 뻗어 나온 가지이다.

쉽게 비유하면, 기름을 수송하는 유류 파이프, 혹은 광 케이블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이 파이프가 뇌에 도달해야 하는데 망막 끝에 이르면 갈 곳이 없다. 즉 땅위에서는 갈 곳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땅 밑을 파고들어야 한다. 이 구멍이 바로 맹점이다. 이 구멍, 즉 터널로 수많은 파이프 혹은 케이블이 지나간다. 그런데 이 구멍은 뚫려있음으로 세포가 없다. 이것이 바로 맹점이다.

<당신의 뇌, 미래의 뇌>는 뇌 과학자 김대식이 쓴 책이다. 뇌를 통해 이루어지는 지각, 인지, 감정, 기억 따위를 쉽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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