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리포트] [재있는 논문] 한국 문학 작가 중 이상(李箱)  만큼 많은 논문 대상이 되는 이는 드물다. 성의식 연구부터 공간 구조, 시간 흐름, 심리 변화까지 다채롭다. 여기에 건축과 미술, 음악 분야까지 비교분석하는 연구가 있었다. 

가장 최근에 나온 <李箱 문학에 나타난 繪畵的 특성에 관한 연구>(김혜옥, 강릉원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2019)는 작가의 작품 전반에 드러나는 회화적 요소들, 즉 다양한 색채감 및 원근법, 초원근법적 시각 등이 그의 문학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밝히는 논문이다.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이상의 작품에 나타나는 무의식의 흐름은 색채 기호로 변환될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
이상의 작품에 나타나는 무의식의 흐름은 색채 기호로 변환될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

초원근법적 시각, 전반적 작동...시에서 특히 두드러져

이상의 문학에는 여러 화가들의 미학적 특성들이 조합되어 문학적 기호, 이미지, 서술 방식이 되었다.

논문은 연구 방법으로 회화적 양식과 시각 및 색채, 이 세 가지 측면에서 접근했다. 이중 화가의 꿈이 투사되어 그의 문학적 그림들을 그려내는 ‘시각’ 부분에 중점을 두었다.

이와 관련해서 회화의 투시도법(perspective)에 해당하는 원근법을 적용했는데, 이상의 문학에는 원근법을 벗어난 시각체계가 작동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를 ‘초원근법’이라는 개념 하에 그러한 시각이 그의 문학에 전반적으로 작동하는 원리를 추적했다. 이 초원근법 개념은 다양한 perspective의 복합이라는 입체파적 관점에 심리, 사상과 정신의 차원을 추가한 것이 된다.

특히 예술가의 정신과 관련하여 칸딘스키의 ‘현기증나는 정상’ 개념을 가져왔다. 이러한 고차원적 영혼에 대한 칸딘스키의 논점이 이상의 ‘전등형적 존재’의 정신적 수준의 의미를 어느 정도 드러내줄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전등형 개념은 이상이 미래 세계를 설계한다는 생각으로 제시한 그의 <삼차각설계도> 시 편의 핵심 개념이기도 하다.

논문에 따르면 이상 문학에서 초원근법적 시각은 전반적으로 작동하는 원리이지만 특히 그의 사유와 정신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시 장르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난다. <LE URINE>와 <자화상(습작)>에는 광범위한 시간과 공간대를 펼쳐보고 그려낸 이미지들이 제시되는데, 이 점은 그의 문학의 회화성을 특징짓는 초원근법적 시각의 독자성을 확고하게 드러내준다.

이상 문학의 회화성은 당시 구인회나 목일회 등 문인과 화가들 사이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던 시대 분위기와도 무관할 수 없다. 다다이즘이나 큐비즘, 쉬르리얼리즘 등 당대 문화· 예술계의 흐름이 그의 문학에도 일정 부분 반영되어 있다. 그러한 경향들은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적 양식과 관련되는 작품들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이상의 소설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즉 시각체계가 실제 현실의 삶 속에서 매우 세밀하게 작동된다. <환시기>, <지주회시>, <동해> 등의 작품에는 리얼리즘적 원근법을 전복시키는 독특한 시각체계들이 나타나는데, ‘인색한 원근법,’ ‘동강난 마차말의 시야’ ‘촉각적 시각’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정치적으로 이슈화된 것들은 현실적 가치로 전면화되어 고착된다. 그러한 가치들을 추종하는 것이 원근법적 관점이다. 이상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각체계를 작동시킨 것에는 리얼리즘적 원근법의 시각을 전복시키고 그러한 세계의 허상과 모순들을 폭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색채는 회화성을 드러내주는 가장 특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는데, 특히 수필은 이상 문학에서 색채미학을 가장 풍부하게 드러내준다. 먼저 <어리석은 석반> 도입부에 제시된 ‘푸른색’과 ‘누런색’을 포착했는데, 이 두 색채는 이후 <권태>와 <산촌여정>을 이끌어가는 주도적인 색채기호로 기능한다.

이상 작품집.
이상 작품집.

■ <산촌여정>의 ‘병풍화폭’, 회화적 특성 담은 색채미학 절정

이상의 작품에서 색채는 풍경을 바라보는 자의 시선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그의 심리와 사유가 상당히 깊이 깔려 있다.

이를테면 <권태>에서는 공포와 지루함을 유발하는 색인 ‘초록색’이 원경으로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에 반해 <산촌여정>에서는 ‘황색’과 ‘붉은색’이 시골 화단의 병풍화폭을 다채롭고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초록색’의 변모 양상의 핵심에 자리하는 ‘황색’에 주목했다.

<권태>의 마지막에 아이들의 ‘똥누기 놀이’를 배치함으로써 ‘영원한 녹색’ 또는 ‘공포의 초록색’ 속에 ‘마비된 힘’으로 잠들어 있는 ‘대지적 황색’을 깨어나게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구성에는 이상의 치밀한 의도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산촌여정>에서는 이 ‘황색’이 좀 더 다채롭게 표현되었고 보다 역동적으로 기능한다. <산촌여정>의 ‘병풍화폭’은 이상 문학의 회화적 특성을 드러내주는 색채미학의 절정을 담아낸 것이다.

이 화단에 핀 붉은 꽃과 황색 계열의 열매들은 황무지 근대를 살아가는 병적인 자아의 육체와 정신에 생명력을 회복해주고 나아가서 대지와 자연에 풍요로운 리듬을 돌려주는 상징적 의미로 기능한다.

대지와 육체가 활력을 찾을 때, 비로소 이상의 정신과 사상 또한 생명성과 열정을 회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논문 저자는 “‘펜은 나의 최후의 칼이다’라는 이상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이는 그의 글쓰기적 자아의 대결의지를 말하는 것으로 작가의 ‘붉은색’은 궁극적으로 ‘피’의 글쓰기, 즉 시인으로서의 사명감을 드러내주는 색채기호가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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