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리포트] 지적인 작업에 도움이 될 문장, 음미하고 사유하면 좋을 문장과 활용법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그토록 나를 원해요?"

차성희의 눈은 까물어들 듯 떨었다. 그 가냘픈 소리를 내 가슴에 새겨듣기 위해선 일순 지구가 숨을 죽여야 했다.

이병주 작가의 <행복어사전>에 나오는 문장이다.

주인공 서재필은 차성희를 짝사랑한다. 어느 날 골목에서 우연히 마주치자, 서재필은 "오늘 밤에 성희 씨를 내 걸로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차성희는 스르르 눈을 감고 낮은 목소리로 대사(맨 앞)를 읊조렸다.

이 대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그 가냘픈 소리를 내 가슴에 새겨듣기 위해선 일순 지구가 숨을 죽여야 했다.’는 대목이다. 원래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

‘그 가냘픈 소리를 내 가슴에 새겨들을 때 일순 지구도 숨을 죽였다.’

'...했다'는 식의 일반적인 표현 대신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는 당위적 표현을 씀으로써 긴장을 고조했다.

어떤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할 때 다들 숨죽인다. 초조함 속에 지켜본다. 그런데 그 순간을 주의 깊게 보고 듣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변이 조용해야 한다.

이병주 작가는 그 정적을 높였다. 그 문장은 마치 두 사람의 키스 모습을 주변 사물 모두가 숨 소리를 제어하며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활용해보자.

‘금메달을 따는 순간 시청자들은 숨을 멈췄다.-금메달을 따는 순간 시청자들은 일순 숨을 멈춰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악수하는 순간, 한반도의 시계는 일순 멈춰야 했다.’

이병주의 문장은 다음과 같이 단순하게 쓸 수도 있었다.

‘그녀가 나타나자 갑자기 사위가 정적에 휩싸였다.-그녀가 나타나자 갑자기 사위는 정적에 휩싸여야 했다.’

그런데 여기에 의인 기법을 동원해 ‘지구’란 사물을 끌어 들여 문장을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들었다.

‘차성희의 눈은 까물어들 듯 떨었다. 그 가냘픈 소리를 내 가슴에 새겨듣기 위해선 일순 지구가 숨을 죽여야 했다.’

그렇다. 지구는 1초에 약 1000킬로 속도로 지구를 돈다. 헉헉대며. 그런데 자신 품 안의 50억 인구 중 딱 두 명이 키스를 하는 순간, 그 숨찬 입을 막고 지켜봐야했다. 두 사람에겐  그만큼 역사적인 순간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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