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포트] [스토리 창고]는 전설, 민담부터 동화, 고전, 최신 소설에 이르기까지 창작자에게 영감을 줄 모든 이야기를 담은 창고입니다. -편집자 주

이번 작품은 이상의 <날개>입니다. 식민지 사회의 병리를 한 개인의 모순과 갈등으로 투영한 작품으로, 심화된 리얼리즘 소설, 최초의 모더니즘 소설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36년 9월 <조광(朝光)>지에 발표.

33번지 유곽에 살고 있는 ‘나’는 매음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아내에게 기생해서 살아가는 무능력자이다. 그는 일상적 상식의 세계를 떠나 그날그날을 그저 의욕도 없이 방안에서만 뒹굴고 지낸다. 

아내가 외출하고 난 뒤면 아내 방에 가서 화장품 냄새를 맡고 노는 것이 유일한 취미다. 가끔 돋보기로 화장지를 태우면서 아내의 체취를 느끼기도 한다. 무력하기만한 나는 그렇게 함으로써 아내와 간접적으로 만나곤 하였다.

그렇게 익숙해진 즐거움으로 아내방에 머무는 횟수와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아내는 그 때문에 영업에 방해를 받는다. 나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어느 날 감기에 걸린 나는 아내가 준 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 감기가 다 난 이후에도 아내는 계속 약을 주었다. 약을 먹으면 밤낮으로 졸렸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아내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내는 모이를 주듯 하루에 얼마씩 나에게 돈을 준다. 나는 그 돈을 벙어리 저금통에 넣기도 하고, 아내에게 다시 주고 그 옆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오랜만에 잠이 깨어 아내방에 간 날. 서랍에서 ‘아달린’을 발견했다. 아달린은 수면제이다. 나는 아스피린인 줄 알고 먹은게 아달린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한다. 휘청거리며 외출 한 날 공원에서 남은 아달린을 한꺼번에 먹고 잠이 들었다. 집으로 들어가니 아내가 '도둑질했느냐, 계집질 했느냐.’며 악다구니를 썼다. 남은 돈을 아내방 문지방 밑에 두고 다시 집을 나왔다. 처음부터 아내와 나는 절름발이 부부였음을 깨닫는다.  

미쓰고시 백화점 옥상으로 갔다. 정오의 싸이렌이 울렸다. 사람들은 푸드덕거리며 쏟아져 나오고 거리는 현란했다.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려워졌다. 그곳은 인공의 날개가 있었던 자국임을 알게되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나는 새처럼 날아 올랐다. 비상과 동시에 추락하는 날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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