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시인의 '죽음의 자서전'
김혜순 시인의 '죽음의 자서전'

[더리포트] 김혜순 시인이 한국인 최초로 캐나다의 '그리핀시문학상'(The Griffin Poetry Prize)을 받았다.

기업가 스콧 그리핀이 2000년 시문학에 대한 세계적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2000년 제정한 상이다. 국내와 국제 부문 각 1명에 수여하며, 상금은 각 6만5천 캐나다 달러(한화 약 5천750만원)다. 고은 시인이 2008년 공로상(Lifetime Recognition Awards)을 받은 이래, 본상 수상은 김 시인이 처음이다. 아시아 여성을 통틀어서도 최초다.

수상작은 2016년에 나온 '죽음의 자서전'이다. 시인이 그 한 해 전 갑자기 지하철역에서 몸이 무너지며 쓰러진 경험이 계기가 되었다. 세월호의 참상과 계속되는 사회적 죽음들 속에서 시적인 상태로 급격하게 전이된 것이다. 그때 말 그대로, 미친 듯이 49편의 죽음의 시들을 썼다. 그 중 몇 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죽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이 냄새의 치세 / 죽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이 광경의 질병 -‘냄새 : 스무하루’에서

​고향 멀리 떠나와 몸 없이 사는 광경! / 희미한 부사 하나 되어 생후를 떠도는 광경! -‘공기의 부족 : 스무사흘’에서

​매일 매일은 죽음의 이브입니다 -‘월식 ; 열이틀’에서

김 시인은 이 시집에 대해 "산 자로서 죽음을 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문학평론가 조재룡은 ‘비명을 담아낸 목소리의 기록’으로 봤다.

 “우리 사회의 한복판에 당도한 죽음의 시간 속에서, 죽음의 살점들, 죽음의 아우성을 매만지는 지금-여기, 죽어야 할 수 있는 말이, 죽으려 하는 문장이, 망자-산 자의 구분을 취하하는 문자가, 너-나의 말, 사자死者가 된 여인의 절규가, 공동체의 폭력과 공동체의 신음이, 너-나의 참혹이, 세계를 노크하고, 검은 문을 열어 우리 곁에 사死-생生의 목소리를 피워낼 것이다."

그 누구보다 예민한 촉수를 지닌 김 시인의 시 쓰기 비결은 ‘귀’에 있다. 시인에게 귀는 특별한 감각이다. 그는 "귀로 시를 쓴다"고 말한다. 여기 ‘귀의 비명’으로 불릴 김 시인의 산문 하나를 소개한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부터 잠들기까지 소리의 고문에 시달립니다. 세상은 빛처럼 공기처럼 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더구나 도시의 삶 속엔 기계음이 가득 차 있습니다. 모두 불쾌하고, 불편합니다. (중략) 눈 뜨자마자 냉장고가 부르르 떱니다. 불을 켜면 형광등이 부르르 떱니다. 변기가 덜컥 내려 갑니다.

자동차가 아스팔트와 마찰음을 일으킵니다. 지하철은 소리의 덩어리입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아나운스먼트는 나를 질식시킵니다. 사람들은 모두 전화기를 꺼내들고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내게는 모두 비명소리로 들립니다. 냉면 식당은 끓는 가마솥 같습니다. 그 속에서 아우성치며 먹어대는 사람들의 입이 끓고 있습니다. 여기요! 사리 하나 더요! 끓고 있습니다.(중략) 소리들이 살을 벗고 벌건 눈을 번뜩이며 내게로 벌거벗은 채 육박해 들어옵니다. 나는 저절로 웁니다.’

김 시인은 1979년 등단, ‘죽음의 자서전' 외에 '또 다른 별에서', '피어라 돼지',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등의 시집을 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현재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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