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이정서씨, 김욱동과 김영하 번역에 대해 맹공

[더리포트] BBC 선정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이자 ‘타임’ 선정 ‘100대 영문 소설’중 하나인 영미 문학의 금자탑 <위대한 개츠비>(새움, 2019)가 새롭게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여러 가지 판본 중 가장 최근의 번역본이라는 점 외에 이번 책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번역자의 ‘도발’이다.

번역자 이정서씨는 수많은 찬사와 서구 독자의 열광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개츠비가 우리에게 여전히 낯선 이유는 번역 때문이라고 못 박았다. 기존 번역서들이 주인공 개츠비를 부도적한 사랑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젊은 벼락부자 정도로 옮겨 놓음으로써 이 소설의 얼개와 캐릭터의 근본까지 엉뚱하게 뒤틀어 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내용은 이 고전에 대한 가장 오래되고 본질적인 질문, 즉 ‘개츠비가 왜 위대한가’와 맞닿아 있다. 번역자 이정서씨 역시 책 번역을 그 의문에서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기존 번역서로는 어느 구석도 개츠비가 위대하다라고 할 수 없었다. 그것은 교묘하게 얽히고 설킨 과정들의 해명들이 너무나 은유적이고 상징적이어서 번역 과정 중에 혹은 원서를 읽는 중에 오독을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온 책은 원문과 번역 문을 양쪽에 배치하는 방식을 썼다. 독자가 직접 대조해보라는 뜻이다.

또한 책 뒤에는 75쪽의 ‘번역 노트’를 실었다. 기존 번역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다 보니 다른 번역본의 번역가 김욱동씨(민음사)와 김영하(소설가, 문학동네), 두 사람이 타깃이 되고 있다.

'민음사'(김욱동 역), '문학과지성사'(김영하 역), '새움'(이정서 역)
'민음사'(김욱동 역), '문학동네'(김영하 역), '새움'(이정서 역) 번역본.

그중 한 예는 소설 속 문장에 나오는 'private car'에 대한 번역이다. 극중 ‘빌록시’라는 인물에 대해 데이지가 자신은 모른다고 부정하는 대목이다.

"He was not." she denied. "I'd never seen him before. He came down in the private car."

이 문장은 쉽다. 다음과 같이 번역된다.

“그는 내 친구가 아니에요.” 그녀가 부인했다. “나는 결코 그를 전에 본적이 없어요. 그 사람은 'private car'를 타고 왔어요.”

이에 대해 김욱동과 김영하는 각각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그는) 자가용을 타고 왔어요.(김욱동 역)

(그는) 열차 특실 칸을 타고 내려왔어. (김영하 역)

그렇다면 ‘private car‘는 자가용인가 아니면 열차 특실 칸인가.

이에 대해 이정서씨는 책 속의 다음 문장을 보여주면서, 둘의 오역을 지적했다.

He came down with a hundred people in four private cars, and hired a whole floor of the Seelbach Hotel.

이정서는 이렇게 번역했다.

그는 네 대의 개인 소유의 차에 백 여 명의 사람들을 실어왔고, 실바크호텔 전 층을 빌렸다.

1백 여 명을 네 대에 실으려면 자가용이라기 보다 버스일 터. 따라서 'private car'는 ‘개인 소유 차‘ 정도가 맞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김욱동씨의 번역은 그렇다 쳐도 김영하의 ’열차 특실 칸‘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참고로 ‘private car‘에 대한 사전에 ’자가용차‘, ’민영 철도 차량‘, ’열차 특실칸‘이라는 뜻이 있다. 이 말을 끌어다 쓴 셈이다.

이에 대해 이정서씨는 “상식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열차를 탔는지, 그것도 특실칸을 탔는지 보통칸을 탔는지 대체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손꼽히는 다음 글에 대한 번역도 논쟁거리다.

“His heart beat faster and faster as Daisy’s white face came up to his own. He knew that when he kissed this girl, and forever wed his unutterable visions to her perishable breath, his mind would never romp again like the mind of God. So he waited, listening for a moment longer to the tuning fork that had been struck upon a star. Then he kissed her. At his lips’ touch she blossomed like a flower and the incarnation was complete.”

이에 대한 번역문이다.

데이지의 하얀 얼굴이 자신의 얼굴에 닿는 순간 그의 가슴은 점점 더 빨리 뛰었다. 이 아가씨와 입을 맞추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신의 꿈을 그녀의 불멸의 숨결과 영원히 결합시키면, 하나님처럼 다시는 마음이 뛰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별에 부딪힌 소리굽쇠가 내는 아름다운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잠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그의 입술이 닿자 그녀는 그를 위해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났고, 꿈은 실현되었다. -김욱동 역

데이지의 하얀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심장은 더욱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는 이 여자에게 키스하고 나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의 비전들이 곧 사라질 그녀의 호흡에 영원히 결부되고, 그의 마음은 이제 신의 마음과도 같이, 다시는 유희 장난의 세계에 머물 수 없게 될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별에 부딪히는 소리굽쇠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렸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의 입술이 가 닿자 그녀는 그를 향하여 꽃처럼 피어났고, 상상의 육화가 완성되었다. -김영하 역.

일단 김욱동씨 번역에서는 ‘perishable’를 ‘불멸’로 번역한 점이 오점으로 보인다. 사전적 의미는 ‘상하다’, ‘부패하다’라는 뜻이다. 이것을 ‘불멸’이라고 번역하는 건 무리라는 지적이다.

김영하 번역본에서는 ‘유의와 장난의 세계’ 부분이 문제다. ‘his mind would never romp again like the mind of God.’에 유희와 장난의 말은 없다. 다만 그렇게 번역한 이유는 ‘romp’이라는 단어에 ‘(유희적인) 성관계’라는, 또 다른 뜻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상당히 ‘부적절’하다고 본다.

다음은 이정서씨의 번역이다.

그의 가슴은 데이지의 흰 얼굴이 그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점점 더 빠르게 고동쳤다. 그는 자신이 이 아가씨에게 키스하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의 비전들을 그녀의 부패하기 쉬운 숨결에 영원히 결부시켰을 때, 그의 마음이 결코 하나님의 생각으로 다시 즐겁게 뛰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기다렸다. 별이 때려 대는 그 소리굽쇠 소리를 한 순간이라도 더 들으면서, 그러고 나서 그는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의 입술이 닿았을 때 그녀는 그를 위해 꽃처럼 피어났고 생은 완벽했다. 

역자 이정서씨는 국내에 출간된 여러 <위대한 개츠비> 번역본이 의역에 치중하다 보니 원작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이번 책은 당사자가 2년 전에 작업한 번역본에서 오류를 발견해 즉시 절판하고 절치부심 끝에 다시 펴낸 책이라고 한다.

그는 개츠비가 왜 위대한가에 대해, 개츠비가 그동안 알려졌듯, '속물적 인물'이 아니라 고결한 품성을 지닌,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재산은 물론 목숨까지 내놓는 희생적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과연, 이번 번역본이 위대한 고전의 진면목을 복원할 것인지, 독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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