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리포트] 영조시대 ‘불세출의 엔지니어’가 있었다. 18세기 무인 최천약이다. 그 이름은 ‘경신척’이란 ‘자’에 오롯이 새겨졌다. 놋쇠로 만든 이 자는 우리 과학기술 역사에서 반짝이며 빛난 재능의 결과였다.

경신척은 2미터 반 정도 되는, 놋쇠로 만든 짧은 자다. 이 자가 그리 중요했던 까닭은 당시의 ‘표준’이자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글자와 같다. 없으면 사회가 ‘깜깜이’, 암흑이다. 우리의 일상을 둘러보라. 마트에서 채소나 정육점에서 고기를 살 때, 척도가 없다면 어찌 되겠는가. 중국 진시황제가 왕권을 잡은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도량형 통일이다. 그만큼 중요하다.

'경신척' (국립고공박물관)

최천약은 최고의 기술자였다. 못 고치고 못 만드는 게 없었다고 한다. 일상용품부터 옥공예, 궁중악기까지 만지면 작품이 되는 미다스 손이었다. 그런데 그는 기술자로 불리길 거부해 영조가 상을 주려해도 거절했다. 그 이유는 기술자를 천대하는 사회의 분위기, 사람들의 인식 때문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당시 사회의 잘못된 정책과 제도, 사회 인식의 어리석음을 두고 개탄할 것이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는 지금은 어떤가. 우리가 과학계를 대하는 태도는 그 당시나 별반 차이가 없다.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정략과 무관하게 돌아가야 할 과학계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코드 인사로 채워졌다. 지금도 전혀 다르지 않다. 기초과학의 투자나 정책은 우리의 위상에 비추어 봤을 때 턱없이 부족하다.   

기술자에 대한 인식 역시 다르지 않다. 명인, 장인에 대한 뉴스가 종종 나오지만, 그 대접은 정치인이나 기업인, 교수에 비하면 매우 부족하다.

National Inventors Hall of Fame 내부 전경.(사진 해당기관 홈피)

그런 면에서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National Inventors Hall of Fame)’ 소식을 들을 땐 더욱 자괴감이 인다. 지난 2일, 미국 특허상표청(USPTO)은 19명의 발명가를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새로 등재했다.

이 명예의 전당은 발명가들의 명예와 업적을 기릴 목적으로 1973년에 설립됐다. 미국 벨연구소 출신 과학자 강대원 박사가 한국인 출신으로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강 박사는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촉발한 금속산화막 반도체 전계효과 트랜지스터(MOSFET)를 처음 발견한 인물이다.

우리에겐 왜 이런 발명가 명예의 전당이 없을까. 기술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지금부터라도 검토해볼 사안이 아닌가. 기술을 우대하는 사회라야 자라나는 아이들이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일본의 호류지는 1,3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런데 세계문화유산인 이 절 목조 건물이 지금까지 건재한 이유는 나무 목재 전문가인 대목장을 중심으로한 궁궐 목수들이 기술을 대대로 이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체 궁궐 목수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만약 최천약, 혹은 과거 우리 ‘기술사’에 이름을 남긴 엔지니어들의 업적이 후대에 계승되었다면 어땠을까. 우리나라의 모습은 지금과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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