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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자물쇠, 그렇게 높은 문화재 가치가 있다니
옛날 자물쇠, 그렇게 높은 문화재 가치가 있다니
  • 이진수 기자
  • 승인 2019.05.14 0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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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리포트] 중 장년은 어릴 적 오래된 장롱에 달려있던 길고 두툼한 자물쇠를 기억할 것이다. 용이나 연봉 무늬에 모양은 한글 자음 ‘ㅍ’ 같이 생겼다. 그런데 이 <‘ㅍ’ 형 자물쇠>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유의 문화재 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시대 자물쇠 연구>(박민정,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2019)는 고려시대 용과 연봉 장식 ‘ㅍ’형 자물쇠에 대해 연구한 논문이다. 

논문에 따르면 “중국의 자물쇠는 무덤과 황실 유적, 사찰의 사리장식 도구에 채워진 채로 발견된 사례가 주류를 이루며, ‘卩’형과 ‘ㅁ’형, ‘ㄷ’형”이다.

국내에서는 자물쇠 사용은 삼국시대부터로 추정된다.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로 편년되는 고구려 옥녀산성서 출토된 자물쇠를 비롯하여, 백제 권역에서 발견된 자물쇠와 열쇠를 통해 알 수 있다.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평론가)가 <교수신문>(2016년 3월 30일자)에 쓴 글에 따르면 현존하는 자물쇠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대표적인 유물은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남북국시대 신라의 철제자물쇠 3점이다.

자물쇠 역사에서 중요한 유물은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금동연봉자물쇠>(보물 제777호, 출토지 불명)다. 논문은 이를 두고 “가장 이른 시기의 ‘ㅍ’형 자물쇠이자, 새로운 기형을 제작할 수 있었던 국내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유물로서 중요하다”고 전한다.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는 “이 금동자물쇠는 고려시대 유행하는 양식“이라며 그 이유를 ”전체적인 자물쇠의 형식 또한 고려시대에 제작돼 전해지는 자물쇠와 같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자물쇠는 고려시대에 꽃핀 것으로 보인다. 논문은 “고려시대엔 ‘卩’형, ‘ㅁ’형, ‘ㅍ’형, ‘ㄷ’형 자물쇠가 사용되었으며, 이 가운데 ‘ㅍ’형이 80% 이상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자물쇠의 주요 재료로는 금동이 사용되었으며, 실용품이자 고급 공예품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논문에 따르면 고려시대 자물쇠는 출토품과 전세품을 포함하여 총 28점이다. 출토지는 왕릉과 귀족의 석관묘, 사찰이다. 재질도 은이나 금, 청동, 철로 화려하고 다양하다.

고려시대 자물쇠의 기본형식은 중앙의 몸통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이며 잠글쇠와 바같경자는 연봉이나 용머리로 장식을 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유물로 꼽히는 자물쇠는 경북 예천 한천사 금동자물쇠 3점(보물 제1141호)과 청주 사뇌사 자물쇠 2점이다.

한천사의 <금동연봉자물쇠>는 줏대와 몸체 양쪽에 연봉오리와 당초문을 조각하였고, 자물통에는 능화문과 화당초문, 어자문으로 각기 다르게 표현했다. 논문은 “고려시대 공예품의 다채로운 문양 활용 방식을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청주 사뇌사 자물쇠 2점은 줏대에 용머리나 연봉을 장식한 점에서 앞선 유물들과 같지만, 40cm가 넘는 철제 자물쇠이다. 따라서 사찰의 입구에 직접 부착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논문은 “고려시대 자물쇠의 특징은 줏대에 조각된 연봉과 용 장식을 중심으로 줏대목창과 자물통, 자물통 양단까지 세밀한 문양을 더한 점에 있다”고 밝혔다.

줏대의 형태와 자물통의 문양 구획 방식은 통일신라시대 공예품의 조형성을 계승하고, 자물통 중앙의 능화문과 자물통 양단의 연꽃과 연밥, 당초문등의 투각 장식은 동시대 유행 문양과 제작 기술이 접목되어 한층 화려한 양식으로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이상의 연구를 바탕으로 논문은 공예사에서 자물쇠의 의의를 세 가지로 요약했다.

복잡한 구조의 자물쇠를 다양한 유형으로 만든 당시의 기술력을 확인했다는 점, 고려시대에 유행을 이룬 ‘ㅍ’형 자물쇠가 한국의 독창적인 미술문화라는 점, 고려시대에는 자물쇠가 보안장치로서의 기능적 역할에서 나아가 좋은 재료와 기법을 응용함으로써 예술작품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는 앞의 교수신문에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자물쇠 두 개를 소개했다.

하나는 ‘은제도금용두자물쇠’다. 이 유물의 특이한 점은 소재와 크기다. 당시 귀한 금속인 은으로 제작한 후 금으로 도금했다. 몸통의 길이만 31cm.

‘은제도금용두자물쇠’. (출처 교수신문)
'금동용문자물쇠'. (출처 교수신문)

김 교수는 “은으로 만든 자물쇠는 제작비용의 문제로 대부분 작게 만드는데 이 유물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다른 하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금동자물쇠’다. 김 교수는 “현존하는 고려시대 자물쇠 중에서 가장 화려하며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이러한 유물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세계적인 경지의 금속공예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고려청자 더불어서 중요한 문화재로 꼽을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자물쇠가 고려청자 이름을 소환할 정도의 높은 문화재적 가치를 지녔다니,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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