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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탐방] 소설속 샹그리라 같은 숨은 낙원 ‘130년 된 수류성당’
[현장 탐방] 소설속 샹그리라 같은 숨은 낙원 ‘130년 된 수류성당’
  • 임정섭 기자
  • 승인 2019.04.22 1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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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형 주임신부가 성당을 배경으로 밝은 미소를 짓고 있다.

[더 리포트] 130년 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889년이다. 그 해를 추억하고 축하하며 종교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 준비에 바쁜 현장이 있다. 전라북도 모악산 자락에 자리한 ‘수류 성당’이다.

수류 성당은 김제 금산사 등과 함께 모악산 권의 관광 명소다. 이곳을 가려면 근방에서 제일 큰 ‘도회지’ 원평(면 소재지)을 거쳐야 한다. 원평은 독립만세 운동과 동학농민혁명 싸움터 중 하나로 유명하다. 또한 전주와 금구, 태인, 정읍을 잇는 국도 1호가 통과하는 곳이다. 

원평의 북쪽은 김제로, 동쪽은 전주, 서쪽은 정읍으로 이어진다. 동남쪽에 금산사를 품은 모악산이 있다. 그 아래엔 상두산, 비봉산이 버티고 있다. 즉 원평은 앞쪽엔 곡창지대인 평야, 뒤쪽엔 산이란 병풍을 두른 명당의 풍수를 지닌 곳이다.

수류성당은 자가용으로 갈 경우 원평에서 원평천을 따라 간다. 좁은 뚝방 길을 가다 보면 ‘대체 이런 곳에 무슨 유명한 성당이 있다는 거야’라는 의문이 떠오를 법하다. 그래서 목적지가 아주 작은 마을일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뚝방길을 벗어나면 넓은 평원이 나온다. 예상보다 큰 공간에 놀란다. 앞서 설명한 대로 원평 뒤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인근 마을들은 대개 도로나 마을 규모가 협소한 산촌이기 때문이다.

수류 성당이 있는 화율리(원래 수류면) 역시 오지 중에 오지였다. 교통의 발달과 ‘도심’의 확장에 힘입어 현재처럼 큰 마을이 되었다. 

목적지에 다다르면 100년이 넘었음직한 느티나무와 새 둥지처럼 아늑한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그 위로 고개를 쳐들어야 보이는, 언덕배기에 우뚝 서 있는 건물이 있다. 수류 성당이다.

화율 성당에서 오는 5월 23일 130주년 기념 미사가 열릴 예정이다.

130주년 기념 미사 준비 한창 

수류 성당의 시계는 오는 5월 23일 열리는 130주년 기념 미사에 맞춰져 있다. 10년 만에 찾아온 큰 행사다.

수류 성당이 세워진 1880년대는 선교의 씨앗이 열매 맺던 시기다.

1876년(고종 13년) 개항이후 10년이 지난 1886년 한국과 프랑스 간에 ‘선린’ 조약 체결이 체결되었다. 천주교가 100여 년 박해에 종지부를 찍으며 신앙의 자유를 얻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이는 활발한 포교와 성당 건립으로 이어졌다.

수류 본당은 원래 1889년 베르모렐(J. Vermore) 신부가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에 설립했던 ‘배재 본당’이 모태다. 배재 본당은 같은 시기에 축성된 전주 전동성당과 함께 전북 지역의 천주교의 성소다. 이후 1895년 지금의 금산면 화율리에 이전하면서 이름이 수류 성당이 됐다.

수류 성당은 원래 목조 건물이었으나 1950년 화재로 불탔고 휴전 후 현재의 모습으로 지어졌다. 이 화재는 수류 성당 역사에서 매우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전쟁이 일으킨 방화였다. ‘평화신문’(2004년 11월 21일)에 따르면 그해 9월24일 인민군들과 빨치산들이 주일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성당 안에 모여 있는 신자들을 몰살하고자 성당에 불을 질러 전소됐다. 이 과정에서 50여 명이 순교했다.

불탄 성당을 재건하는 일은 당시로선 눈물겨운 역사였다. 신도들은 생계 용 구호물자를 줄여가며 성당 신축 경비를 마련했으며, 거리가 먼 원평천 냇가에서 모래와 자갈을 날라다 벽돌건물을 지었다.

성당 신자들이 미사를 마치고 야외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종교생태문화 체험 공간 새롭게 발돋움

21일은 130주년 기념 미사 한 달 전인데다 부활절이어서 성당엔 활기가 넘쳤다.

미사 후 신자들은 함께 식사를 했다. 기름진 돼지 수육과 고소한 쑥떡이 곁들어진 야외 파티였다.

신자들 모두 나이가 지긋했다. 모태 신앙이라는 한 신자(79)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성당을 다녔다”며 “여기 함께 있는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라며 활짝 웃었다.

수류 성당 인근은 가톨릭 신앙촌이다. 현재 교적 상 신도수는 약 400명 정도이고, 실제 거주하고 있는 신자는 100여 명으로 가늠된다.

신자들 무리를 둘러보며 누군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맛있게 드시라”고 연신 식사를 독려했다. 김주형 주임신부였다.

2년째 수류 성당을 이끌고 있는 김 신부는 “과거 아픈 기억이 마을 신자들에겐 자부심과 신앙의 동력”이라며 “23일 130주년 미사 준비에 바쁘고 설렌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130주년 미사에는 교구장이 직접 주례를 한다. 과거에 비춰보면 평소 미사에 모이는 신도의 다섯 배 정도(500명) ‘손님’이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수류 출신 신부와 수녀와 이웃 본당 신자, 타지의 순례객까지 축하의 발길이 이어진다. 참고로 수류성당은 이름에 걸맞게 사제 18명, 수도자 21명을 배출한 가톨릭 명소다.

현재 이곳 화율 지역은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많은, 귀농 인기 지역이다. 성당 못 미친 도로 주변 양쪽으로 새 주택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2003년 영화 <보리울의 여름> 촬영지인 데다 알음아름 이름이 알려져 연간 1만 여명이 수련이나 순례, 관광 목적으로 찾고 있다.

수류 성당은 예전의 명성에 비해 외형은 쇠락하고 있었다. 성당과 함께 늙어버린 신자들의 깊게 패인 주름과 백발이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신앙의 문제라기보다 젊은이가 떠난 농촌 현실의 문제다. 그럼에도 그 명성은 더 빛난다. 최근엔 ‘종교생태문화 체험 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물론 그 중심은 신앙이다.

수류 성당을 빠져나오니 번잡한 속세다. 부활절이라 그런가. 마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비밀스런 공간을 다녀온 느낌이다.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속의 낙원 ‘샹그리라’가 한국에 있다면 아마도 수류 성당 일대일 듯하다.

성당 건물 아래에 조성된 화단과 예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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