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작가 최인훈의 아들인 최윤구 평론가가 아버지의 작품 세계와 생전 에피소드를 버무려 뜻깊은 강연을 했다.

[더 리포트]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최인훈 작가의 소설 <광장>(문학과지성사. 2018)의 첫 문장이다. 지금도 여전히 필사가 많이 되는 문장이다.

문학박사이자 음악칼럼니스트인 최윤구 평론가는 이 문장에 대해 “굉장히 시적이고, 매우 밝게 빛나는 명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년 7월에 타계한 최인훈 작가의 아들이다.

최인훈 작가는 한국문단의 거장이자 고양시에 거주하는 문인 중 한 명이었다. 사후 그의 작품들이 또다시 조명을 받고 있는 가운데, 고양에서 작가의 책을 깊이 읽는 뜻깊은 모임이 열렸다.

27일 고양시의 대표 서점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최인훈 작품 읽기- 광장에서 화두까지’ 강좌가 진행됐다. 한양문고의 남윤숙 대표는 “올 한해 최인훈 작가를 기리며, 그의 작품을 순수한 독자의 시선으로 음미하는 시간”이라고 모임 취지를 설명했다.

최윤구 평론가는 “아들로서 추모를 위해 이 강연을 준비했다기 보다는, 문학을 사랑하고 공부했던 독자이자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최인훈 작가의 <광장/구운몽>, <회색인>과 <서유기>가 강연의 주요 작품이었다.

“최인훈이라는 작가를 볼 때 <광장>은 알파요 오메가와 같은 작품입니다. <회색인>과 <서유기>는 2부작이라고 해도 좋을 테고, 의미와 내용 면에서 볼 때 <광장>, <회색인>, <서유기>는 3부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작가가 명명한 이름, 이명준과 독고준부터가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캐릭터에 있어 이명준과 독고준의 유사성을 지적합니다. 만약 이명준이 광장에서와 같은 결말을 맺지 않고 남한에서 생을 이어갔다면, 독고준과 같은 삶을 살았을 것으로 예측될 정도입니다.”

고양시의 대표 서점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포즈를 취한 최윤구 평론가.

<회색인>은 <광장> 이후 첫 번째로 쓰여진 장편이고, <광장> 다음으로 제일 먼저 외국어(영어)로 번역된 책이다. 이때 번역을 맡은 영문과 교수가 영문해설을 직접 썼다. 그는 “한국소설에서 보기 힘든, 서구에서 볼 수 있는 교양소설이자 지식인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최 평론가에 따르면 최인훈 작가가 마음에 들어하는 평이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4.19 군사독재정권이 수립된 후에 쓰여진 소설로 지금까지도 지식인 소설로서의 보편성과 현재성, 유용성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소설에서 찾기 힘든 캐릭터를 갖고 있다.

"<회색인>의 “피아노 반주가 라일락꽃 무더기처럼 피어오른다.” (p.352)라는 대목에 대해 최 평론가는 “음악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을 담았다”고 평했다.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과 함께 듣는 강연은 이채로웠다. 

최 평론가는 음악칼럼니스트로서 좌절감을 느낀 대목을 소개했다. 

“부수는 듯한 비바람 대신에, 나긋나긋하고 환한 가락이 조용히 흘러나온다. ‘로맨스’다. 몰리고 있던 분풀이를 마음껏 했다는 듯 일부러 딴 데를 보면서, 정 선생은 장난꾸러기처럼 허리를 한 번 젖혀 보인다. 명준은 빙긋 웃는다.” (p.68), <광장> 중에서

이는 베토벤의 로망스에 대한 어떤 해설서를 읽어도 이처럼 문학적인 해설은 본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양 고전음악에 관한 한 자신이 아버지보다 더 전문적인데도 말이다.

해방후 한국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최인훈 작가. 그의 대표 작품에 대한 귀한 설명뿐만 아니라, 생존 당시의 음악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아들의 입을 통해 듣는 현장은 묘한 느낌을 주었다.

<광장>은 문학의 고전에 속한다. 아마도 젊은이들은 그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을 터이다. 하지만 작품에 담긴 시대를 뛰어넘는, 이념과 체제에 대한 치열한 성찰은 2019년을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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