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리포트] 몰입은 생각의 혁신을 만드는 중요한 방법이다. 이 몰입은 창작의 과정에서 속살이 드러난다. 1819년 한 여름 베토벤이 집에서 <장엄 미사>Missa solemnis를 작곡할 때 일이다.

베토벤은 이듬해 예정된 루돌프 대공의 즉위식까지 완성하기로 의뢰받았다. 그런데 그는 정해진 기한까지 작품을 완성할 수 없어서 절망하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 두 명의 음악가 친구가 그를 방문했다. 그때 그들은 한 작곡가의 처절한 창작의 현장을 목격했다.

그가 작업하는 소리를 굳게 닫힌 문을 통해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귀가 먼 그는 노래 부르고 울부짖고 발을 쾅쾅 구르고 있었다. 문가에서 엿듣는 사람들은 피가 얼어붙을 정도로 섬뜩했다.

엿듣던 사람들이 잔뜩 겁을 먹고 문가에서 떠나려는 순간, 방문이 활짝 열리더니 베토벤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나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옷은 아무렇게나 걸친 채 얼굴 표정은 일그러져 있어서 공포심을 자아냈다. 그의 표정은 마치 적의에 찬 대위법의 온갖 유령들과 사생결단의 일전을 치르기라도 한 것 같았다. -토마스만, <파우스트 박사>(민음사), 116쪽

베토벤의 창의성 뒤에는 엄청난 몰입의 과정이 있었다. (사진=픽사베이)

베토벤의 헝클어진 머리와 반쯤 넋 나간 얼굴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19세기 최대의 걸작으로 꼽히는 그 미사곡은 그 후 3년이 지난 뒤에야 완성되었다. 그 산고가 어떠했으리란 점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과학책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의 배우자는 앤 드루얀Ann Druyan 이다. 과학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그녀는 몰입과 관련해 남편과 공동 작업했던 기억 한 토막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녀는 칼이 얼마나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컴퓨터에 눈을 떼어 시선을 창밖으로 잠시 돌렸더니, 덩치가 엄청나게 큰 사슴 한 마리가 그의 어깨 너머로 원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칼은 등 뒤에 사슴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자기 앞에 놓인 원고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아인슈타인 말대로 몰입은 ‘미친 듯’이 생각 속으로 빠져드는 일이다. 시인의 경우 시를 짓다보면 '시마' 詩魔(시 귀신) 가 들리는데, 이 부분도 몰입의 한 형태다. 시마의 증세는 이렇다.

길을 가면서도 시 생각, 밥을 먹으면서도 시 생각, 심지어 꿈에서까지 시 생각뿐, 그밖에 다른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지는 증세, 예의와 염치, 체모조차 우습게 보는 태도, 눈에 띄는 사물마다 허투루 보지 않고 거기에 담긴 비밀을 찾아내겠다고 달려드는 증상이 이른바 시마증후군이다. -<한시미학산책>, 269쪽

고려 때 선비 강일용康日用 예가 딱 그렇다. 그는 백로를 가지고 남이 생각하지 못한 시 한 수를 지으려고 100일간이나 관찰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아래 달랑 한 구절을 얻었다고 한다.

'푸른 산허리를 날며 가르네.‘ 飛割碧山腰

엄청난 몰입 끝에 얻은 수확치고는 결과가 미미하다. 그러나 그러기에 더욱 귀하다. 시마증후군은 이해하려면, 자나 깨나 딱 한사람만 생각하는 짝사랑 증후군을 떠올리면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무언가 의미 있는 도약이 있으려면 반쯤 미쳐야 한다. 소설가 전경린의 경우를 보면, 창작에서의 몰입이 얼마나 지독한지 알 수 있다.

쓰는 동안은 밥 먹을 때도 소설을 생각하고, 걸을 때도 소설을 생각하고, 꿈속까지 생각하고, 숨 쉴 때마다 생각한다. 마치 심장이 생각하는 것 같다. 외출하려고 신을 신다가도 책상으로 달려가고, 밤에 잠자리에 누웠다가도 몇 번이나 몸을 벌떡 일으켜 책상으로 가서 쓰고, 밥을 먹다가도 숟가락을 높고 달려가서 쓴다. -<소설가로 산다는 것>(문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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