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리포트] 비만, 뇌졸중, 살인, 우울증, 자살...

요즘 우리 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골치 아픈 '현대병'들이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만약 이 모든 현상에 원인이 하나 있다면 무엇일까.

<진화의 배신>(부키. 2019)은 이를 진화론의 관점으로 풀이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갖춘 ‘무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인류를 위협한 가장 큰 문제, 즉 ‘굶주림, 탈수, 폭력, 출혈’에 대한 방어기제가 오히려 요즘 인류에게 독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심장병 전문의인 저자 리 골드먼 박사다. 미국 내 주요 사망 원인 중에서 심장 마비는 1위, 뇌졸중은 4위에 올라 있으며 당뇨병은 9위, 자살은 10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설득력 있게 전개했다.

리 골드먼 박사는 인류가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생체 기제가 인류를 비만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주장한다.
리 골드먼 박사는 인류가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생체 기제가 인류를 비만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류의 가장 큰 위협-굶주림, 탈수, 폭력, 출혈

먼저 굶주림부터 살펴보자.

책에 따르면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우리 조상들은 늘 아사의 위협에 직면했다. 이에 적응하기 위해 인류는 음식이 생길 때마다 지나칠 정도로 배불리 먹어 두는 보호 전략을 취했다.

"예컨대 ‘배, 허리, 둔부에 집중된 350억 개의 지방 세포는 약 13만 칼로리(비만일 경우 1400억 개, 100만 칼로리)의 열량 비축 능력을 가졌다."(136쪽)

탈수를 피하는 일 역시 생존에 대단히 중요했다. 작고 약한 인간은 사냥감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뒤쫓는 방법으로 먹이를 구했다. 이때 갖추어야 할 필수 요건이 끈기 또는 지구력이었다. 그런데 이 지구력은 엄청난 땀을 동반한다. 이에 탈수를 피할 체계를 갖춰야 했다.

'진화의 배신'
'진화의 배신'

"호르몬들은 갈증을 일으켜 필요한 만큼 물을 섭취하게 유도하고, 짠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켜 소금을 섭취하게 한다. 또 신장을 제어해 소금과 물이 부족할 때는 보존하고 너무 많으면 배출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유전자는 심지어 소금이 필요하지 않을 때도 입맛과 생존을 위한 과잉 보호 본능 때문에 짠 음식을 먹고 싶어진다."(175~178쪽)

다음은 폭력과 출혈이다. 폭력과 그로 인한 비명횡사는 우리 조상들에게 다반사였다. 그런데 그 폭력에 대해 책은 거의 대부분이 동물의 공격이나 절벽에서 떨어지는 등의 사고보다 살인에 의한 것이었다고 결론 내린다.

일례로 5000년 전 사람 ‘아이스맨 외치’와 9400년 전 사람 ‘케너윅맨’의 사체를 정밀 조사해 보니 사람에 의한 폭력의 흔적이 역력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1만 세대 동안 강한 살해 욕구를 가지고 살아왔을까? 그것이 진화의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답한다.

“살인을 통해 식량과 물, 그리고 원하는 여성과 자손 번식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230쪽)

그런데 이 살인 능력만큼이나 생존 가능성을 높여 주는 것이 살해당하지 않는 능력이다. 그렇다면 비명횡사를 피하기 위해 우리 조상들은 어떤 형질을 발달시켰을까? 책은 한 가지는 극도로 경계하고 두려워하면서 불안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은 출혈. 원시 지구를 누비고 다닌 선사 시대 사람들에게 부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로 인한 출혈은 심각한 문제였다.

“현대적인 산과 의료 서비스, 수혈, 외과 수술, 봉합 같은 치료의 도움 없이 수천 세대에 걸쳐 출산을 하고 폭력 상황을 헤쳐 나가야 했던 우리 조상들은 피가 응고되어야만, 그것도 재빨리 응고되어야만 했다.”(300쪽)

이처럼 출혈로 목숨을 잃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 몸은 두 가지 혈액 응고 신속 대응 경로를 갖추었다.

이 훌륭한 네 가지 유전 형질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높은 생존율을 보이며 1만 세대, 20만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환경에 적응하고 번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날 인류에게 그토록 유익했던 것들이 오늘날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굶주림과 아사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 주던 과식 본능은 이제 비만과 당뇨병의 원흉이다. 치명적인 탈수를 예방해 주던 물과 소금 보존 본능은 고혈압을 부른다.

비명횡사 당하지 않기 위해 경계하며 두려워하고 순종하며 슬퍼하는 전략이 불안과 우울증, 그리고 자살을 부추긴다. 출혈로 인한 사망을 방지하는 신속한 혈액 응고 장치는 혈전을 형성해 혈관을 막거나 터뜨려 뇌졸중과 심장 질환을 부른다.

인류가 헤처나온 문제해결 능력에 승산 

그렇다면 현대병을 해결할 방법과 대안은 무엇인가. 많은 문제가 우리 안의 유전자 때문이라면 유전자를 바꿔야 할까.

리 골드먼 박사는 이 의문에 현대 과학의 힘, 최첨단 기술들의 힘에 대한 긍정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그걸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인류가 난관을 헤쳐 나온 문제해결 능력에 승산을 두는 듯하다. 저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20만 년에 걸쳐 살아남은 인류가 성공적으로 헤쳐 온 모든 어려움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이다. 인류가 가진 뛰어난 뇌를 십분 활용해 타고난 체질과 시대의 요구를 일치시켜야 한다.”

역설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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