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스 크기가 42㎝나 되는 아르헨티나 푸른부리오리. (사진=픽사베이)

[더리포트] ‘덕페니스게이트(Duckpenisgate)’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핫이슈 중 하나다. 대체 뭐길래 그 야한 이름이 논란이 됐을까. 사정은 이렇다.

2013년 3월 미국 의회와 야당인 공화당이 오리 연구 하나에 트집을 잡았다. 이들은 리처드 프럼 예일대 조류학과 교수팀이 수행 중이던 ‘오리의 성 갈등과 생식기 진화에 대한 연구’에 대해 "정부 지출이 과도하다"며  도마 위에 올렸다.

언론은 “당신이 낸 38만5000달러의 혈세가 오리의 은밀한 부위를 연구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뉴스를 확대 재생산했다. 이로부터 ‘덕페니스게이트(Duckpenisgate)’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그렇다면 프럼 교수팀은 왜 그런 연구를 했을까.

수컷 오리는 몹시 까다로운 암컷의 배우자로 간택받기 위해 복잡하고 다양한 구애행동을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선택받는 수컷은 소수다. 나머지 수컷은 다음 시즌을 기다리거나 암컷을 겁탈한다.

오리는 조류의 97%가 갖고 있지 않은 성기(페니스)를 가졌는데 그 크기가 엄청나다. 아르헨티나 푸른부리오리는 몸길이는 30㎝ 남짓한데 페니스는 42㎝나 된다. 게다가 나선형 고랑이 파여 있고, 날카로운 돌기까지 나 있다.

이에 맞서는 암컷의 방어 역시 놀랍다.생식관과 연결된 통로가 구불구불한 데다 수컷의 나선형과 반대방향으로 꼬여 있다. 수컷의 강제 진입을 막기 위한 장치다. 한 암컷 오리 종의 경우 40%가 강제 교미당하지만 그 결과 낳는 새끼는 전체의 2~5%에 불과하다.

프럼 교수는 이런 사례를 통해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이 성적 자기결정권과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싸워왔으며, 현존하는 동물들의 신체에는 그 지난한 싸움의 역사가 ‘진화’라는 형태로 아로새겨져 있다고 설명한다. 오리 생식기 연구는 예산 낭비가 아니라 생물의 진화에 관한 새로운 시사점으로 가득한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아름다움의 진화'
'아름다움의 진화'

<아름다움의 진화>(동아시아, 2019)는 적자생존의 법칙에 기초한 ‘자연선택’의 부수적 이론으로 여겨온 ‘성선택’을 주류 이론으로 복권시키는 책이다.

30년 이상 세계 각지의 새들을 관찰하며 연구해온 저자는 “자연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아름다움은 자연선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그 아름다움은 성선택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새들은 특정 깃털, 색깔, 노래, 과시행동에 대한 선호도를 바탕으로 자신의 배우자를 선택한다. 그 결과 성적인 장식물이 진화하게 된다. 욕구 자체와 그 욕구의 대상은 함께 진화해왔으며 그 결과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수천 종의 새들 사이에서 나타난 배우자 선택은 성적 아름다움의 다양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그 사례 중 하나다.

말레이반도, 수마트라, 보르네오의 열대우림에 사는 꿩과(科)의 청란 수컷은 꽁지와 날개 깃털이 매우 길다. 깃털이 무려 1m나 뻗어 있어 부리 끝에서 꽁지 끝까지 길이가 180㎝에 달한다. 수컷 청란은 암컷의 간택을 받기 위해 지상 최고의 구애 쇼를 펼친다.

이 새는 너비 4~6m의 땅을 깨끗이 치워 무대를 만들고 관람자의 마음을 끌기 위해 이른 아침과 저녁, 달밤에 ‘콰오콰오’ 하고 세레나데를 부른다.

황금머리마나킨새의 수컷은 우아한 곡예비행과 문워크 스텝으로 암컷을 유혹하고, 흰수염마나킨은 소란스럽고 무질서한 공연으로 암컷에게 구애한다. 54종에 달하는 마나킨새 모두가 제각각 독특한 깃털 장식과 과시행동, 음향신호 레퍼토리를 진화시켜왔다. ‘데이트 폭력’을 할 수 없게 된 바우어새 수컷은 암컷을 맞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무대를 꾸미고 수컷들끼리 군무를 준비한다.

책은 성선택이 조류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인 보노보와 침팬지는 암수의 몸집 차이가 25~30%나 된다. 하지만 인간은 남자가 여자에 비해 평균 16%가량 크다. 다른 영장류에 비해 송곳니도 유난히 작다. 이는 인간이 물리적인 강압과 폭력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저자는 “성적 자율성은 유성생식을 하는 많은 종의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진화적인 특징”이라며 “성적 자율성을 추구하는 여성의 진화적 몸부림이 인간의 섹슈얼리티가 진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수행했으며 인간성 자체가 진화하는 데도 핵심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강조한다. 또한 여성들이 진화를 통해 얻은 성적 자율성을 억압한 주범은 가부장제라는 문화의 진화였다고 강조한다.

논쟁적인 이 책은 2018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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