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중 전 서울대학교 교수가 고양시 인문학 모임에서 강연하고 있다.

[더리포트] “이민족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수호하는 방책에서 우리 왕조는 다른 나라들과 달랐습니다. 산지가 많고 농지가 협소한 지역을 기반으로 수립된 농본국에서는 대규모 침략군에 대항할 상비군을 유지할 수가 없었죠. 이처럼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할 수 없는 여건에서 종묘사직, 즉 국가를 지키는 방책이 바로 ‘사대교린’(事大交隣)이었습니다.”

송기중 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문과 교수가 고양시의 한 인문학 모임에서 ‘전통적 사대교린(事大交隣) 외교와 역관(譯官)의 역할’에 대한 강연을 했다.

지난달 28일 고양시 주엽동 사과나무치과병원 7층 대강의실에서 열린 이 강좌에서 송 교수는 ‘사대교린 외교’에 대해 힘주어 강조했다.

그는 “큰 나라는 섬기고, 이웃 민족들은 사귄다는 의미”라며 “패권국과는 주종관계를, 인접 민족들과는 우호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나라의 안녕을 도모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대의 대상은 동북아시아의 여러 민족을 정복하고 북경 지역을 중심으로 건설한 제국이었고, 교린의 대상은 북쪽의 여진족과 남쪽의 왜구였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사대교린 외교의 첨병이 바로 역관(譯官)이었다는 점이다. 홍 교수의 말이다.

“그들은 조선 조정의 중요한 사대외교 행사인 연 3-5회 북경에 파견되는 사신단에 편성되어(매회 약15인) 통역했습니다. 북경에 파견되는 사신단의 역관은 중국어 역관이 대다수였으나, 몽고어 역관과 여진어 역관, 일본어 역관까지 1인씩 포함되었다. 외적이 침입하였을 때는 조정을 대표하여 적진에 파견되는 신하를 수행하여 협상 대화의 통역을 담당했습니다.”

송 교수는 “결과적으로, 이민족의 침략에 의하여 붕괴된 왕조가 없었기 때문에 20세기 이전까지 전통적인 사대교린 외교정책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이는 한반도 왕조들의 외교적 노력의 결과로, 외교적 접촉에는 상대방과 대화가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 조선왕조에서 역관을 지속적으로 양성하고 확보했다는 점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송기중 교수는 하버드대학교에서 내륙아시아 및 알타이학과에서 언어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펜실바니아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어문실장으로 구비문학을 집대성했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편찬했으며, 서울대학교 규장각 관장을 역임했다. 오늘날 휴대폰에서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는 ‘천지인’ 한글 문자 입력 체계를 창안했다.

송기중 교수의 강연 현장. 한 청중은 "일반인이 잘 모르는 역관의 역할을 새롭게 알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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