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리포트] 우리 사회에는 이 세계가 나아갈 항로를 맨 앞에서 이끄는 지(知)의 최전선이 있다. 때때로 그 전선은 지식의 높이와 지리적 장애로 난공불락이어서 보통사람이 접근하지 못한다. [더 리포트]가 그 현장을 찾아 삶의 지혜, 한 수를 전한다. -편집자 주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 본 미시 세계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맨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가 화려한 작품으로 둔갑한다. 자연이 만드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예술-‘마이크로 아트’. 이를 창조하는 이들은 과학자다.

'모든 입자의 아름다움'

런던대학 게르 그린버그 교수도 그 중 하나다. 그는 모래 알갱이 입자를 250배 확대해 믿기 힘든 모양을 추출했다. 모래가 오색찬란한 보석이 된 사진들은 ‘모든 입자의 아름다움’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지구촌의 이목을 끌었다.

우리에게도 그보다 더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이들이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시냅스 뇌질환 연구단이 그들이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도 저절로 예술이 된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그 세계란 주로 인간이나 동물 뇌의 신경세포와 혈관, 조직이다. 뇌질환 연구의 최전선의 심장에서 예술이 꽃피고 있는 셈이다.

■ 수면 장애와 영화 ‘매트릭스’의 절묘한 조합 ‘모르피우스의 눈'

IBS는 과학·예술 융합 전시인 'Art in Science'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주인공은 시냅스 뇌질환 연구단에 있는 예술가들이다. 물론 본업은 과학자다. 가장 최근인 2018년 전시에서도 신비로운 예술 작품이 대거 등장했다. 일단 당시 화제가 되었던 작품 ‘모르피우스의 눈'을 보자.

시냅스 뇌질환 연구단은 시냅스 단백질과 뇌기능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고 뇌 정신질환 발병 기전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다. 자폐 등 주요 뇌질환의 원인 유전자 및 핵심 발병 매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이 목표다.

박하람 연구원이 출품한 이 작품은 한편의 추상화다. 초록과 청색, 연두와 붉은 색이 어우러진 색감이 일품이다. 제목 ‘모르피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꿈의 신에서 따왔다. 잠을 결정하고, 꿈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 작품은 실험쥐의 뇌를 촬영한 모습이다. 활성화된 신경세포는 초록색으로, 비활성화된 신경세포는 붉은색으로 표현됐다. 중앙의 파란색 두 점은 세포핵이다.

박하람 연구원의 ‘모르피우스의 눈' (사진=IBS 제공)
아니샤 샤캬 연구원의 ‘DNA 천태만상’ (사진=IBS 제공)

이 사진은 수면 연구를 수행하면서 얻은 결과다. 사진 속 붉은 색으로 보이는 영역은 뇌에서 잠을 관여한다고 알려진 ‘측면 시각교차구역(LPO)’이다. 여기의 신경세포가 손상되면 불면증 등 수면장애를 겪는다는 게 학계의 통설이다. 수면을 관장하는 뇌 영역을 촬영한 이미지가 예술 작품으로 변신한 셈이다.

박하나 연구원은 “모르피우스는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익숙한 인물”이라며 “영화에서 모르피우스가 주인공 네오를 잠에서 깨는 장면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밝혔다. 이어 “뇌를 연구하다가 아름다운 영상들을 많이 본다”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생명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작품을 보자. 첨단연성물질 연구단 아니샤 샤캬 연구원이 내놓은 ‘DNA 천태만상’이다.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가 만든 멋진 이미지다. DNA는 전해질로 이뤄진 중합체(polymer)인데, 반대 전하를 띤 양이온성 중합체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할 때 다양한 상(相, phase)을 연출한다.

콜라주 기법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DNA가 액체 상태, 다중구획 유사 액체, 액체 결정, 그리고 반-고체 상태로 응축된 이미지들을 각각 보여준다.

이민철 연구원의 '펨토은하의 조각' (사진=IBS 제공)

심미안에서 편집, 제목 달기, 그리고 의미부여까지 필수적

'Art in Science'에 출품하는 IBS 연구원은 말 그대로 과학자다. 그러나 예술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작업 중 보는 영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심미적 안목과 미와 추를 분리시키는, 혹은 어우러지게 하는 편집 능력이 필수다. 여기에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도 포함된다. 감각과 센스가 중요한데, 이는 과학자의 일반적인 덕목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Art in Science'는 과학계의 기발한 아이디어다.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예술이란 방식으로 드러내는 셈이니 말이다. 그 덕에 일반 시민으로서는 어려운 과학과 소통할 수 있다.

기초과학연구원 심시보 정책기획본부장은 “과학자들만이 보는 세계를 엿봄으로써 새로운 상상력과 미적 즐거움을 얻는다”며 “과학과 예술의 단순한 만남을 넘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무대를 만들고자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 전시는 매년 주제를 달리해 작품을 소개한다. 작년 전시는 ‘생명’이 주제였다. 자연과 생명이 태어나고 번식해 죽는 과정이 끝없이 이어지는 본질적 속성을 다루었다. 그러나  'Art in Science'의 본질은 고통 없는 인간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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