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리포트] 누군가 좋다고 추천하는 책들을 샅샅이 뒤져, 직접 읽은 뒤 확인하고 권하는 추천 책 목록입니다. -편집자 주

이 책은 예외다. 순수하게 내가 읽고 추천하는 책이다. <금각사>는 인생의 책이다. 시쳇말로 최애 책이다. 이유가 뭘까.

일단 경이로움이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소설화 하는 능력이 그렇다. 책은 실화를 소설화했다. 아름다운 일본 국보에 불을 지른 한 어린 중 이야기다. 특정 사건에 작가로서의 상상력과 치밀한 설계, 정교한 서사를 불어넣었다. 

한 줄 문장을 완결된 작품으로 만드는 능력, 무형의 영감 하나를 유형의 건물로 뚝딱 지어내는 건축술이 놀라웠다. 누에고치에서 실 하나를 뽑아 가늘게 나누고 나눈 뒤 씨줄, 날줄을 엮어 근사한 옷 한 벌을 직조해내는 능력이랄까.

일본 교토에 있는 금각사. (사진=더리포트)
일본 교토에 있는 금각사. (사진=더리포트)

매 쪽마다 철학과 미학, 문학이 합해진 명문장

두 번째는 미려한 문장이다. 매 쪽마다 철학과 미학, 문학이 합해진 명문장의 향연이다. 예컨대 주인공인 말더듬이에 대한 묘사다. 말을 할 때 어색함, 답답함, 부조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은 한 단락 글로 절묘하게 표현했다.

말더듬이가 말문을 열려고 조바심을 치고 있는 동안, 나는 마치 내부의 찰진 찰떡에서 몸을 떼 내려고 파닥거리며 몸부림 치고 있는 참새와도 다를 바 없었다. 겨우 몸을 떼어 냈을 때는 이미 늦다. 바깥 세계의 현실이 내가 쩔쩔매고 있는 동안, 일손을 쉬고 기다려 주는 듯 여겨질 때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기다려주는 현실은 이미 신선한 현실이 아니다. 내가  애써서 겨우 바깥 세계에 도달해 보았자 언제나 거기에는 순식간에 빛이 바래고 어긋나 버린... 그리하여 그것만이 내게 걸맞는듯한 낡은 현실, 절반쯤 상한 냄새가 나는 현실이 가로놓여 있을 뿐이었다. -본문

열등의식을 가진 이 어린 중은 일련의 사건을 거친 후 모두가 숭배하는 건물을 불태우기로 작정한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외친다.

'인간처럼 필멸한 것은 근절시킬 수 없지만, 금각사처럼 불멸한 것은 소멸시킬 수 있다.'

이 책의 주제를 압축한 이 문장은 역설이란 단어를 오래도록 곱씹게 만든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즉 일회적이다. 그런데 사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은 영원하다. 사람 한 명이 죽는다고 해서 인간이란 종이 근절될 수 없다. 반면에 아름다운 건축물, 예컨대 금각사 같은 것은 영원하리라 여긴다. 그러나 사실 언젠가는 사라진다. 이 문장을 읽고 사유하는 일만으로 독자는 일정 부분 문학적 철학적 성취를 이룬다.

세 번째 이유는 맨 끝으로 돌리고, 네 번째 이유부터 말하련다. 바로 숱한 화제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소제목이 3개 따라붙는다. 그 하나. 번역의 문제다.

내가 EBS 라디오에 글쓰기 코치로 출연할 때 일이다. 한 번은 '우리는 어떤 문장에 반하는가'를 주제로 토크를 했다. 당연히 책장에서 이 <금각사>를 뽑아 읽기 시작했다.

이 소설은 기묘한 마력이 있어 첫 페이지부터 홀연히 빠져든다. 그날은 예외였다. 몇 장 넘겨도 도무지 감흥이 일지 않았다. 내 취향이 변한 걸까. 감성이 마른 걸까. 아니면 훌쩍 성장해 버린 걸까. 별 생각을 했다.

그렇게 끝났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마음속에서 혹시나 하는 의문이 슬그머니 일어났다. 번역 때문이 아닐까 하는.

곧장 국회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앞서 읽은 번역본은 ‘아무개’가 했다. 도서관에서 원래 소장했던 김후란 번역 본(1988년, 학원사)을 펼쳤다. 그런데 첫 장을 읽자마자 이내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갔다. 두 개의 간극은 번역의 차이였다.

소설가 신경숙을 파멸로 몰아간 작가의 작품

다음은 번역자 김후란(시인)과 추억이다.

명작을 읽으면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된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픈 욕구다. 학원사를 통해 김후란 선생하고 통화했다. 선생에게 격정의 독후감을 전하며 다른 작품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국내에는 번역된 작품이 없다는 답이 왔다. 당시는 쌍 팔년 시기다. 다른 작가 작품 하나를 소개해줬는데 성이 안찼다.

훗날, 한 20년 후 쯤 어떤 책 행사장에서 김후란 선생을 만났는데 아쉽게도 당시 통화한 일을 기억 못했다.

어쨌거나 나는 <금각사>의 갈증을 한 작품을 되풀이해 읽는 일과 그 책을 추천하는 일로 채웠다. 한때엔 국내에 출판되지 않은 작품을 원서로 읽기위해 일어 학원을 다닌 적도 있었다. 그만큼 강렬했다.

번역의 문제에 또 하나 언급할 사건이 있다. 신경숙의 표절시비다. 신경숙은 자신의 소설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또 다른 소설 <우국> 내용을 표절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여러 가지 정황이 나왔는데, 내가 보기엔 딱 하나 증거로 ‘유죄’가 입증될 법했다. 다음 문장이다.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나는 <우국>을 읽을 때 이 문장에서 오랫동안 눈을 멈추었다. 매우 독특한 표현이어서 머리에 각인되었었다. 문학도라면 누구도 우-연-히, 같은 문장을 구사할 수 없다! 따라서 신경숙의 해명은 믿기 힘들었다.

그 표현은 원래 '...레이코는 기쁨을 알았고...'라는 식으로 단순했다. 번역의 손을 거쳐 탄생한 문장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신경숙 표절사건의 다른 포인트는 번역의 문제이며, 문장에 관한 문제였다. 김후란이 없었다면, 그렇게 사람 잡을 만큼 인상적이게 번역하지 않았다면 사건은 없었을지 모른다.

평범하지 않은 인간이 갖는 불멸과 탐미의 욕망

필자의 책 '금각사' 초판본.
필자의 책 '금각사' 초판본.

셋은 극적인 상봉에 관한 이야기다.

김후란 번역본 <금각사>는 친구가 빌려간 상태였다. 그런데 작년인가 강의를 하다, 수강생으로부터 김후란 번역본(1988년 초판)이 중고시장에 3390,000에 나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책이 그렇게 귀해지다니...’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오래 전 <금각사>의 안부를 물었다. 다행히 친구는 그 책을 갖고 있었다. 즉시 보내라고 했다.

그리하여 20여 년 만에 그 책을 퀵으로 반환받았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있던 책이 눈앞에 나타났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앞에서 미룬 세 번째 이유에 대해 말할 차례다. 그것은 감정 이입 혹은 공감의 문제다.

청소년기, 삶과의 불화가 큰 자는 무언가에 빠져들게 마련이다. 그 무언가가 악마의 유혹이라 해도 쉬이 거부하지 못한다.

<금각사>의 주제는 절대 미의 추구다. 어린 중이 불을 지른 이유, 즉 어떤 영원성과 불멸의 아름다움을 소멸시키고 싶은 욕망은 평범하지 않은 인간이 종종 갖게 되는 치기어린 심성이다.

이 책을 ‘인생의 책’으로 꼽게 되는, 그리 오래도록 탐닉한 까닭은 주인공을 나 자신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사족. 이런 <금각사> 이야기를 어떤 모임에서 한 적 있다. 그러자 한 회원이 책을 복사해서 선물했다. 나는 이 복사본을 나눠주면서 ‘통필사’를 제안했다. 한 명씩 돌아가면, 읽고 필사하자는 취지였다. 그렇게 해서 우리들은 그 책 하나를 통째로 읽고 베껴 쓴 적 있다. 이래저래 사연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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